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구 투어 때문에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한 탓에 몹시 피곤했지만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트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 "지프 투어" 선택관광 대신 자유 시간에 동네 마트 투어를 하기로 했습니다. 마트를 가는 것은 여행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인데요. 뭐 사실 살게 있어서도 아니고, 대단한 게 있어서도 아니고, 우리와 파는 것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닌데 마트만 들어가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가격 비교도 해보고, 이 나라 사람들은 뭐를 좋아하는지도 보고, 신기한 제품이 있으면 사서 먹어보기도 하고... 아무튼 그 나라의 마트는 저에게 신세계! 패키지여행을 하고 있는 탓에 터키 마트는 셋째 날이 되어서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 마이! 갓!!! 터키 물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렴해도 너무 저렴한 것이죠. 수박 한 통이 0.99리라 요거트가 5리라 하리보 젤리가 3리라. 1 리리가 당시 환율 325원이었으니 제일 비싼 요거트가 1800원, 수박은 325원.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기지 않는 이 저렴함!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 간 이유는 사실 맥주를 사러 간 것이었는데,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맥주 판매는 모든 곳에서 되는 곳이 아니라 허가된 곳에서만 살 수 있거든요. 안타깝게도 이 마트에는 맥주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후 맥주 찾아 삼만 리 끝에 다섯 번째 마트에서 구입 완료! 오늘 일정이 끝나고 저녁에 마시기로 했습니다.
아. 지프 투어 하신 분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진짜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보고 왜 안 탔냐고 되게 안타까워하셨지만 뭐 후회는 없어요. 그러기엔 저는 마트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90유로의 지프 투어를 하느냐, 자유 시간 동안 동네 마트 투어를 하느냐!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겠죠?
파샤바 계곡, 여기가 스머프 마을 영감을 준 곳인가요?!
자유 시간 후 가이드의 부름을 받고 도착한 곳은 파샤바 계곡! 파샤바 계곡의 또 다른 이름은 스머프 마을로 벨기에 작가인 피에르 클리포드가 이곳 파샤바 계곡에서 영감을 받아 스머프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배경으로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300만 년 전 화산 폭발 후 화산재에 덮여 굳어진 땅 위에 용암이 쌓였고, 이후 풍화와 침식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데요. 후에 그리스도교도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곳 버섯 바위에 집을 짓고, 교회를 만들어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보고,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보니까 진짜 신기하더라고요. 자연이 만들었다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했고, 바위 안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는데 밖은 진짜 40도를 육박하는 열기로 진짜 너무 더운 반면 버섯 바위 안은 정말 시원했습니다.
뾰족 바위 아파트, 우치하사르!
다음은 뾰족 바위라는 뜻을 가진 '우치하사르'
열기구 투어를 하면 파일럿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운항(?)을 해주는데, 그때마다 손에 닿을 것 같은 착각 속에 본 곳이 우치하사르입니다. 제 눈에는 바위 아파트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거주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외국인도 사고파는 거래를 할 수 있는 집이라고 합니다. 언뜻 납득은 잘 안 되더라고요? 이렇게 자연이 만들어내고 인간이 지켜낸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관광 명소가 개인들의 집으로 인정받고 거래가 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엄청 비쌀 줄 알았는데 가이드 말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비싸진 않았습니다. 사실 거주하기에는 수도, 냉난방, 욕실, 화장 실 등에서 불편한 점이 많고, 거주 목적이 아닌 보유 목적으로 건물을 사기에는 그 가치가 큰 편이 아닌지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때문에 우치하사르에는 카파도키아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생업 수단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호텔이나 카페, 레스토랑 등으로 개조된 건물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하늘에서 보았지요 ^^ 시간이 허락된다면 저런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셔보면 참 좋았을 텐데...
괴레메 마을
슬픈 눈물의 역사, 지하 도시 데린쿠유!
세계 9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땅속 지하 도시 데린쿠유, 기독교 박해를 피해 온 그리스도인들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데린쿠유라는 지하 도시를 만들어 살았습니다. 역사 속에 사라졌던 데린쿠유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60년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는데요. 지하 도시는 실제 마을과 똑같은 형태로 학교, 강당, 식당, 교회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하 8층까지만 공개됐고 너무 거대한 도시라 아직 다 발굴하지 못했는데, 다만 추정만 할 뿐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인간의 끝없는 상상력으로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눈으로 확인한 지하 도시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대하고, 신비롭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지하에 이렇게 정교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것은 그들의 삶에 대한 애착, 지키고자 하는 절실함이었습니다. 빛 한 줄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 기약할 수 없는 날을 기다리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산 사람들. 도시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 그 안에 갖출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차피 돌과 나무와 흙뿐입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환경이죠.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 사실 종교가 없는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입니다. 지금도 그 마음을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지하 도시를 가 보고 나서 느꼈습니다. 그들의 절실함과 절박함을...
가이드가 물었습니다.
지하 도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걸렸던 병이 뭘까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피부병이요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걸린 병은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가이드의 대답을 듣고 저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지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매 순간 자신들을 죽이러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은 그들의 정신을 병들게 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뿐. 그렇게 지하 도시에서 기독교인들의 삶은 계속됐고, 끝내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패키지 코스 중 가장 기대가 없었고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곳이 지하 도시였습니다. 아마도 자유여행이었다면 이곳을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패키지여행이라서 올 수밖에 없었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곳이죠. 그런데 막상 그곳을 가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패키지여행이라서 갈 수 있었던 곳! 가이드가 있어서 감추어진 슬픈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곳으로요.
시간은 흐르고 역사가 됩니다. 그것이 아프고 슬픈 것이라고 할지라도 후세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죠. 그들의 치열했고, 고단했던 하루하루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관광지가 된 현실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낍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이 살아온 시간인 역사일까요, 그들의 슬픔일까요?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감사히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곳, 바로 지하 도시 데린쿠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