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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번여사 May 16. 2023

마쓰야마시의 낡은 아파트로 숙소를 옮기다

시코쿠 한 달 살기 중 가장 잊지 못할 숙소

두 개를 동시에 다 가지는 건 힘들다. 무언가를 하나 가지려면 손에 든 걸 하나 내려놓아야 할 때가 많다. 다카마쓰와 마쓰야마에서 보낸 지난 2주 정도는 호텔에서 지냈다. 아주 최고급의 호텔은 아니지만 그래도 쓸만한 호텔에서 지냈다. 그런데 몸은 편하고 부족한 게 하나도 없이 좋은 상태이나 왠지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글은 엉덩이력으로 쓰는 건데 비싼 호텔비 내가며 엉덩이 호텔에 붙이고 글만 쓰고 있기에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자꾸 밖으로 나가 이것저것 보고 체험하고 느끼며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은 흐뭇하면서 아깝지 않은 하루를 보낸 듯하고 그랬다. 그러니 무슨 글이 차분히 앉아서 열심히 써지겠는가. 그러다 내가 이 돈 부분에 불편한 걸림이 있다면 다른 것을 좀 희생하고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을 얻자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저렴한 숙소로 옮기자. 그런데 호텔을 미리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닥쳐서 예약하려다 보니 마음에 좀 드는 것은 모두 만실 아니면 금액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수준들 뿐이었다. 다급해져서 며칠 밤 아무것도 못하고 숙소를 찾는 일에만 온 신경이 머물렀다.


그러다 호텔을 포기하고 에어비앤비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되어 낡고 작은 아파트를 하나 찾았다. 이 아파트도 어렵게 찾았다. 작은 도시라 에어비앤비 운영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건지 아니면 여기도 다 예약이 차 있는 건지 아무리 검색을 해도 시원찮은 게 없었다.


이 아파트를 처음 볼 때 사진상으로는 외관이 어찌나 낡고 오래되고 형편없는지 내가 여기서 지낸다는 게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런데 후기를 읽다 보니 호캉스 원하는 거 아니면 저렴한 금액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낼만하다는 어떤 한국인 아가씨의 글을 보고 마음이 좀 흔들렸다. 그러다 내가 여기 마쓰야마에 있는데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하며 호텔을 박차고 나와 구글 지도를 켜고 직접 그곳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와서 보니 당장 예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가 좋았다. 단지 건물이 오래되고 무진장 낡아 심란하기는 해도 동네가 괜찮았다. 그리고 사진상으로 볼 때 아파트 안의 상태는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결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일본의 오래된 전통 방식인 화장실이 베란다에 있다는 것과 샤워실 문제가 좀 걸렸다. 또다시 망설이게는 했지만 그래도 나 혼자만의 아파트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완벽히 자유를 얻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불편한 면들은 적당히 눈감고 즐겨보기로 했다. 그 뒤로 글에 집중할 수 있고 줄줄 잘 써나가면 되는 것이니까.


예약을 했다. 금액이 저렴해서 최악의 경우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맛있는 거 사 먹었다 치지 뭐 하며 마음 편히 가졌다. 만약 쓸만하다면 정말 기분 좋아지는 거고. 체크인하러 올라오는데 건물로 들어서는 입구가 어둠침침하니 벌써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거 뭔가 선택을 잘못한 거 아닌가 하는 자기 의심을 또 한 번 하면서 살짝 불안감이 올라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이다. 도대체 언제 지어진 건물일까? 먼지들이 쌓여 있는 난간들. 그러나 복도들은 제법 깨끗했다. 어떤 집 앞에는 심지어 꽃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직사각형의 파란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진 꽃들. 그 화분 하나가 주는 위안이 이렇게 클 수 있는가?


꽃을 심고 가꾸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동네라면 조금은 믿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집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 내가 묵을 곳인 가장 꼭대기층, 4층까지 올라갔다. 계단을 한번 더 올라가면 옥상으로 가는 곳이다. 옥상을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더니 들어서는 입구에 심란하기 그지없는 그물 같은 걸 쳐 놨다. 저걸 걷어내고 들어가라고? 누군가는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이 끝내주게 멋졌다는 후기가 있더구먼 저런 그물을 어찌 걷어내고 들어갔는가? 그때는 저런 게 없었나? 어쨌든 나에게는 옥상은 탈락.


4층 1호실. 대문은 굳건하기 이를 데 없는 두꺼운 철문으로 되어 있다. 대문 손잡이에 걸려 있는 무거운 쇠자물통. 호스트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돌리자 열쇠가 툭 떨어진다. 거참 번쩍번쩍한 21세기에 이런 수동 방식이라니. 하기야 이런 대문에는 오히려 이런 자물통과 자물쇠가 좀 더 어울리는 듯도 하다. 묵직한 철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오! 그런데 막상 들어서니 너무 괜찮다!  


두 명이 앉는 테이블을 놓기에도 살짝 비좁겠다 싶은 주방을 지나 중문을 여니 방이 제법 넓다. 깨끗하게 도배장판이 다 되어 있어 정갈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하나도 없는 아주 깔끔했다. 붙박이 장이 있어 그곳에 이불을 수납하고 옷들을 조금 수납한다면 혼자서는 충분히 또는 최대한 둘이서 지내기에는 괜찮은 공간이었다. 물론 나는 혼자 지내는 것이라 두 말할 것도 없이 속이 다 시원하고 쾌적하다고 느껴졌다. 이게 웬 횡재야 하는 생각마저 들며 기분이 제법 좋아졌다.


화장실이 베란다에 있는 것도 오히려 마음에 든다. 아파트에 살면서 화장실이 집안으로 들어와 있어 너무나 편리하고 당연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어려서 화장실과 방이 분리된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지금의 아파트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머쓱할 때도 있다. 화장실 문도 얼마나 무겁고 두꺼운 철문인지 웃음이 나온다. 베란다로 나가는 창문도 쇠로 테두리가 되어 있는 육중한 미닫이 문이라 열고 닫는데 불필요한 힘을 많이 써야 했다. 매번 열고 닫을 때마다 끼익 거리는 소리도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지만 나중엔 요령이 생겨 잘 열고 닫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그냥 웃기지 짜증은 전혀 나지 않았다.


멀리서 들리는 철길 건널목 소리, 가끔씩 지나가는 전차의 소리도 누군가는 불평의 후기였으나 나는 정겹기만 하다. 내 집처럼 지냈다 해도 이방인 같았던 호텔에 머물다 왠지 이곳은 집의 형태라서 그런지 돌아온 내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은근히 차분해지며 안정감을 느꼈다. 호텔에서도 나름대로 내 집이다 느끼며 잘 지내고 잘 잤는데 무조건적인 자유를 보장받지는 못하는 집 같았다. 매일 청소한다고 비워줘야 하질 않나, 청소하지 말라 하고 좀 더 쉬고 싶어도 결국 청소하는 소리들로 너무 시끄러우니 일에 집중이 안되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100% 내 맘대로 에 제동이 걸리고 완전히 몰입하는데 뭔가 걸림돌이 있는 기분이었다.


호텔에 치르는 금액이 만만치 않으니 조금이라도 보람차게 지내는 것이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몸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찰나에 호텔의 반 값도 안 되는 아파트로 와서 혼자 앉아 있으니 세상 남부럽지 않은 나만의 모든 공간을 얻은 듯하다. 아직까지 문제라 생각되던 다른 단점들도 그냥 참을 만하다.


좀 더 살아봐야 하겠지만 나에게 이보다 좋은 출구나 대안은 없다 생각하고 지내려고 한다. 우리의 뇌나 잠재의식들은 대안을 생각하는 순간 이미 힘든 쪽보다는 쉬운 쪽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한다. 오늘부터 나는 나의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쓰고 또 쓸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이 어떠할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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