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코어(normcore)는 사실 연식이 좀 있는 말이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꼽은 올해의 신조어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며 유명세를 떨치던 게 무려 7년 전, 2014년이다. 놈코어는 평범함을 뜻하는 노멀(normal)과 절대적인, 극도의 의미를 지닌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지극히 평범한 것을 추구하는 게 놈코어다. 주로, 흰 티셔츠와 청바지, 심플한 스니커즈 스타일로 표현된다.
대체 왜 이런 평범함이 유명세를 떨쳤을까?
필자가 관찰한 배경은 이렇다. 그 당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느냐? 이 때는 국내에서도 패스트 패션이 ‘대중적으로’ 피크에 이르렀던 시기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에 모든 사람이 질려가던 때다. 국내에 ZARA가 진출한 것이 2008년이었고, 이때까지 소위 ‘잇백(it bag, 3초에 하나씩 팔린다고 해서 3초 백이라고도 불렀다)'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폰이 2008년에 한국에 상륙했는데, 그전까지 핸드폰은 매년 디자인을 바꿔가며 ‘패션’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그 정점이 아마도 프라다폰이었지 않나 싶다. 혹시 연식이 조금 되신 독자분들이라면 드라마 [스타일] 속 ‘엣지있게~’를 외치던 김혜수를 기억할 것이다.
왼쪽: 드라마 ‘스타일’, 오른쪽: 패션 넘버 5
매거진 편집장의 파워가 더없이 강력했으며, 그 파워를 시즌마다 바뀌는 ‘쉬크’와 ‘엣지’가 뒷받침하던 것이 2009년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 엣지는 2년 후 개콘의 ‘패션 넘버 5’에서 장도연과 박나래가 시전하는 기괴한 B급 버전으로 희화화되었다. 자극적이고 빠르게 바뀌던 유행은 B급 감성으로 점차 쇠퇴해갔고 대략 2013년 정도쯤에 이르면 '잇백의 시대는 갔다'는 류의 분석글들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이 ‘스타일’의 쇠퇴 시점에 #놈코어는 시작됐다. ‘놈코어’를 공론화시킨 뉴욕 기반의 트렌드 예측 그룹 K-Hole은 놈코어를, ‘다르지 않음’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남들과 다른 개성을 표출하지 않고 평범한 그룹에 속함으로써 평화롭고 자유로움을 느끼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필자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트렌드는 나를 구별 짓기 위한 욕망의 발현이며, ‘놈코어’ 역시 ‘평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르기 위해’ 채택한 새로운 태도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놈코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완벽한 ‘구별 짓기’ 행위였다. 우선, 장황하게 살펴본 것처럼 이 시기는 ‘새롭고 남다른 패션 스타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던 때다.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보편적인 명제 아래, 달라지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엣지있는 패션을 소비했던 거다.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생명체의 눈이 하나인 행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곳에 간다면 우리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별종이 돼버릴 거다.
모든 이가 ‘남다른 패션’을 장착한 이 시기에 ‘엣지’는 더 이상 남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것이 되어 있었다. 남과 다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구별 짓기의 상징이 필요해지게 된 거다.
자, 이제 주목할 것은 이 시기에 가장 잘 나가는 집단이 누구냐는 거다. 동시대 최고의 혁신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기술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고 (2011년 안타까운 죽음으로 전설이 되었다.) 2010년 타임지는 ‘마크 저커버그’를 올해의 인물로 지목했다.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본격 시작된 지점이다. 사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공대 출신을 ‘공돌이’라고 불렀으며, 컴퓨터에 심취해 다른데 관심이 없는 프로그래머를 일컬어 ‘너드’라고 했다.
왼쪽부터: 무심한 패션왕 저커버그, 그리고 놈코어의 대표적인 스타일
과거 공돌이와 너드로 불리던 이들이 일 순간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 시기에, 공교롭게도 ‘쉬크’한 ‘엣지’가 평범하고 지루해지고 있었던 거다.
기괴한 엣지로 차별화에 몰두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실리콘밸리 영웅들의 ‘패션은 1도 몰라요’라는 듯한 무심하고 캐주얼한 스타일은 새로운 구별 짓기에 완전히 성공했고 평범함은 새로운 ‘쿨함’의 상징이 되었다.
실리콘밸리가 승승장구하는 한, 그리고 그곳의 엔지니어들이 금융계 종사자들 같은 차별화된 스타일로 구별 짓기를 하지 않는 한 놈코어는 여전히 면면한 보편의 감성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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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을 마감 기한으로 정했건만, 결국 토요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에 뿌듯하긴 하지만, 대놓고 약속을 어긴 찝찝함과 죄송함에 어쩌지를 못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