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활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서민서패밀리 Sep 15. 2017

어 퍼펙트 데이 A Perfect Day, 2016



인생을 살면서 완벽한 하루를 고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언제를 선택할까? 결혼식, 입학식, 졸업식, 생일파티 등 여러 날이 후보로 등장할 것이다.


내 경우에는 아마도 아이가 태어난 날을 고를 것 같다. 진통이 시작된 이후로 진행된 24시간이 방금 일어난 일 처럼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어 퍼펙트 데이 A Perfect Day, 제목을 보면서 제일 먼저 궁금했던 점은 바로 그것이다. 얼마나 완벽한 하루이길래 감독은 감히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도대체 24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그랬을까.


우리 부부의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통해 그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웃기고 재미있었다.


1995년 발칸의 어딘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화협정이 맺어졌다고는 하나 세르비아, 보스니아, 유고슬라비아 여러 곳에서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을 곳곳에 총을 둔 군인들이 서 있으며 지뢰도 많이 매설되어 있다. 웃길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없다.


하지만 웃긴다. 전쟁이라는 비극의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전형적인 "블랙 코미디 Black Comedy" 다.


일단 상황 자체가 웃기다. 국경 없는 지원회 Aid Across Borders 의 봉사자들이 전쟁이라는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 매우 단순한 임무(밧줄을 구하는 일)를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실제 있는 기구는 아니며 국경 없는 의사회 Doctors Across Borders 를 본 따 만든 허구의 기구로 보인다)


그들은 어디서도 밧줄을 구할 수 없어 이리저리 헤매는 것으로 24시간을 보낸다. 밧줄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팀 로빈스(B 역)와 베네치오 델 토로(맘브루 역)는 유쾌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특히 팀 로빈스의 능청맞은 코미디 연기는 압권이었는데 영화관에서 잘 웃지 않는 나도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웃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잘생긴 쇼생크 탈출의 엘리트가 아니었지만 멋있게 나이가 든 중년의 연기자가 되어 있었다.


베네치오 델 토로는 잘생김을 연기했는데 어느 순간 진짜로 잘 생겨 보였다. 영화 중간에 착시를 느껴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처음에는 살찐 아저씨 같았는데 여주인공이 등장하며 갑자기 잘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이다. 암튼 그의 잘생김 연기는 수준급이었다.


둘의 연기 호흡이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2. 몰입도가 강했다.


영화는 그들의 하루를 천천히 보여준다. 그렇다고 늘어지지 않으며 긴장감은 계속 유지된다. 그렇게 몰입하여 보는 동안 어느새 24시간이 지나게 된다. 2시간의 러닝타임이 짧게만 느껴졌다.


지난밤 우물에 매우 뚱뚱한 남자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한 명, 두 명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며 그 밀도를 더해간다. 우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24시간 안에 밧줄을 구해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그 속에서 여러 상황들이 발생하는데 때로는 긴장감을 때로는 웃음을 주면서 이야기는 넉넉하게 진행된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그들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들은 또 다른 곳에서 봉사를 할 것이고 시덥지 않은 그러나 매우 재밌는 농담을 던지고 있을 것인데 그것이 매우 매우 궁금해졌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인 바로 그 우물이다.



3. 전쟁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전쟁을 다룬 영화들의 주요 행위자는 군인과 민간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NGO의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봉사를 위해 그곳에 있다. 전쟁 중인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UN군과 현지 군인 사이의 경계에 있으며 민간인들의 우호적인 대우도 받지 못한다. 그저 이방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는 동안 전쟁의 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폐허가 된 밧줄 마을, 그 안에 꼬마 니콜라의 폐허가 된 집이 있다. 우물이 오염된 것을 틈타 폭리를 취하는 상인들도 있으며, 도로 중간에는 지뢰를 품은 소가 설치되기도 한다. 이는 이전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전쟁의 실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주민들 나름대로의 해결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지뢰를 피하게 도와주는 소가 있었고 우물의 오염을 해결해주는 비가 있었다.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분명히 보였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UN 관료의 말처럼 그들의 삶을 그대로 두는 것이 어쩌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테랑이었던 델 토로는 언제나 주민들을 멀리서 지켜봐주는 자세를 견지했다.



4. 결국 완벽한 날은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24시간 열심히 노력했지만 얻은 성과는 없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완벽한 날을 위해 모두 노력했고 그러한 노력은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언젠가는 평화가 정착될 것이고 주민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마 그 날이 그들에게 완벽한 날이 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다만 노력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지원을 하다보면 완벽한 날을 앞당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쟁은 언제나 고통이고 슬픔이다. 지구 상에 더 이상 전쟁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감독이 만드는 영화는 하나지만 관객의 생각과 상상이 덧붙여지면 그 영화는 여러 개의 작품으로 거듭난다. 이 영화 "어 퍼펙트 데이"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브런치 시사회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헤미안 랩소디, 방랑의 서사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