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특별한 명상요법
다카마쓰에서 여섯 밤을 자고 마쓰야마로 넘어왔다. 일본 시코쿠섬에는 네 개의 현이 있고 그중 다카마쓰시가 있는 카가와 현과 마쓰야마시의 에히메 현 그리고 고치시가 있는 고치현, 이렇게 세 개 현의 세 개 도시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뒤 다카마쓰에 더 머물다간 다른 현에서의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곧장 나쓰메 소세키의 도시, 에히메 현으로 넘어왔다. 에히메현의 마쓰야마는 특히 여러모로 나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설렘이 어느 도시보다 컸다.
마쓰야마로 넘어올 때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엔 사람이 몇 명 타지 않았다. 커다란 고속버스를 전세내고 가는 느낌이랄까. 평일이라서 그런 건지 오전 시간이라서 그런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쾌적해서 나는 좋았다. 물론 내 옆에 누군가 앉는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본 고속버스에는 작은 커튼처럼 가림막들이 의자와 의자 사이에 모두 쳐져 있기 때문이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다는 듯이 정확하게 출발하니 일본 답다. 이런 거 좋다. 쓸데없는 다른 생각의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그동안 벌써 정든 다카마쓰의 시내가 영화 속 필름처럼 지나쳐 간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날 즈음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아마도 마쓰야마에 도착하는 시간과 어느 정도 소요되는 지를 말하는 듯하다. 앞으로 세 시간은 더 달려야 할 듯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지루하거나 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숨겨진 비법을 잘 활용할 계획이니까. 물끄러미 버스 창밖을 바라본다. 버스 창밖으로 지나치는 빠른 풍경들을 넋 놓고 보다 보면 모든 생각들이 스르르 사라지는 걸 느낀다. 이런 고속버스를 타면 언제나 예외 없이 더 그렇다. 나는 이때가 참 좋다. 아무런 생각 없이 고요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이 상태가 즐겁다.
어려서부터 마음이 복잡하거나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이상하게도 버스를 타곤 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무거웠던 마음들이 툴툴 털어지며 홀가분해있곤 했다. 가지고 있던 근심과 걱정의 감정이라기보다는 그땐 아마 슬픔과 우울의 감정이 더 많았을 것이다. 돈이 없으니 버스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에 돌아오는 순환 버스를 타곤 했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타 의자에 앉으면 빠르게 지나치는 창밖 풍경들이 온전히 나의 것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풍경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전에 다음 풍경으로 넘어가 있는다. 그러면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자동으로 정지되어 버린다. 그저 물 흐르듯 창밖으로 빠르게 흘러 사라지는 풍경들은 내게 그 어떤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그 자체로 아름답게 피었다 깔끔하게 한 순간 사라지는 동백꽃처럼 아무런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균일한 속도로 끊임없이 보여주는 버스 창밖의 풍경들은 애쓰지 않아도 나의 눈을 통해 스쳐 지나가며 뇌에게도 쉼과 정지의 상태에 머무르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멍 때리듯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면 힘들거나 어려웠던 점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됨을 느꼈다. 그리곤 한 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점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 시간은 분명 피로하고 지친 나의 뇌에게 충분하고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릴랙스해지고 건강해진 뇌는 현실로 복귀해 다시 용기 내어 힘 있게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가열하게 달리곤 했으니까. 나는 이럴 때마다 이것이 명상의 상태 아닌가?라고생각하게 된다. 명상 맞지, 뭐가 달리 명상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나만의 특별한 명상요법, 버스 명상요법이라고 칭한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자신만의 명상 요법이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콩밭을 멜 때 도 닦는 기분이 든다 하고 나는 예전에는 연습장 가서 골프공을 하나둘씩 계속 칠 때 모든 생각이 사라지며 무아지경에 이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또 누군가는 설거지를 할 때에 그런 기분을 느낀다고도 했다. 버스멍, 이 습관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나와 잘 맞는 명상 요법으로 정착되었다. 나처럼 뇌가 과부하 상태에 잘 놓이고 신경 과다에 에너지 초과 사용자인 사람은 어느 순간 모든 신경망을 꺼버리고 좀 쉬고 싶어 지니까.
이러고 있다 보니 어느새 마쓰야마 에끼(역)라며 방송이 나온다. 반갑다 올드시티 마쓰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