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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번여사 May 08. 2023

예술의 섬, 나오시마 여행하기 2

반쪽 짜리 나오시마 여행, 다시 가야 할 곳

자전거나 차로 이동했다면 금방 왔을 거리지만 나는 걷기 여행자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러 이우환 미술관에 도착했다. 세월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듯한 콘크리트 외벽에 하얀 글씨로 이우환 미술관이라 쓰여 있다. 그것이 아니어도 한눈에 봐도 이우환의 작품일 것 같은 거대한 돌덩이 하나와 기다란 기둥 작품이 저 멀리 보인다. 무척 인상적인 그 작품들을 보며 긴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계단의 한쪽 옆면은 거대한 시멘트 외벽이 높게 설치되어 있다. 이 계단을 천천히 걸으며 내려가는데,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길을 걷다 시원한 그늘 계단으로 들어서서 그런지, 거친 숨은 느린 숨으로 바뀌고 마음은 차분해지는 신기한 효과가 나타났다.


이우환 미술관 역시 안도 다다오의 건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왠지 나오시마 섬 전체에서 안정적인 통일감 같은 걸 느꼈다. 미술관의 옥외 작품들이 많았다. 자연 속에서 빛과 작품이 만들어 내는 선, 면, 색등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을 사진 찍으며 놀다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자료가 없는데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과 그 친구들> 공간과 비슷하다 하니 다음에 부산 가면 꼭 가봐야겠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 산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위풍당당하면서도 차분하게 설치되어 있어 나의 감탄을 계속 자아냈다.


 여기에서 너무 오랫동안 쉼과 여유, 느림을 만끽하며 놀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버렸다. 나오시마 섬 전체에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이제껏 뭐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하나와 기껏 미술관 두 개 봤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나 다음은 어디를 갈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아마도 천천히 사진 찍으며 내려가다 보면 항구에 배 타러 가야 할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뚜벅이로 하루 여행을 계획하고 왔음이 무리였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곧장 '다음에 또 오지 뭐' 하는 나의 최고 무기, 긍정의 생각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이우환 미술관 옆에 있는 안도 타타오의 밸리갤러리도 지중해 미술관도 모두 옆만 스쳐가며 지나쳐왔다. 다음에는 하루가 아니라 이틀 정도 머물다 가고 싶은 곳이고 사진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오시마 전체를 만나고 보고 느끼며 여행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도 사진 찍기를 많이 사랑하는 내게 그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걷다 보니 더욱 여유로워졌다. 길가에서 만난 고양이들과 한참을 놀았다. 고양이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어서 한 녀석 찍고 있으면 다른 녀석이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하는 바람에 사진 찍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도로 한 중간으로 태연하게 걸어가는 녀석 때문에 다가오던 조그마한 트럭이 멈춰 서 있는다. 마치 인도에서 본 소가 지나가는 풍경, 터키에서 마주친 양 떼들이 지나가는 풍경처럼 사람이 동물을 기다려 주는 풍경. 아름다운 풍경.


트럭 아저씨는 이 고양이들을 잘 아는 사이인가 보다. 창밖으로 애들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는 뭐라고 말을 하는데 마치 이웃집 친구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 모습이 재밌고 좋아 내가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트럭 아저씨가 나를 일본인으로 안 것이겠지 일본말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그런데 느낌상으로는 재네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고양이들 이야기를 내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는 듯이 같이 깔깔거리며 웃어줄 밖에. 뭐 나쁜 말은 안 했을 테니까 말이다.


지중해 미술관은 근처에 가서 외부 작품들을 구경하고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를 보며 다리 쭉 뻗고 앉아서 쉬기도 했다. 바다가 발밑에 닿을 만큼 가까운 다리에 가서 앉아보았다. 발을 흔들흔들하며 애써 태연한 척해보지만 너무 무섭다. 긴장감이 다시금 몰려와서 조심히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리 좋아도 역시 너무 가까이는 안됨! 을 다시금 확인하며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앉았다. 그랬더니 마음이 누구러든다. 쭉 뻗은 다리 끝 운동화가 눈에 띈다. 이렇게 매일 수도 없이 걷고 또 걷는 내 발을 아주 편하게 해주는 저 운동화. 내 여행에 일등 공신. 취약한 내 발에 무리가 전혀 가지 않게 해주는, 한국에서 신고 온 저 운동화가 오늘따라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스러워 운동화 사진도 한 컷 찍는다.  보답이라도 해주는 듯 다리의 피로가 싹 풀린다.


항구를 향해 돌아가는데 못 본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다시 또 올 수 있다는 희망과 설렘이 더 크다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약간 아쉽게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항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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