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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Sep 10. 2017

불행인지 다행인지 책을 읽었다

책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금정연 작가(aka 금고문)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이런 서문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책 제목에 '멋진 문장'이라는 문구를 넣어도 괜찮은 걸까(심지어 실패도 모른다는데), 독자들이 속았다고 생각하고 환불을 요청하지는 않을까(구입한 사람이 있다면 말이지만), 편집자는 괜찮다고, 걱정하지말라고 했다. 저자가 금정연인데 설마 그런 오해를 하겠냐는 것이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정말 '멋진 신세계'는 아니잖아요. 일종의 아이러니죠. (어쩐지 슬퍼진 나는 독자들이 금정연을 알까요?라고 묻지 못했다.)"


그러나 금정연 작가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자세를 낮추어 독자들을 방심시켜 놓고는, 이런 문장을 슬쩍 흘려놓는다.


"하나의 문장은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다른 맥락 속에 위치시킬 때, 다른 문장들과 만나게 할 때, 완벽함이 생각만큼 대단한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쓰는 동안 다른 이들이 쓴 멋진 문장들을 강탈하고 때때로 훼손하며 나는 어떤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여러 해 동안 금정연 작가가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이 정리되어 담겼다. 어떤 것은 새롭게 읽혔고, 어떤 것은 원래의 기고글을 읽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 일으켰다. 덕분에 나도 지난 몇 년을 빠르게 되밟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특히 '어떤 탈출'이란 제목이 붙은 글은 2012년의 내가 그 글을 읽으며 했던 생각을 완전히 생생하게 되돌려 주었다. 이 글은 잡지 <기획회의>에 실렸고, 그때는 내가 그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던 시절이다. 그리고 4년이 흘러 #일상기술연구소 방송에서 금작가님, 이로님과 함께 론다 번의 [시크릿] 이야기를 했지.


이 글에는 이런 멋진 구절이 또 나온다.

"결국 모든 것은 '어쩌다'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어떤 불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어쩌다, 도대체 어쩌다 ... 후회해도 이미 늦다. 물은 엎질러지고, 책장은 넘어간다. 페이지를 되돌릴 순 있어도 이미 읽은 것을 어쩔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폐해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서평가가 되지는 않았지만(금작가님은 이쯤에서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라고 말할 일입니까. 제가 여태껏 쓴 것을 읽지 않으셨나요.'라고 이야기할 테다), 나 역시 읽었기에 이렇게 되었다. 이 역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애서가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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