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현주 Dec 30. 2017

내 맘대로 올해의 OOO

아주 개인적인 2017년 총결산

2017년을 시작할 때, 올해는 전환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아니 예감이라기보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에 가깝겠지만, 그렇다고 전환의 방향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시 (적어도 얼마간은) 좀더 견고한 형태의 조직에 속한 채로 일해야겠다는 생각만은 확고했다. 조직은 자유도를 제한하는 대신, 레버리지할 수 있는 여러 유무형의 자산을 주기 마련이고, 그런 자산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좀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장 크게는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는 전환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또는 그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들이 몰아쳤던 한 해였다. 그런 만큼, 올해는 특히 기록에 남겨두고 싶은 인상적인 장면들, 경험들, 사람들이 많았다.


#내맘대로_올해의 인터뷰


가을쯤 시작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4월부터 기회를 알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변화의 시점이 빨랐다. 
첫 출근은 6월 1일이었다. 계약해 두었던 번역 작업을 부랴부랴 끝내고(그 책은 안타깝게도 아직 출간이 되지 않았다. 2018년 초에 나올 것 같다)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두 번째 책인 [일상기술연구소]를 세상에 내놓고 허겁지겁 첫 출근을 했다. 


5월의 마지막 날에 [일상기술연구소] 저자로서 채널예스 인터뷰를 했던 것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타이밍 때문에 올해 했던 여러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되었다.

“사실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을 해요.”라며 했던 이야기들을 돌아보면, 지금이라면 다르게 말했을 것 같은 부분들도 있다. 그래도 통틀어 생각하면, 직장에 속하지 않았던 2011년부터 2016년까지의 일들과 2017년의 일들은 연속선상에 놓여 있고, 나는 내내 비슷한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일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그 모든 일들이 연결되는 스토리인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연결점들을 나만 인식할 수 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고도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나에게 요구되는, 동시에 나 스스로 중요하다고 믿는 역할들을 ‘잘’ 해내는 것이다. 그 역할들을 ‘나’로 잘 통합하기 위해, 또 그 역할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기 위해 다양한 일의 경험과 역할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붙이는 작업들을 해나가는 것 뿐이다. 그 작업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그 스토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 순간들에 나는 충만함을 느낀다.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했던 말 중 여전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라면 아래의 이것이다.

“일단 ‘일’이 (제게는) 중요한 키워드예요. 양가감정이 있는데, 저는 일하는 걸 좋아하고 뭐든지 다 일로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제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 스스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노동이라고 말하는 방식의 활동으로 일상을 채우고 싶은 건 또 아니거든요.

또 하나 (요즘 생각하고 있는) 키워드로는 ‘유능감’이 있어요. 유능하다는 감각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것 같아요. 누가 나를 평가해서 인정받을 때가 아니라 나 스스로 유능함을 느낄 때요. 유능함은 꼭 외부적인 준거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제일 먼저 느끼는 감각이거든요. 어제 할 수 없었던 걸 오늘 할 수 있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기분 좋은 일이에요.”


그리고 빼도박도 못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은 이것이다.


“꾸준히 번역을 틈틈이 하면서 책도 쓰려고요. <일상기술연구소> 팟캐스트도 계속 할 예정이에요.”


번역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팟캐스트도 시즌 2를 마무리한 뒤 중지 상태다. 시즌 3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기고 끝냈었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정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방송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뭐 꼭 그럴 것 까지야, 사이를 오가는 마음.

책을 쓰는 것만은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아주 느리지만 앞으로는 나가고 있으니까, 여전히 유효한 말.



#내맘대로_올해의_책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날의 날짜를 표지 뒤의 면지에 적어넣는 습관이 있다. [아픈 몸을 살다]를 다 읽은 날은 2017년 10월 1일이었다. ‘올해의 책’으로 꼽을 책은 쉽게 정해졌는데, 되돌아보려 책을 펼쳤을 때 10월 1일이라고 적혀 있어 좀 놀랐다. 내 기분으로 이 책을 읽은 지 6개월은 된 것 같았다. 정말 올해의 시간은 밀도가 높았다. 하루, 일주일은 총알처럼 흘러갔는데, 뒤돌아 복기하면 6개월이 2년쯤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픈 몸을 살다]는 다음의 세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목숨을 위태롭게 한 질병을 두 번 겪었다. 서른아홉에는 심장마비, 마흔에는 암이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다.” 


서두에서, 그리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픈’ ‘몸’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아픔을 몸으로 살아낸 당사자에 의해 쓰였다. 와중에 저자는 의료사회학자다. 관찰자로서 병과 회복을 다루던 직업인이 원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방식으로 당사자의 자리에 내던졌을 때, 그것이 어떻게 내적인 도약이 될 수도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국어 제목은 ‘아픈 몸을 살다’지만 원서의 제목은 ‘몸의 의지로(At the will of the body)’다. 내용과 연결해 얼핏 생각하면, 의지로 병을 극복한다는 말처럼 읽히지만, 핵심은 ‘몸’에 있다. 갑작스레 중한 병이 닥치면, 몸이 타자처럼 여겨지는 경험을 한다. 내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나의 인식이나 의지 밖에 있다는 실감이다. 이 책은 몸이 제한하는 나의 ‘정신’ 또는 내 ‘마음’의 한계를,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선택의 여지를 찾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겪었던 ‘아픈 몸’의 경험이 현재진행형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나는 단지 질병에 대한 것으로 읽지 않았다. 때때로 내 인생을 두고 횡포를 부리는 파괴적인 우연 앞에서 선택하는 능력을(그게 착각에 불과할지라도) 지켜내는 힘, 그 선택의 힘은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에 달렸다는 사실을 조용히 웅변하는 책이었다.


통증으로 고통받던 밤, “평화로이 몸을 눕힌 사람들에게서 분리”되는 와중에 어째서 아내 캐시를 깨우지 않았는지, 통증에 시달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한밤중 창밖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자신을 조화로운 상태로 되돌려주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몇 차례 반복해 읽었다.


“왜 캐시를 깨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직 절반만 답했다. 다른 절반의 이유는 캐시의 잠이 내게 유일하게 남은 질서였기 때문이다. 더는 다른 사람들이 휴식할 때 함께 쉴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족의 휴식이 중요했다. 나는 잘 수 없었지만 여전히 아내의 잠은 아껴줄 수 있었다.”
“소중히 하는 마음에 관해서는 좀 더 쉽게 쓸 수 있다. 가족들은 잠들어 있었고 그들의 잠은 내게 소중했다. (...) 질병과 통증은 삶을 조각내지만, 사는 이유를 모두 빼앗겼다고 혹은 사는 이유가 막 사라질 참이라고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조화를 발견하곤 하며, 그렇기에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창에 비친 아름다움을 본 그 밤에 통증은 덜 중요했다. 내 몸에서 나를 떼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내 몸 밖으로 나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잠도, 그 창도 소중했다. 그래서 나 자신도 계속 소중히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창문에서 본 것을 모두 이해할 만큼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언어는 오직 나중에야 경험을 따라잡는다. 하지만 그 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소중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부분을 다시 읽어 보아도 그렇다. 이건 질병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특별히 좋았던 또 다른 구절은 이렇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강력하며, 그렇기에 위험하다.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온다. 어떤 이야기는 우리가 찾아내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곁에 와 있는 이야기도 많다. 또 어떤 이야기는 우리 삶에 억지로 부과되기도 한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고 어떤 이야기를 사용할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를 쓴 지 3년도 더 되었고, 이제 내가 그 책에 뭘 썼는지 전부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스스로 좋아했던 구절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고 믿어버린다면 정말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나 선택 앞에 놓인다. 선택지가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밖에 없을지라도.”


이 말을 오백 배는 더 우아하게, 아서 프랭크는 이렇게 쓴다.


“이제 나는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그저 일어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엔 30킬로미터를 뛰고 그 다음 날엔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선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선택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의 능력이다. 선택이 아무리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어떻게 오늘 하루를 보낼지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확인할 수 없는 명제이고, 믿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믿음에는 효과가 있다.

덧) 올해 읽은 책 중, 번역이 가장 아름다운 책이기도 했다.



#내맘대로_올해의_인물(들)


올해에는 전기가 될 만한 여러 순간이 있었다. 3월의 여행 중에 다시 회사에 들어가겠노라 최종 결심한 것부터, 6월에 임팩트 투자회사 ‘옐로우독’으로 첫 출근을 시작한 것, 8월에 ‘공공그라운드’를 설립하면서 (구)샘터사옥 매입 계약을 체결한 것. 이 과정을 통해 책으로 익혔던 임팩트 투자라는 필드로 서서히 몸을 들여놓아 갔다.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연결되었던 ‘사회적 가치’의 세계를, 이전의 직장들에서 획득한 ‘투자’의 언어를 통해서 내 본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3월, 6월, 8월의 전환점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이라면,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임팩트 투자 컨퍼런스 SOCAP에 다녀온 것은 내 마음의 상태를 그 전과 후로 명백히 구분 짓는 분기점이 되었다. ‘어떻게’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렴풋한 아이디어와 그만큼의 의심이 있던 것이 SOCAP 이전의 상황이었다면, SOCAP을 통해 임팩트 투자의 ‘어떻게’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상상이 가능하게 된 것은 SOCAP에서 만난 사람들 덕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부딪히는 한계를 지적이고 지루한 방식에, 그럼에도 열정을 담아 한걸음씩 해결해 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이번 SOCAP에는 TPG니 베인 캐피털 같은 빅네임들이 시장을 이전과는 다른 레벨의 규모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데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그 안에서 "규모가 커지든 말든, 전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종류의" 임팩트 투자를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이었다. 10년이 넘게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전체 시장이 커지고 대형자본이 들어온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서도 냉소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투자 구조, 투자 상품을 꼼꼼하게 설계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알맞은 종류의 자본에 기어이 가닿고 자신들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SOCAP의 여러 세션에서 이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내가 망설임 없이 최고로 꼽았던 세션은 “Is Impact Investing Ready for a Secondary Market?”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이 세션의 패널들은 스스로 "여기서의 논의는 '201' 레벨이다."라고 말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101(초급) 수준의 개론을 넘어 중급으로 넘어갔다는 선언 같았고, 거기서 오는 감동이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와 목적은 이제 충분히 얘기했잖아, 이제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 같이 들렸달까.


저개발국가의 사회적기업에 초기 자본을 투자하는 데 집중하는 두 투자 기관 MacArthur Foundation과 Acumen Fund, 이런 임팩트 투자기관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투자은행 Enclude의 사람들이 이 세션의 패널이었다. 이들은 초기 자본 투자가 안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을 탄생시킨 후에도 여전히 exit의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secondary market을 만듦으로써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안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을 탄생시켰지만, 지역적 한계, 규모의 한계로 인해 IPO나 M&A를 통해 투자를 회수하는 것이 어렵다면, 이런 기업들을 일종의 ‘liquidity vehicle’에 담아 좀더 표준화된 상품으로 변모시킴으로써 광범위한 자본 시장에 연결해보겠다는 것이다. Macarthur나 Acumen이 이런 식으로 자본을 회수할 수 있다면, 이들은 회수한 자본을 들고 다른 사회적기업에 초기 자본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가설과 고안 중인 거래구조를 설명하는 데서 그들의 흥분과 기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잘만 된다면, 우리가 십수 년을 분투해온 문제 하나가 풀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그들의 기대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자문역이랄 수 있는 Enclude의 Laurie Spengler에게는 열정이 느껴지고 그 클라이언트인 Acumen의 Sasha Dichter에게서는 신중함이 느껴지는 가운데, 어쩌면 갑-을 관계로 묘사될 수 있을 두 사람 사이의 동료애가 고스란히 드러나 부럽고 좀 뭉클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금융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들이는 지적 수고의 내용이 짜릿했다.


이 세션을 듣고 감동한 데다가, 특히 쏘쿨하게 자신의 일을 설명하는 Sasha Dichter에게 반해서 구글 검색을 좀 돌려봤더니 그가 출연한 2010년 TED 영상이 튀어나왔다. 오 역시 멋졌다. 오래 전의 영상이지만 임팩트 투자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아래는 그 동영상. 뒤로 갈수록 감동적입니다. 꼭 한번 보시길 추천해요.)



그리고 샤샤 아저씨는 이 일을 참 오래했구나, 이때나 지금이나 멋있구나. 그러니까 #내맘대로_올해의_인물 로 뽑아드립니다.


++


SOCAP에서 돌아오는 길에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었다.


어디서나 자신의 agenda에 집중하며, 지적인 노력을 마음으로 기울이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이제 나도 나의 일로 돌아갈 시간.


2017년을 마무리하면서 한번 더 되새겨본다. 내년에도 ‘해봤는데 삽질이었네’의 순간에 수없이 부딪힐 것이고, ‘결국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 척박한 외부 환경을 계속 실감하겠지만, 어렵다고 해서 지적으로 게을러지지 말자고, 다 환경 탓으로 퉁치지 말자고, 하기로 마음 먹은 동안은 성실하자고, 샤샤 아저씨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맘대로_올해의_잘한일


지난 5년과 별로 다르지 않게 올해도 참 많은 일을 벌였고, 접기도 했고, 계속 하고도 있다.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늘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접어야 할 일들은 있지만,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나는 정신승리에 능한 사람이라 벌인 일들은 대체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올해의 잘한 일’을 꼽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혼자서라면 하지 않았을, 주변의 누군가가 꼬셔 주었고 그 꼬심에 넘어감으로써 해볼 수 있게 된 일에 ‘올해의 잘한 일’ 칭호를 내린다. 바로 ‘범서파’에 가입(?)하게 된 일이다.  


범서파 이야기는 심지어 지면에도 쓴 적이 있다. 20대 중반(어쩌면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의, 서대문구와 그에 인접한 마포구와 은평구에 사는 일하는 여성 여섯 명이 모인 조직(?)으로, 여섯은 같은 학교를 다닌 것도 같은 회사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냥 모이게 되었다. ‘목적 없는’ 만남에 능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어쩌다 그냥 모인 사교 모임’은 아주 이례적인 일인데, 불러주신 분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그냥 나갔고 그날로부터 범서파는 내 맘속 ‘비빌 언덕’이 되었다. 일하는 여자로서 부딪히는, 어디 가서 말하기 뭣한 소소한 짜증부터 심오한 문제의식을 별 검열 없이 털어놓는 장소인데다가, 이 모임은 너무 웃기다. 우리는 분명 서로가 겪는 불편을 숱하게 털어놓는데도 현실에서 모였을 때나 카톡방에서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나 빠짐 없이 위트와 에너지가 넘치는 동료들이다. (위트가 모자란 나는 허술함으로 내 몫의 웃음을 공급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에게는 “ooo이 시키면 무조건 한다”는 사람들이 좀 있다. 그 사람의 능력과 의도와 거기에 취향까지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자는 일이 대체로 재밌고 의미있는 경험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굳이 세세히 따져보지 않아도 무조건 ‘오케이’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 범서파를 비롯해, 올해는 그런 사람의 수가 제법 늘어난 한 해였다. 쓰다 보니 ‘올해의 잘한 일’이라기보다는 ‘올해의 행운’에 가까운 것 같다.



#내맘대로_올해의_영화

올해의 영화는 망설일 것도 없이 ‘컨택트(Arrival)’다. 영화는 2월 19일에 다 쓰러져갈 듯한 데다가 퀴퀴한 냄새마저 풍기는 연신내 메가박스에서 오밤중 심야영화로 보았다. 나는 영화관에 잘 가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내가 올해 영화관에서 본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영화가 끝났을 때, 비록 2월이었지만 내게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가 될 것을 알았다. 사실, 그걸 넘어서 거의 ‘인생 영화’겠는데, 라고까지 생각했었다. 이 영화에 홀딱 반한 이유는 너무나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개인적인 이유로는 친구들과 함께 니체의 책들을 읽었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의 마음을 지금은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시카리오’도 굉장히 좋았던 터라 드니 빌뵈브 감독의 팬이 되었다. 감독의 데뷔작 ‘그을린 사랑’도 얼마 전에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렬한 영화다. 피해자를 서사의 대상이 아니라 서사의 주체로 세워줌으로써 피해자를 피해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게 해주는 영화였다.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추천.



#내맘대로_올해의_식당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어쩐지 위로가 필요할 때, 남편과 함께 집 앞의 양갈비집에 갔다. 아주 잘하는 곳은 아니겠지만, 나쁘지 않은 음식에 무엇보다 응대가 늘 친절하다. 양갈비와 지삼선을 안주 삼아 연태 고량주 한 병을 남편과 나누어 마시면서 징징거리기도 킬킬거리기도 으스대기도 하면서 나눈 모든 대화가 좋았다.



신혼여행 이후로 다섯 번째 간 휘슬러에서 눈 쌓인 산을 바라보며 치킨윙을 먹었던 식당도(같이 먹은 사람들도) 좋았고, 친구들과 간 오사카에서 먹은 미슐렝 원스타 식당의 소바도 인생 소바였지만, 그래도 언제나 쓱쓱쓱 걸어나가 남편과 파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이 양갈비집이 최고다.



#그래서_새해에는


닥쳐올 변화들에 그저 잘 반응해야 할 한 해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중요한 것들을 놓지 말고, 순간순간에 집중해서 잘 판단하고 선택하는 수밖에는. 그런 만큼 딱히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없다. 다만, 결심은 해본다.


(1) 좀더 관대하게 말하고 행동하자 

(2) 호기심을 잃지 말자

(3) 하지 않기로 한 것은 하지 말자


(1)과 (2)가 되려면 무엇보다 피곤해져선 안 된다. 몸의 소리에 잘 귀기울이고, 컨디션을 좋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3)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두구두구.


작가의 이전글 직업이 여럿인 당신을 위한 조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