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으로 발현되는 현대사회의 고독
영화 <셰임(Sham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호텔, 모텔 등 각종 숙박업소의 예약이 꽉 차고 콘돔 판매량이 평소보다 크게(20%~50%가량) 늘어난다. 섹스가 잦아진다는 의미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그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냥 넘어가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깔려있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에 이뤄지는 수많은 섹스 중 비참한 섹스는 얼마나 될까. 다들 황홀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그렇게 미적거리던 생각이 다다른 '크리스마스 특집' 추천 영화, <셰임>이다.
스티브 맥퀸의 <Shame>(2011)은 현대인의 고독을 차가우면서도 섬세하게 다룬다. 뉴욕에서 혼자 지내는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준수한 외모에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기업가다. 영화는 침대에 공허한 표정으로 누운 그가 보내는 아침 일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자동응답기로 돌려놓은 전화엔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나체의 브랜든은 자신의 오줌을 그것과 함께 흘려보낸다.
화장실은 배설 행위가 벌어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브랜든의 균열은 이곳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는 회의를 마친 뒤 화장실에 달려가 격렬히 자위한다. 퇴근 후 회사 근처 술집에서 만난 여성과 섹스를 하고, 집에 돌아와선 화상채팅으로 다른 여성의 몸을 탐한다. 매춘 여성들을 찾아가기도 때론 집에 불러들이기도 한다. 매번 다른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섹스를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즐겁지 않다. 이쯤 되면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그는 섹스 중독자다.
씨씨의 등장으로 브랜든의 위태롭고도 규칙적인 일상은 어그러진다. 그녀는 브랜든이 내내 받지 않았던 전화를 건 사람이자 그의 친동생. 씨씨는 무작정 브랜든의 집에 찾아와 얹혀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브랜든이 육체적으로 목말라있다면 씨씨는 정서적 관계에 집착한다.
그녀는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하나의 관계가 끝나자 무작정 오빠의 집으로 찾아가고, 그에게 기대기를 원한다. 그녀는 브랜든의 직장 상사가 자신에게 작업을 걸자, 그가 속삭이는 욕정을 사랑이라 믿는다. '비록 그는 나를 잘 모르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지금 내 몸을 원하니까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당장 브랜든이 직장에서 곤란해질 상황 같은 건 안중에 없다.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브랜든과 씨씨의 동거는 당연하게도 삐걱거린다. 브랜든은 씨씨 때문에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상사와 씨씨가 자신의 침대에서 섹스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씨씨는 외로운 자신을 자꾸만 밖으로 밀어내는 브랜든이 야속하다. 물론 그가 즐기는 각종 포르노그라피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브랜든은 회사 동료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다가 자신의 결여를 다시금 확인한다. 이에 더해 직장과 집, 즉 삶의 모든 곳에서 위기에 몰린 브랜든은 결국 막장까지 치닫는다. 쾌락의 역치는 높아져만 가는데,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 말고는 어떤 방법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가 육체만을 남기는 동안 스스로를 해치는 또 한 사람, 씨씨는 영혼만을 남기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두 사람은 극적일 뿐 여느 누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첨단 통신망으로부터 비롯된 엽기적 시도들-몸캠, 커뮤니티를 통한 스와핑, 난교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은 유대와 연대, 그리고 관계가 사라진 유동적 사회 속의 필연적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의 '액체(liquid)' 사랑이라 표현한다. 피로할 정도로 넘치는 듯한 관계들이 실제로는 '진정한 유대'가 모두 사막화된 현대의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아주 적합한 명명이다.
우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돈도 시간도 없다. 있다 해도 그것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에 쏟을 '여력'이 없다. 깊이 관계 맺는 것이 두렵고 감정적 소모를 기피하며 정서적 교감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모순적으로 늘 사랑을 갈망해서,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결여에 허덕인다.
결국 가슴에 난 구멍엔 충동과 욕망만이 단단히 엉켜버린다. 곁의 그 또는 그녀는 다른 이름-섹스 파트너, 데이트 메이트, 원나잇 러버 따위-의 누군가. 채우고 바꾸고 더하지만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끝없는 공허함과 갈증, 결핍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의 치욕(shame)이다. 요컨대 섹스 또는 사랑 후의 얼굴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