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5년 3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 게재 글입니다.
제목: 삼월소회(三月所懷)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1.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일상은 소중하다. 그중에서도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은 특히.
출근의 목적은 퇴근이다. 퇴근과 함께 진짜 삶이 시작된다. 주말은 우리 삶의 에센스, 즉 정수(精髓)다.
작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퇴근 후의 ‘진짜 삶’, 주말이라는 ‘삶의 정수’를 광장에 바치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광장의 시간을 일구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친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바친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모두의 일상이 처절하게 그리고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짓밟혔을 것이며 우리가 깜박하는 사이 그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음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들의 마음과는 달리, 윤석열이 다시 풀려나왔고 헌재의 판결은 계속 늦춰지고 있다. 분노와 짜증, 무력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이제 지친다,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왔으니 이제 그 ‘가장 소중한 것’으로 보상받아야 할 때다.
‘광장의 시간’이 어서 결실을 맺어 ‘일상의 시간’, 그 눈부신 평범함의 시간으로 우리 모두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퇴근 후 누리는 안온한 평화, 주말 텅 빈 시간 속 여유가 주는 행복감, 이런 것들이 너무나 그립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윤석열 파면과 내란세력 청산 이후의 사회는 일상의 행복을 누구나 만끽할 수 있는 사회이길 빈다. 모든 노동자, 모든 가난한 사람, 모든 소수자, 모든 소상공인, 그야말로 모두가, 퇴근 후 시간을 그리고 주말을 풍요롭게 누리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2. 교사와 정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 사무처장으로 일한 지 석 달. 교사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2월 말과 3월 초, 도교육청에서 학교 현장으로 ‘내려보내는’ 공문들은 행간마다 자간마다 촘촘히 들어찬 교육 정책들, 교육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지 의도가 분명한 정치적 언어들로 시끌시끌하다. 바로 그 정책들은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루하루에, 수업에, 평가 내용과 방식에, 학생들과 나누는 말이나 표정에, 교장·교감과의 관계에, 매우 디테일한 영향을 미친다.
교육감이 누구인가에 따라 교육정책이 크게 바뀐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육감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교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교사의 일상을 바꾸어 놓고, 교사가 펼치는 교육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문제다.
이처럼 교사들이야말로 교육감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사들은 교육감 선거 때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가 없다. 정치 기본권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 하면서, 돌아가는 판을 그냥 바라봐야만 하는 신세이니, 참으로 속 답답한 노릇이다.
교육감 선거뿐 아니다. 교육 정책에 그리고 자신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총선, 대선, 지방선거, 그 어느 선거에서도 교사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정당 활동도 원천 금지다.
교사가 교육활동에서 종교적 중립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의무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교회에 가거나 절에 가거나 성당에 가거나 하는 종교 활동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교사가 교육활동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시민으로서 자신의 소신에 따라 정치 활동을 할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
내가 언젠가 퇴직하게 될 때 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끝인사를 할 것이다.
“동지 여러분, 축하해 주십시오. 저는 드디어 내일부터 정치 기본권이 있는 진짜 시민이 됩니다!”
그 정도로 정치 기본권은 내게 중요한 문제다. 물론, 내가 퇴직하기 전에 ‘교사 정치 기본권 보장’이라는 소중한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림_박현경, 천사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