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시 골목 탐방기
다카마쓰에 도착한 날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다카마쓰 시내를 걸어 다녔다. 섬 여행을 하지 않는 날엔 온종일 다카마쓰시의 골목골목을 탐구라도 하듯 열심히 걸어 다녔다. 날이 화창하게 맑은 날엔 다카마쓰의 보물 리쓰린 공원을 산책했다. 리쓰린 공원은 한국보다 봄이 조금은 빨리 왔나 싶게 매화가 만발해 있어 나를 감동의 바다에 빠트리기 가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배를 타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진들을 찍으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좋아 그날도 사진을 많이도 찍어댔다.
다카마쓰시를 며칠 걷다 어느 날 부턴가는 타카마쓰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만나는 풍경들이 참 인상적이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작은 도시이지만 정갈하고 역시나 깨끗하다. 느낌이 좋았다. 흔히 볼 수 없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예스런 건축물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많아 그들과 함께 만들어 내는 풍경도 좋았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귀여운 그림들도 미소 짓게 만들고.
다카마쓰의 거리와 골목들을 걸으며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어쩌면 이 풍경들이 곧 사라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근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이 골목골목들이 현대의 개발이라는 거대한 욕망의 파도에 삼켜버리는 건 시간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한국적인 사고를 하며 별 걱정을 다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시간 여행 온 것처럼 보고 있는 고풍스럽고 예스러운 풍경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런 오래된 낡은 도시의 풍경들이 점점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런 곳들은 현재 속에서 과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쉽고 아련한 추억과 만날 수 있는 곳이며 사라져 버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 과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좋은 듯하다. 떠나버린 사람들, 사라져 버린 것들... 그리운 엄마도 만나고 아버지도 만나고, 오래전 내 노트와 가방도 운이 좋으면 볼 수 있을 것 같고. 여교시절의 웃음들도 만날 수 있는 곳. 다른 세상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처음에 봤을 땐 오래됨과 낡음이 촌스러운 듯했는데 워낙 정갈하며 깔끔함과 어우러져 또 촌스럽지만은 않은 세련됨으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이런 곳을 나는 상당히 좋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시공간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곳들을 여행하면서 늘 감동스러워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래되고 낡은 속에서 우러나온 색들이 되려 더 아름다웠고 나의 마음을 끌었다. 세월의 흐름을 더 느끼게 해 주지만 자연과 더불어 더욱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도시 풍경. 오히려 고급스럽다는 표현을 이런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태양마저 가세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색과 풍경들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해서 즐거웠다.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건물 앞의 빨간 우체통이 귀여워서 사진을 한컷 찍는다. 우체국 건물이 이렇게 앙증맞게 귀여울 수 있는 것인가? 용건이 없어도 들어가고 싶은 우체국 너무 귀여워서 또 사진을 다른 각도에서 한 컷 찍는다. 골목골목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찍을 맛이 난다.
나무들과 새들이 어우러져 편안함 마저 느끼게 해 주던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많았다. 오래된 것, 오래된 것들 사이에서 아이들의 뛰어노는 모습과 소리를 듣는 건 생생한 희망의 소리였고 밝음의 소리였다. 오래된 간판들을 구경하는 것도 도시 탐방에선 큰 즐거움이다. 낡은 간판들이지만 운치 있다. 어떤 보행자 표지판을 보는데 무척 재밌다. 오래전 내 어린 시절 오라버니의 학생 모자를 보듯 그런 모자를 쓴 오빠가 도시락을 들고 있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가는 그림의 표지판. 이건 분명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 온 게 맞다.
각자 개성 있는 대문들, 간판들, 표지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오래된 건물들, 그리고 특히 더 나의 관심을 그는 글씨체들 모두 다 흥미진진한 나의 볼거리였다. 이렇게 도시를 탐방하면서 많은 공간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상에는 많은 공간들이 있는데 나는 왜 나의 공간이 없는가? 나도 갖고 싶다' 그러면서 한국에 들어가면 나의 공간을 만들어 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동안 멋지고 큰 목표를 내세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곳이든 나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의 전환은 어쩌면 다카마쓰사의 골목 탐방이 준 선물일 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의 스튜디오를 열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돌아왔는데 놀라지들 마시라. 사람의 마음의 강력한 전환과 확언은 얼마나 큰 일을 이루어내는지! 나는 일본을 떠나와 정확히 한 달 뒤 나의 스튜디오를 계약했다. 그리고 지금은 일주일간의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이젠 즐겁고 재밌는 일이 팡팡 터질 일들을 구상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