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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May 02. 2017

지금 길을 잃은 느낌이라면,

전환적 딴짓의 기술 @일상기술연구소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에서는 4월 마지막 주와 5월 첫째 주에 걸쳐 [전환적 딴짓의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기술자로 출연해주신 분은 '이장'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양석원 님이었습니다. 이장 님은 한 마디의 타이틀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분이었는데요, 한때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일하다, 코업(CO-UP)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코워킹스페이스를 창업했고, 가장 최근까지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인생의 또 다른 전환을 준비하며, 인생을 위한 학교(Learning for Life)로 불리우는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에 직접 학생으로서 다녀왔습니다. 


이장님을 기술자로 모신 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 본인의 삶에서 끊임없이 전환을 감행해왔으며, 그 전환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무엇보다 책에서나 접했던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에 대한 가장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실제로 이장님은 이제껏 평균적으로 3년마다 직업을 바꿔왔으며, 이번에 다녀온 폴케호이스콜레에서의 경험이 또 다른 전환점이 되어줄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3년보다는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발 담그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요.


'이장'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양석원 님


두 주에 걸친 방송에서 이장님의 인생 스토리, 그리고 폴케호이스콜레의 경험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장님의 넘치는 에너지였습니다. 이장님이 이야기한 '전환적 딴짓의 기술'을 굳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럴 텐데요.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생겼을 때 안테나를 세워놓고
끊임없이 신호를 수신하고 발신하다보면,
결국 그곳을 향해 가게 된다.



이런 기술이 가능한 것은 대화를 시작한 지 딱 1분만에 알아차릴 수 있는, 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마음 한 구석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음, 나는 어렵겠어...'




이장님과 녹음을 하면서 얼마전 읽었던 50대 독신 여성 이나가키 에미코의 스토리가 떠올랐습니다. 29년이나 다닌 아사히 신문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회사 밖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장님의 전환이 에너지가 넘치는 외향인의 전환이었다면, 에미코의 전환은 29년 동안 묵히고 묵혀 일어난 내향인의 전환 같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29년은 좀, 상상할 수 없이 긴 시간이긴 합니다만.)



제가 에미코의 책 [퇴사하겠습니다]를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다카마쓰 지국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관점을 어떻게 바꾸어놓느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뜻하지 않게 시골 지방인 다카마쓰로 발령을 받은 에미코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촐하고 느린 일상'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과는 전혀 다른 그 일상이, 뜻하지 않게도 제법 괜찮았던 것이지요. 얼떨결에 '지금과는 다르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난 후, 뻔하기만 했던 회사 생활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회사에서 잘리면 큰일"이라거나 "꼭 승진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와 "나가더라도 잘 살 수 있다" "회사 바깥에도 괜찮은 삶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지기 마련입니다. 나가기 전까지 할 수 있을 모든 것을 즐기는 마음으로 일했다는 에미코의 이야기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맞물려서, 무척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카마쓰 지국에서의 시간이 에미코에게는 우연히 찾아온 '전환적 딴짓'이었던 셈입니다. 이장님처럼 스스로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스스로 홀케포이스콜레에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능동적인 '전환적 딴짓'이겠지만, 전환적 딴짓은 에미코에게처럼 우연한 기회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저 새로운 경험 안에 놓인 나 자신을 편견없이 관찰하는 일이겠지요. 바로 이것이 우연한 경험을 그냥 딴짓과 '전환적' 딴짓으로 나누는 결정적 차이가 아닐까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전환의 시작들


매체에서 조명하는 전환의 스토리들은 대부분 퇴사의 순간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마치 전환이 '어떤 특별한 계기'로 '갑작스레'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 '전환'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제나 전환의 시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스물스물 일어나 점점 그 무게를 키워나가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에도 이장님 뿐 아니라 여럿의 '전환 경험자'가 출연하신 바 있었죠. 그리고 그분들 모두가 '전환'의 경험을 그런 식으로 묘사합니다. 


네이버에 다니다가 지금은 '동네 반 백수'라고 자칭하는 '우동사'의 김진선 님은 회사 다니면서 딴짓으로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결국 자신을 회사 밖으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딴짓’의 즐거움이 직장 밖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면서, 직장을 나가서도 어떻게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_김진선


프로그래머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비영리단체 '오픈튜토리얼스'를 스스로 만들고 강의 전문가로 활동하는 이고잉 님도 직장 동료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기 시작한 것이 전환의 보이지 않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직장에서 프로그래머 일을 하던 중에 “프로그래밍을 조금만 알면 업무가 굉장히 수월할 텐데” 하는 마음에 동료들에게 알려주다가 일반인 대상으로도 해볼까 싶어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까 강의에 점점 재미가 붙고 회사생활은 덜 재밌어지더라고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코딩 활동을 시작한지 5년 조금 넘었습니다. _이고잉


지금과는 다르게 살 수도 있으며, 그 삶 역시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꼭 계획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내일부터 당장 대대적인 전환을 감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죠. 다만, '다른 삶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전혀 다르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5년을 더, 10년을 더 살 수는 없겠다고 생각이 들 때,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다르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떤 식'에 대한 단 하나의 대답이 아닐 겁니다. 아니, 실은 그런 단 하나의 대답이 있다고 저는 믿지 않아요. 

그런 마음이 들 때 해야 할 일은 그냥 무엇이든, 작은 것에서부터, 지금과는 다른 것을 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에미코의 책을 읽으며 다카마쓰 지국 이야기 만큼이나 아프로 헤어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 인터뷰 기사에도 등장하는데요. 


"엉뚱하게도 계기는 속칭 ‘폭탄머리’라고도 하는 ‘아프로 헤어’였다. 노래방에 갔을 때 젊은 시절의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잔뜩 부풀린 헤어스타일의 가발이 있길래 썼더니 함께 간 사람들이 다들 어울린다고 했고, 얼마 뒤 실제로 그런 모양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나가키는 헤어스타일을 바꾼 뒤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으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표까지 썼다고 말했다."



기사에서는 마치 '아프로 헤어'가 결정적인, 단 하나의 계기였던 것처럼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다만 '아프로 헤어'는 자기도 모르게 감행한 하나의 딴짓이었을 겁니다. 현재 삶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발을 쓰윽 다른 세계로 내밀어보는, 그런 딴짓. 그리고 '아프로 헤어'야말로 꽤 괜찮은 전환적 딴짓이었던 셈이지요.


전환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각오나 엄청난 결심보다는, 그런 작은 딴짓들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일상에 틈을 내고, 방향을 틀 여지를 허락해주는 작은 '전환적 딴짓'들.





이장님과의 이야기, 그리고 일상기술연구소에서 이제껏 출연하셨던 전환 능력자들의 이야기, 또 에미코의 이야기를 접하고선, 저는 '전환적 딴짓의 기술' 핵심을 아래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네, 저는 일상기술연구소에서 '정리와 요약'을 책임지고 있는 제책임입니다.)


1) 단 하나의 해결책,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2) 지금 있는 곳이 출발점이라고 인식할 것 

3) 성공과 실패의 정의를 스스로 만들 것 

4) 정체성을 열린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 

5) 전환을 단 한번의 닫힌 프로세스로 여기지 말 것


전환이 필요하다면, 지금 오늘의 일상에서 시작합니다. 무수히 여러 차례 작은 시작들을 거듭하다보면, 그 중 하나를, 나중에 돌이켜보며, 그게 내 전환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겠죠. 그런 무수한 시작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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