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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번여사 May 13. 2023

나쓰메 소세키를 찾아서

도고온천과 봇짱 열차 그리고 그 경단!

내가 소세키를 알게 된 것은 김영하 작가의 팟 캐스트에서였다. 나는 고양이 소로이다를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접하고 동물 좋아하는 나는 평소에도 개나 고양이의 관점과 눈높이를 종종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 터라 나스메 소세키의 소설은 상당히 친근하고 재미가 있었다.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세상을 향한 풍자와 시선이 글을 읽는 내내 미소를 띠게 했다. 그때 이후로 나쓰메 소세키는 이름도 특이해서 그런지 잊어 버려지지 않고 나와 인연을 쭉 맺어오고 있다.


지난 1월 도쿄 한 달 살기 때 와세다 대학 근처에 있는 나스메 소세키 산방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소세키의 소설 중 도련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 소설의 배경이 여기 에히메현 마쓰야마시라는 걸 알고 시코쿠를 가게 된다면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에히메 현의 그 어떤 유명한 것들 보다 소세키와 관련된 것들이 훨씬 흥미롭고 관심이 갔다. 도련님이 즐겨 찾았던 도고 온천과 출근할 때 타고 다녔던 봇짱 열차, 한 번에 세 접시 사 먹고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경단등이 궁금했다.


여기서 잠깐 나쓰메 소세키를 소개하자면 본명인 나쓰메 긴조스케는 아사히 선정 지난 천년 간 일본 최고의 문인이며 1867년 나보다 백 년 전 탄생해 살다 간 소설가, 수필가, 비평가, 영문학자이다. 내가 생각하는 소세키의 소설의 장점은 누가 읽어도 술술 잘 읽힌다는 것이다. 백여 년 전에 써진 소설이지만 그 세련됨이 현재의 소설과 견두어도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문체를 구사한,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학에도 영향을 준 나쓰메 소세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을 듯하다.


어느 시골 고등학교 선생으로 부임해서 겪게 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장소, 마쓰야마시. 거기에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흔적들이 많이 나오는데 직접 가서 본다니 흥미진진했다. 그 생생한 소설 속 또는 영화 속 현장을 찾아서 직접 보고 느끼고 교감하는 경험은 그 어떤 경험보다도 내게는 즐거운 경험이다. 수년 전 여행작가 친구들과 영화 <새드 베케이션>의 첫 장면을 찾아서 기타큐슈를 여행한 적이 있다. 첫 장면의 촬영지뿐만 아니라 영화 속 촬영지였던 우에노 빌딩과 아사카페를 찾았던 경험, 영화에서 나온 음식들을 찾아서 함께 먹던 경험들은 다른 많은 여행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의 경험이었다.


호텔에서 도고 온천을 검색해 보니 걷기로 30분이 나온다. 이 정도의 거리와 시간은 걷기 여행자인 내겐 너무나 쉬운 거리, 아마도 사진 찍으면서 걸을 테니 넉넉잡고 한 시간 예상하며 출발한다.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나에겐 구글신이 있지 않은가! 여행자에게 구글맵은 정말 신 같은 존재다. 구들맵 하나 있으면 많은 문제들이 한 방에 해결된다. 얼마나 든든한지 세상 어딜 가도 두렵지 않게 해주는 존재.


도고 온천으로 가는 도중 마쓰야마시의 전철을 몇 대나 만났다. 귤의 고장이라고 귤이 그려진 전차들이 많았고 이곳을 대표하는 색도 오렌지색인지 전철의 색도 온통 주황색이었다. 물론 소설 속 도련님의 등장인물들이 그려진 전차도 있었다. 그렇게 삼십여분이 조금 넘게 걸었더니 멀리서 봐도 도고 온천일법한 곳이 눈에 띈다. 온천 초입에 봇짱 열차(봇짱이 도련님)가 길게 세워져 있고 그 맞은편엔 봇짱 시계라고 해서 매시 정각마다 소설 속 도련님의 등장인물들이 나와 퍼포먼스를 펼치는 유명한 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오전 열한 시가 다 되어 가는 행운을 맞아 나도 봇짱 시계 앞에 가서 기다렸다. 여기 마쓰야마는 일본 전역에서 여행을 많이 오는 곳이다. 이날은 소풍온 듯한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정각이 되자 음악이 흘러나오며 도련님이 제일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역시 레이디 퍼스트인가? 둥근 시계가 앞 뒤를 바꾸며 마돈나(소설 속 여자 인물)가 나온다. 그리곤 선생들이며 인력거 꾼이며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도련님은 역시나 그의 평생의 마음의 안식처와도 같았던 유모 할머니와 함께 등장한다. 온천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순간에는 어린 학생들이 다 같이 환호성과 함께 깔깔거리며 웃는 바람에 나도 따라 웃었다. 분위기가 더 좋았다. 어쩜 저렇게 하나를 만들어도 잘 만드나 하는 감탄을 보내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봇짱 열차를 탈 수도 있지만 그건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도고 온천을 가보기로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온천의 모티브인 도고 온천의 본관 입구는 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대략 한 바퀴 둘러보고 온천도 다음으로 미룬 뒤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도련님이 좋아하던 경단을 사 먹어 봐야 하니까.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세 접시를 먹고 그 놀림감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안 먹어봐도 얼마나 맛이 있을지.


지난번에 도쿄에 있을 때 신주쿠에서 사 먹었던 경단의 맛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지금도 또 먹고 싶은 생각뿐이다. 내가 도쿄를 가게 된다면 무조건 신주쿠 그 집에 들러 또 사 먹을 것이다. 그 경단의 맛을 알아버려서 도련님의 심정을 백분 이해하고도 남는 것! 어떤 가게 앞에는 소설 속 도련님과 마돈나의 모습을 실제 크기로 제작해 가게 앞에 세워 둔 곳도 있다. 역시나 도렴님은 경단을 들고 있고 마돈나는 우산을 들고 있다.


마치 도련님의 유모 할머니가 만들고 있을 법한 그런 경단 가게를 발견.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하나를 샀다. 이 가게에서는 차 한잔과 함께 경단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반전! 마쓰야마의 삼색 경단은 신주쿠에서 먹었던 조청 경단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 신주쿠의 경단은 말랑말랑 쫄깃쫄깃, 도련님의 경단은 팥을 삶아서 으깨서 뭉쳐놓은 텁텁 퍼석퍼석. 내가 사 먹은 집이 그런 건지 다른 집도 다 그런 건지 알 수 없다. 더 이상 시도하기 싫어서 한번 사 먹은 뒤로는 안 사 먹었다. 내 취향이 아닌 맛이다. 도련님은 왜 이런 걸 세 접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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