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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번여사 May 12. 2023

별의별 곳에서 밥을 다 먹어본다

미우라 기념관에서의 한 끼

나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 자연의학을 공부하며 조식 폐지 생활을 한 지 20여 년도 훨씬 넘었기 때문에 나에게 아침식사라는 것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호텔 조식을 신청하지 않는 건 내 여행의 기본이다. 그런데 여기 마쓰야마시에 왔을 때는 조식을 신청해서 먹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몇 번 했다. 매 식사때문에 어딘가 찾아가서 먹는 일이 상당히 귀찮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날도 실컷 노래하고 돌아다니다 점심때를 놓쳐서 배가 무척 고파왔다. 어디서 또 한 끼를 해결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떤 건물 앞에 세워진 간판의 음식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심플하지만 정성스럽고 가정집 음식 같은 비주얼. 정말 먹을 만 한가? 유심히 보고 있는데 마침 그 건물에서 어떤 여자분이 나온다. 음식 사진을 바라보는 날 보고 그 사람이 "오이시"라고 한다. 일본말을 하지도 못하면서 오이시 소리는 알아 들어가지고 '오이시? 맛있다고?' 그 소리에 점심 메뉴를 즉흥적으로 결정해 버린다. 배고프던 찰나 잘 됐지 뭐 하며.


확실히 해 두자는 의미로 아주 간단한 의사표현 방법인 상대방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며 오이시? 하고 끝만 살짝 올려서 물었다. 그랬더니 이 아주머니가 나를 자신의 동족으로 본 것인가! 봇물 터지듯 우르르 일본 말을 쏟아내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렇지만 뭔가 아주 맛이 있는 건 분명한가 보다. 저렇게 열심히 성의껏 말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만국 공통 언어인 미소를 지으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건물 안의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3층? 이냐 했더니 맞다고 한다. 그러더니 아예 나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눌러 주고 3층 눌러주고.


후들후들. 어찌나 친절한지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영어로 땡큐 하려다가 성의 표시로 "아리가또 고자이 마쓰"라고 말했다. 이건 땡큐가 입에 더 찰싹 붙어있는 나에게서 제법 큰 성의 표시인 것이다. 그리고는 3층으로 올라가자 무슨 기념관 같은데 점심때만 식사를 하는 곳인지, 갤러리 레스토랑인지 다소 정체가 불분명하게 보이는 공간이 나온다. 전혀 식당 같지 않은 어리둥절한 공간이다. 다행히 몇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나의 한 끼는 책임져 줄 듯하다. 메뉴판은 당연히 일본어밖에 없고 그림이나 사진도 없다.


직원이 와서 물컵을 내려놓으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일본말을 흩뿌리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얼른 파파고를 꺼내 들이민다. 순조롭게 진행이 안된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바쁜 사람들인데 메뉴는 최대한 빨리 정해주는 게 좋겠지. 그냥 젤 위에 있는 오늘의 요리 주세요 했다.  그리고는 디저트로 코히랑 티랑 주스를 말하길래 당연히 여긴 귤의 고장인데 오렌지 주스 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예술 조각품 같은 것들도 있고 액자도 붙어 있길래 한 바퀴 돌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돌아오자 직원이 수프라면서 놓고 가는데 참 앙증맞다. 한 입에 홀짝 마시면 끝나게 생겼네. 뜨거워서 그렇게는 못했지만. 스케일 즉 그릇이 작은 만큼 먹는 양상도 거기에 맞춰지는 듯하다. 꿀꺽 꿀꺽이 아닌 홀짝홀짝거리고 있으니 잠시 뒤 본 메뉴가 나온다. 간소하면서 정갈한 상차림. 기분이 좋아 사진을 찍었다. 한 입 먹는데 맛도 순하고 좋다. 오! 오늘 성공이다!


그렇게 막 두 입째 먹으려는데 아까 밖에서 만났던 아주머니가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는 게 아닌가. 자신을 못 알아볼까 봐 마스크까지 벗고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아는 체를 한다. 나는 활짝 웃으며 오이시다 땡큐다 했더니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는 자신은 한국에 친구가 있다. 그래서 한국말 조금 안다며 한국어로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나는 오! 하고 놀란 듯 엄지를 추켜 세우며 멋지다고 해줬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규르주스 뭐라 뭐라 한다. 규르 주스를 시켰냐고 묻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오렌지 주스 시켰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잘됐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인사를 하고 간다. 나는 잘 가라고 인사하며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라고 이번에는 한국말로 인사했다.


지금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생각한다. 왜 규르 주스를 시켰냐고 물었지? 맛이 좋으니 아마도 내가 맛봤으면 하고 물은 듯한데, 마셔보니 그냥 오렌지 주슨데.. 뭔가 특별한 게 있나 싶어 자꾸 음미하듯 여러 번 마셔본다. 곰곰이 생각해도, 그래도 그냥 오렌지 주슨데? 뭐지? 겁나 궁금하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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