어느 누구보다 맥주를 사랑합니다. 참 뜬금없는 고백이죠? 지치고 힘든, 그리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 늘 생각나는 것 중에 하나가 저는 맥주 한 잔입니다. 이런 제가 여행지에서 꼭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로컬 맥주를 마시는 것이라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만 쩜쩜쩜... 터키 여행에서 제가 기대했던 것 중에 하나도 역시 매일매일 터키 맥주를 마셔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인데 늘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인지 당연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터키는 그게 생각보다 훠얼씬! 쉽지가 않았는데, 터키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였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술을 팔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한정적인 곳에서 구입할 수 있고, 또 야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더욱 제한적인 나라더라고요. 이슬람 국가를 처음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제가 맥주를 사랑하기 전! 그때는 이 일이 그렇게 제게 절실하지 않았던 터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맥주를 사랑한 이후 여행한 첫 이슬람 국가였기에 참 난감하더라고요. 그나마 이스탄불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도시라서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숙소가 워낙 독립적(?)으로 있다 보니 술을 살 곳이 없었다는 슬픈 사실. (숙소에 있어서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가장 큰 단점은 선택권이 전혀~ 없다) 이스탄불을 제외한 그 외의 지역은 이슬람 색이 점점 더 강해지기 때문에 술을 산다는 게 정말 하늘의 별 따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이렇게 '술'플수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래서 더 해보고 싶은 절실함
하지만 터키 맥주를 마시겠다는 굳은 의지는 꺾일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틈만 나면 맥주를 알아보는 집요함을 보였죠. 숙소에 도착하면 마켓이 어딘지를 가장 먼저 물어보고, 선택 관광을 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자유시간에는 지도에서 근처 마트를 찾아 맥주를 사러 나서는 저희만의 미션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아, 근데 그게 또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물론 아무리 마트라고 해도 술을 판매하는 곳은 매우 한정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여 동안 동네에 있는 마켓 다섯 군데를 방문, 그중 두 군데에서 술을 판매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은 마트 외부에 맥주 상자가 보이는 곳을 찾아라! 그전까지는 들어가서 직접 확인하거나 물어봤는데 나중에는 보이더라고요. '아, 저곳에서는 맥주를 팔고 있겠구나'하는 것을요. 그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맥주 상자였습니다. 이런 자신감(?)까지 갖게 된 우리는 어디든 맥주가 보이면 '오늘 마시지 못하면 내일 마시면 되지. 내일 것까지 사자' 라며 킵해놓는 영리함(?)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안탈리아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어제 사놓은 맥주 한 캔을 마시다
너무 원하면 진실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여행 둘째 날 도착한 카파도키아. 다행히 숙소 앞에는 마켓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맥주를 파는!!! 너무나도 기뻐 한 걸음에 달려갔죠. 맥주 두 캔과 견과류 안주를 샀는데 85리라, 한국 돈 2만 8천 원 정도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 마이갓! 아니 가게에서 마시는 것도 아니고 마켓에서 사가는 것인데 너무나도 믿기지 않는 가격에 다시 차근차근 하나하나 가격을 물어보는 꼼꼼함을 발휘했죠. 가게 주인인지 알바생인지 굉장히 선하게 생긴 남자가 나긋나긋하게 가격을 불러주는데 맥주 한 캔이 20리라였던 것입니다. 그렇담 우리나라 돈으로 한 캔에 7천 원인 셈. 비싸도 너무 비싼 것이었죠. 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고, 그래도 가격은 너무 비싸고... 그때 우리는 서로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시 이슬람 국가라서 맥주가 비싼 가봐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장을 보고 숙소에 들어와 마시면서 그래도 마실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던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동네 투어(?)를 하던 중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 맥주 한 캔 가격이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나(?) 보통 7리라에서 9리라 사이였다는 것을요. 우리는 무려 2배 이상의 돈을 주고 맥주를 마셨던 것입니다. 맙소사...... 뒤늦게 가이드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비슷하더군요. (왜 진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지 못했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공개됩니다 ^^)
'진작에 물어볼 걸 왜 우리는 바보같이 물어보지 않았던 것인지' 후회가 됐지만 그 후 우리는 조금 더 똑똑해진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여행의 재미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이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너무 간절하면 진실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진실을 알 기회는 여러 번 있었음에도 우리는 쉽게 믿어버리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 아주 과소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에이~ 고작 저 돈 가지고 그래?' 하겠지만 저 돈이면 이후 여행에서 2.5일 정도는 더 먹고 마실 수 있는 돈이었거든요. 생각보다 훨씬 더 터키 물가가 싸기 때문에... 마트 투어에서 확인한 수박 한 통의 가격이 글쎄 0.99리라였습니다. 1리라가 당시 325원. 수박 한 통이 1천 원은커녕 500원도 안 되는 가격이라니, 믿어지십니까? 마음이 쓰라려 오지만 애써 잊기 위해 우리는 다시 맥주를 마셔야 했습니다. ^^
맥주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남은 것은 여행경비!
저는 앞서 말한 대로 여행 경비로 선택관광비를 제외하고 소소한 간식비와 쇼핑비로 80달러를 환전 했었는데요.(팁으로 20달러) 사실 부족할 거라 생각했지만 리라가 남을 경우 다시 환전하는 게 또 쉽지 않을 것 같아 일단 약간만 환전 하고 나머지는 유로로 쓰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맥주를 마시는 일에서 자유로워지고, 터키 물가가 생각보다 워낙 저렴하다 보니 저 돈이 부족하지 않게 된 것이죠. 소소한 기념품 가격은 보통 1리라에서 5리라 사이, 냄비 받침대는 2리라에서 10리라 사이거든요. 과자를 비롯한 과일도 저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정말 비싼 게(?) 우리나라 돈으로 3천5백 원이니까 다른 나라들에게 비하면 정말 저렴한 편입니다. 신기한 것은 관광지나 동네 마트나 호텔 기념품 가게나 저 가격은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이죠. 그러니 어디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는 게 남는 겁니다. (but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깎는 게 값') 적어도 터키 여행에서는 말이죠.
그 후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저는 정말 이번 터키 여행에서 맥주를 너무너무너무 못 마셨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돌아오는 순간까지도요. 아니, 돌아와서도요. 그런데 저는 여행 사진을 보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맥주를 못 마셨던 게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충분히 최선을 다해서 맥주를 마셨던 것이죠.
카파도키아 호텔 내 수영장에서
카파도키아 숙소 안에서
지중해 유람선 위에서
카파도키아. 85리라에 사 온 것들 ㅠㅠ
이스탄불로 가던 길, 점심 식사 시간에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물론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했던 순간만큼은 우리 곁에는 맥주가 있었습니다. 많은 길을 걸어야 했고, 잘 안 되는 언어로 여러 번 물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실 수 없던 날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힘들게 얻은 맥주여서 그랬을까요? 기회는 늘 부족한 듯 느껴졌지만 반대로 그 맛은 항상 달콤하고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아마도 언제 또 마실 수 있을지 모르니까, 오로지 그 순간을 즐기고 고맙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 터키 맥주 맛이 어때라고 물어보면 저는 맛은 잘 표현 못할 것 같아요. 단지 이렇게 말하 겁니다. 그냥 너무너무 좋았고, 정말 정말 행복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못할 순간들이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