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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Oct 18. 2023

무모하지 않게 그러나 더 늦지 않게

캠핑일기 : 뭐든 아끼면 똥이 됩니다. 시간도요....

    그러하다. 장대한 계획을 백만가지 떠올려두고 실행하지 않은 일 투성인 것이 인생이라는 것일까. 유난히도 하고 싶은 일들은 실행 목전에 두고 반려해오던 나의 나날들. 요즘 들어 나의 기조는 생각에 머물지 않게 시도라도 하자는 것. 

    아니 그래서 지난 주말에 나는 차박을 하고 왔다.

    지난 2019년 코로나 유행 직전 제주에 이어 서울에 사업장을 하나 더 오픈하면서 영업을 위해서 카니발을 한 대 더 마련하게 되었었다. 카니발을 고른 이유는 당연히 넓은 수납을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 차박에 대한 나의 로망을 위해서였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카니발은 코로나로 인한 행사수주 감소와 함께, 체력저하로 인한 출장행사 반려, 장충동영업장 인근의 주차난과 서울의 교통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중교통의 편리함을 알아버리게 되면서 지난 보험갱신만료기간에 준하여 4년만에 되팔게 되었다. 카니발로 카니발을 즐긴 횟수는 정말 한 손으로 곱을정도였다. 

    그러다 지난 추석연휴를 서귀포집에서 보내고 싶었던 나는 한 달도 더 전부터 열심히 비행기표를 검색했는데, 해외여행버금가는 수준에, 그마저 서울로 돌아오는 표구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이 부지런한 사람들...) 차선책으로 배편을 검색 중, 마지막 1자리를 일단 예약하고 보는 것에서 촉발된 서귀포차 서울로 올리기 계획이 착착 진행되어서 실로 1년만에 나는 다시 내 차를 곁에 두게 되었다. 

언제 다시 또 차로 제주를 가게 되려나..

근 몇 달 사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 덕분에 그리고 그 무엇보다 10월의 이 아름다운 계절이 너무나 아깝고 소중한 마음이었으므로 "일단 GO!" 를 외치며 '숲나들e'와 '캠핏'을 뒤져내어 횡성자연휴양림으로 수 년만의 염원이었던 차박을 다녀오게 되었다.



    나는 캠핑 장비가 없다. 그닥 그 장비에 큰 욕심도 없다. 제주에서 바다에 갈 때 싣고 다녔던 접이식 비치체어 두 개가 나의 캠핑의 시작이다. 그리고 지금의 매장으로 이사오기 직전 장충동 골목 시절 테라스에서 쓰고 이후에 창고에 방치해 온 파라솔을 꺼내 싣는다. 몇 시간 전까지 차량용 타프를 검색하던  나였습니다만, 뭐 머리위에 지붕만 있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있는 물건들을 캠핑에 활용하기로 하고 다녀왔다. 내가 사이트에 도착해서 이렇게 저렇게 의자놓고 파라솔놓고 화롯대 놓고 하는 사진을 중간중간 오래버니한테 사진찍어보내주니, 장비빨로 캠핑하는 오래버니가 우스워 죽겠다고 깔깔거리고 놀려대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한 개도 그렇지 않은데 오래비가 왠지 부끄러워 하는 것도 같았다. 왜 내 사이트가 어때서.

창피한 이유를 서술하시오

부끄러워하는 오래비를 위해 추후에 오래비가 강제로 빌려준 갬성 모포와 뭐 이것 저것 헝겊커버들로 분위기를 좀 바꿔주긴 했다.

역시 갬성


훗. 내가 봐도 웃기지만 웃긴 것 마저 오롯이 다 나만의 순간들이어서 즐겁다. 역시 캠핑의 꽃은 화롯대이다. 캠퍼라고 하기에 너무 초짜이지만 또 뭐 처음도 아니어서 뭐든 익숙하게 뚝딱뚝딱 해결해가는 과정이 재미가 있어, 이래서 다들 캠핑들 오는구나 싶더라?

귀여운 나의 사이트. 배전반뷰로 골랐다.

    성공적으로 차에서 잘 자고 일어난 아침. 잠깐 산책으로 시작해 짧고도 강력하게 나름 험난한 등산을 마치고 부랴부랴 정리후 인근 10분거리 횡성호수길 5번 둘레길을 찾아가 4.5키로를 걸었다. 찬찬히 호연지기하고 싶었으나 관광버스 대절해서 형형색색 원색트래킹 차림의 딱따구리 웃음소리장착, 일단 소리부터 질러보는 아줌마 아저씨 그룹을 벗어나느라 좀머씨마냥 매우 급하게 걷게 되어 아침등산에 이어 크록스로 경보같은 도보 4.5키로! 예상보다 짧은 시간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극혐아이템에서 이유있는 캠퍼템으로 인정!!

횡성호수길은 생각보다 참 좋았다. 수변의 높이가 바로 앞인것도, 수변을 걸으며 상상해보는 물 속의 지형들이 흥미롭더라. 어디서 이 물이 고이기 시작해서 이렇게 넓고 깊은 호수가 되었을까. 기회가 되면 저 수면위에 카약을 띄워 오래동안 천천히 흘러가 보고 싶다. 


이번 캠핑에서 화롯대 불멍하며 휘적거리던 얇은 장작끝이 불에 타 숯이된걸 보고 드로잉노트를 꺼내든다. 근간 뭐든 그리고 싶었으나 아이패드에서도 종이에 펜으로도 도통 손이 풀리지 않은듯, 머리도 굳은 냥 뭘 그릴지 몰라 헤메던 나를 극복하듯 케테콜비츠 빙의해서 눈앞에 보이는 나무기둥들을 마구마구 그려보았다. 

나중에 보니 그을음에 연기냄새가 배어 노트도 거기 그린 그림들도 엄청지저분 하드라.

서너페이지 손가는데로 휘적휘적하고 나니 돌아온 후에도 다이어리에 직접 그리는 손이 조금 씩 풀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또 몇 페이지를 그려보고나니 이 드로잉 노트를 어떻게 채우게 될지 흥미 진진해진다. 아마도 과슈와 수채로 채색하여 주변의 식물들과 식재료들을 그리게 될 것같다. 


    무모한듯 늦지않게 다녀온 짧은 차박캠핑으로 작은 즐거움을 찾아낸 기분이 든다. 뭐 이렇게 기록까지 했나 싶은 소박한 순간이지만 나에게느 앞으로 뭐든 적극적인 결정을 하는데 꽤 큰 영향을 주게된 시간들이었달까. 누군가 동행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오롯이 내가 나를 돌아보고 위하는 시간으로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요즘 나는 혼자가 더 편하다. 그리고 다음의 캠핑이 기다려진다. 더 늦기전에 마음껏 더 열심히 유유자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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