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술연구소] 16화/17화 - '함께 살기'의 기술
1인 가구는 이제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혼밥’이나 ‘혼술’이 새로운 트렌드처럼 이야기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런 호명 자체가 새삼스러워질 것입니다. 혼자 사는 게 유난스러운 일이 더 이상 아니라지만, 혼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집값 현실을 생각하면, 혼자 살면서 안정적이면서도 쾌적한 주거 솔루션을 찾는 데서부터 문제에 부딪힙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다 해도, 나이 들어도 괜찮을까 생각하면 스멀스멀 불안이 마음을 파고듭니다. 나이 들어 아프거나 급작스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겁이 났다가 그런 상상은 애써 덮어두고 마는 거죠.
일상기술연구소 16화와 17화에서는 '함께 살기의 기술'을 연구했었는데요,
가족 관계에 편입되지 않고도, 좀 가볍게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꼭 찐득찐득하고 친밀한 방식이 아니라도,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함께’의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아니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 주거공동체 ‘우동사’의 김진선 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함께 살기'의 기술자인 김진선 님을 제가 처음 만난 건 네이버의 '협동조합 스터디' 모임에서였습니다. 저는 당시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막 시작했던 때였는데, 네이버 직원들이 함께 공부하는 '협동조합 스터디' 모임에서 롤링다이스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네이버에 협동조합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궁금한 마음으로 초대를 수락했고, 그 자리에서 김진선 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는데, 롤링다이스는 이제 5년차에 접어들었고, 김진선 님은 네이버를 떠나 자칭 '동네 반백수'가 되었습니다.
김진선 님은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네이버에서 사회공헌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을 7년여 동안 했습니다. 의미 있는 콘텐츠였지만, 하나의 콘텐츠를 마음 써 들여다볼 수 없게 내모는 IT 산업의 속도에 지쳐갈 무렵, 인문학 공부라는 ‘딴짓’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딴짓’의 즐거움이 직장인의 무게를 훌쩍 넘어선 순간, 나가서도 살 수 있다는 마음이 찾아왔고, 2014년 결국 네이버를 떠났습니다.
김진선 님에게는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한다는 것이 새로운 삶의 자연스러운 전제조건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김진선 님은 회사를 떠난 후, 삶의 방향을 다시 잡겠다는 마음으로 여덟 곳의 ‘함께 하기’ 실험집단들을 탐방는데요. 이 실험집단들은 동등한 관계 안에서 함께 일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부터 공동의 주거실험을 하는 공동체, 지역에 기반을 둔 공부모임까지 다양합니다. 여덟 곳을 탐방한 결과를 묶어 2015년에는 《적당히 벌고 잘 살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죠.
김진선 님은 이 과정에서 만난 ‘우리동네사람들’(우동사)의 3개월짜리 ‘가출’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본 뒤, 현재는 정식 구성원으로 우동사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출’ 프로젝트는 우동사에서의 생활을 가벼운 마음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3개월짜리 단기 프로젝트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정해진 시한을 두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해보는 기회는 무척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는 게 자신에게 맞는지 테스트해보고, 맞지 않다 싶으면 그만두어도 좋은, 그런 '안전한'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살기’의 방식에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집, 한 방을 나누어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집만은 따로, 그러나 한 동네에서는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죠. 우동사에도 한 집에 함께 살다가, 그건 좀 버겁다 싶어서 집을 나갔지만, 바로 근처에 원룸을 얻어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집은 따로 살지만, 우동사의 다양한 활동에는 함께 한다고 합니다. 한 방, 또는 한 집에서 함께 살 수도, 옆집에서 함께 살 수도, 한 동네에서 함께 살 수도 있는 거죠. '함께 살기'의 방식이나 밀도, 거리는 정말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고, 다양한 방식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방송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평소 농반진반처럼 대관령에 10가구를 모아서 함께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저는 대관령에 '집'을 두고 서울을 오가는 식으로 산 지 이제 6년째 접어드는데요. 대관령에서 보내는 일상은 정말 충만하지만, 늘 동네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밤에 가끔 심심할 때 불러서 맥주 한 잔 하자 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특히 많이 합니다. 친구나 동료들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까, 물리적으로 대관령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도 정서적으로는 서울에 소속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몸은 대관령에 있는데 심정적으로는 서울에 속해있다는, 이런 불일치를 장기적으로는 없애고 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김진선 님과 '함께 살기'의 기술을 연구하면서 '대관령 10가구'의 농반진반을 좀더 진담쪽에 가깝게 가져와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는 방송을 하다가 금고문님의 이 얘기가 가슴에 남았어요.
저는 원래 진짜 개인주의자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자랐고,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해서 사실은 책을 읽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있는 게 약간 질린다고 해야 할까요?
에너지가 떨어지고 자기 자신하고 같이 있는 게 더는 재밌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더 사람들하고 같이 할 수 있고 이런 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말씀하신 것처럼 나 혼자서는 ‘할까?’ 하다가도 안 하게 되는 게 있는데 옆에서 꼬시고 같이 으쌰으쌰 하면 만들어지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자신하고 같이 있는 게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는 표현에 공감이 확 일어났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거예요.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그런 시간들로만 가득 채워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상에서 '혼자'로 보내는 시간과 '함께'의 에너지를 즐기는 시간이 적절히 섞여 있기를 모두가 바라지 않을까요. 저 역시 대체로 저 자신을 개인주의자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혼자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수록, 더욱 그런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방송 말미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나는 개인주의자라서 협동조합 같은 건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면 “저도 개인주의자인데.” 이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개인주의자라고 함께 뭘 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죠. 저는 모든 사람에게는 혼자 하고 싶은 일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전자의 비중이 크고, 어떤 사람은 후자의 비중이 좀 더 크죠. 이 비율이 사람마다 좀 다르고, 또 한 사람을 놓고도 살면서 비율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저는 이 비율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살고 싶고, 그러려면 '함께' 하기의 다양한 방식이 주변에 보여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때로는 한두 달짜리의, 때로는 2-3년짜리의 함께 하기를, 또 때로는 한달에 하루짜리의, 때로는 일주일에 2-3일짜리의 함께 하기를 시도해보며 살고 있습니다.
김진선 님이 나눠준 우동사의 이야기는 제게도 있던 편견을 좀 누그러뜨려줬습니다. 저는 '같이 살기까지는 너무 부담스러워'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여전히 그렇게까지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우동사의 함께 살기 방식이 머리로는 좀 납득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지금은 단 한 명인 그 아이, 금고문님의 표현을 빌자면 '미래의 아이', [칠드런 오브 맨] 같은 그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