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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앤 May 11. 2023

마쓰야마시에서의 첫 버스킹

마쓰야마시의 첫인상은 백점이다

마쓰야마시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산책을 한 곳은 도고 온천이 있는 마을이다. 역시 마쓰야마시 하면 도고 온천 아니겠는가. 이 온천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좋아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나에게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이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이곳은 내가 마쓰야마에 머무르는 동안 몇 번쯤 다녀왔을까? 하여간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도고 온천을 걸어서 한 바퀴 구경하고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도시락을 하나 샀다. 이 가게는 마쓰야마의 특산품인 귤과 귤 관련한 제품들을 파는 전문점이었는데 도시락도 편의점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좋아 보였다. 금액도 저렴했다. 하나를 골라서 계산하고는 달랑달랑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550 엔하는 도시락의 구성이 얼마나 알차고 맛있던지. 무척 포만감 있게 먹고 나니 기분도 좋다. 배도 부르고 슬슬 우쿨렐레 메고 밖으로 나가볼까?


어제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눈여겨봐 둔 장소가 하나 있다. 거기로 가서 오늘은 며칠 못 부른 노래를 실컷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찜해둔 장소는 마쓰야마성 주변으로 예쁜 호수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호수옆 커다란 벚나무 아래의 벤치다. 꽃이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바람에 꽃잎이 눈 내리듯 떨어지고 있는 장소. 그곳에서 연주하며 노래 부르고 싶어 어젯밤부터 얼마나 안달이 났던지.

 

그러나 도착해 보니 아침나절에 산책할 때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점심을 먹고 나오니 이미 사람들이 군데군데 벤치들을 점령하고 앉아 있다. 내가 찜해둔 벚꽃 나무 아래 벤치도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 셋이 차지한 상태다. 한 아가씨는 무슨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가 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춤추는 것을 멈추고 얼른 친구들 옆에 가서 앉는다. 그리곤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뭘 그런 걸로 쑥스러워한단 말인가? 나는 조금 있으면 악기 연주하며 노래할 건데?


그 벤치는 아쉽지만 지나치고 다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엄청나게 큰 소나무 아래 벤치를 찾아갔다. 다행이다. 사람이 없다. 당연히 거기도 좋다. 자리를 펴고 악기를 꺼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지나간다. 이젠 이런 상황, 이런 일도 나에겐 제법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어 버려서인지 신경이 하나도 안 쓰인다. 묵묵히 내 갈 길 가듯 즐겁게 노래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노래를 제일 잘한다. 나는 내 노래가 세상에서 젤 좋다' 이런 마음 가짐으로 한참을 불렀다. 그러다 둘러보니 나의 최애(최고 사랑하는) 자리 벚나무 아래 벤치가 비어 있다. 아가씨들이 언제 갔는지 자리가 비어있길래 당장 가방을 주섬주섬 들고는 그 자리로 갔다. 행여 그 새 누가 또 앉기라도 할까 봐 티는 많이 나지 않았겠지만 내심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갔다. 그 자리에 앉으니 비로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다 갖춰진 기분이다.


이제 2부 시작. 또 한참을 이 노래 저 노래 부르다 다음 곡을 부르기 위해 아이패드 악보를 넘기는데 뒤에서 어떤 분이 다가와 일본말로 뭐라고 말을 한다. 못 알아듣지만 뭔가 좋은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분 표정과 몸짓으로 봐서는. 그래서 내가 나는 일본인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다 나는 일본 말을 모른다고 영어로 말을 했더니 못 알아듣는지 그래도 뭐라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또 시도한다. 그래서 뭔가 진지한 이야기인가 보다 싶어 우리의 자랑, 파파고를 켰다. 그리고 말을 하라하니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지 잠시 멈칫하다 이내 눈치채고는 핸드폰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또박또박 이야기를 한다. 그 모습이 귀여우시다.


번역된 내용을 보는데, "나는 일본 말 밖에 못해서 미안해요"라고 해서 "나도 한국말 밖에 못해서 미안하다" 했더니 괜찮다고 하며 내 노래가 듣기가 좋다고 한다. 여행하는 것이냐, 계속 노래해 달라, 어디선가 듣고 있을 테니 계속노래해라, 몸 건강히 잘 지내면서 여행해라, 나도 노래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다, 뷰티 뷰티 뷰티플이다 라는 말들을 파파고를 통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전했다.


내가 고맙다 이것은 하와이 음악인데 당신도 배워서 부르면 된다 했더니 자기는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를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라면서 안된단다. 그러면서 가방을 뒤적이더니 요구르트 음료를 하나 꺼내서 나에게 준다. 이거 먹으라고 하면서. 어찌나 인사를 여러 번 하면서 좋다고 해주시는지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러더니 한 곡 더 불러 달라 해서 한창 연습해서 외워둔 곡을 경쾌하고 신나게 불러줬다. 그리고 헤어졌다.


지금까지 일본 와서 버스킹을 해보면 남자들은 그냥 지나치거나 아무 표정 없이 그 어떠한 제스처 하나 없이 마치 소닭 보듯 묵묵히 지나쳤다. 이제껏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미소 지어주고 박수 쳐주고 칭찬의 말을 건네고 무언가를 주는 사람은 다 여자였다. 남자들 왜 그래? 일본 남자들 왜 그래? 내 노랫소리 안 들려?


오늘 호숫가 벚나무 아래 벤치에서의 버스킹, 마쓰야마시에 도착해서 한 첫 버스킹은 정말이지 대성공이 아닐 수 없다. 노래를 원도 없이 실컷 불렀더니 내 속이 다 후련하다. 얼마나 개운하던지! 마치 해야 할 일을 깔끔히 다 처리한 듯 아주 흡족하다.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한 상태로 가방을 정리해서 호텔로 돌아오는데 몽글몽글 기분 좋음의 상태가 점점 더 커진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며 그렇게 노래를 불러 놓고도 또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감동이다. 이 동네는 감동도 나이 든 사람 걸음걸이처럼 그렇게 은은하게 밀려오는 것인가? 이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메모장에 적어두리라 마음먹으며 호텔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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