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앤 May 14. 2023

일본에서의 나의 언어

일본에서 왜 영어가 더 자신 있어지고 늘고 있는 느낌이지?

일본의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를 여행하다 보니 언어의 문제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이 사람들 학교에서 영어를 안 배우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영어와는 담쌓고 사는 도시 같았다. 도시 어딜 가나 영어가 무용지물인 곳이 많았다. 대화하는 상대가 나의 언어를 못 알아들을 때 우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정서상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영어를 찾아보거나 사용해 알려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그런 거 없다. 그냥 무조건 세상에 자신의 언어 말고는 없다. 나도 덩달아 재밌는 게 상대가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들으면 일본 말로 알아듣게 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텐데 하지 않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영어가 마치 모국어인양 끝까지 고집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누가 들으면 내가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사람인 줄 알겠으나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일본 와서 더 영어를 자신 있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건 바로 이 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틀리게 말해도 모르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왠지 저급한 인간의 태도 같지만 뭐 인간 심리가 다 그런 거 아닌가.


영어권 나라에 가서는 입만 열어도 이미 기죽기 쉬운 상황.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아니 숨 쉬듯 일상이다 보니 그냥 움츠러들밖에. 그러다가 기죽을 일이 전혀 없는 곳에 와서 뭐 한다고 기죽으며 움츠러들까 말이다. 사실 지금은 영어권 나라에 가서도 기죽지 않을 만큼 나는 당당해졌다. 지들은 꼴랑 영어 하나 구사하지만 나는 무려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대단한 사람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정말이지 영어울렁증이 만만치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느꼈다. 내가 일본 와서 영어를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마치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처럼, 나는 영어밖에 못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곳에서 말이다. 여기는 나에게 영어 천국이다, 내가 구사하는 언어가 문법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발음이 정확한지 아닌지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러니 영어가 얼마나 쉽게 나오겠는가. 그러다 보니 자신감은 점점 늘어나고. 물론 기껏 해봤자 아주 기본적인 말들 뿐이다.


아마 이런 상태로 내가 영어권에 가서 생활한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즐기며 잘 지내다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 오십이 넘어 어린애들 사이에서 어학연수한답시고 거의 일 년간 외국에 나가서 말 못 하는 벙어리 심정으로 무던히도 고생했던 그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지금만큼 이런 정도로만 의사소통해도 전혀 지장이 없었을 텐데 싶지만 언어란 게 만족이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 영어권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한다면 확실히 더 빨리 언어실력이 늘 텐데 하는 생각은 한다. 이래서 내가 한 번 더 어학연수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다음엔 "나이 육십 넘어 어학연수"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시코쿠를 여행하며 내가 유달리 영어 말고는 다른 언어에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에 갔으면 어느 정도는 그 나라의 언어에 초점을 맞추어주어야 할 텐데, 특히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거나 소통되지 않는 상태라고 인지했다면 빨리 태세 전환해서 그들에게 맞추어 주면 좋으련만 나도 끝까지 고집을 피우듯 영어만 쓰고 있는 것이다. 세계 공용어는 영어 아니야?라고 말하듯 너무도 당당하게.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이 무조건 자신의 언어만 쏟아내는 듯한 인상은 일본 사람들이나 나나 똑같은 자세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웬만해서는 파파고를 꺼내 들지 않는다. 최소한 영어로 소통이 되면 그걸로 이어나가고 정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그때 파파고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는 파파고를 꺼내 들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마켓에서 장을 보고 현금이 거의 없길래 카드를 꺼내 결제를 했는데 카드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지불이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결제가 안된 것 같아서 다른 카드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직원은 나에게 일본말로 거침없이 설명을 해준다. 그것도 친절을 가장해 마구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분명 내가 영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말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쏟아내면 어쩌란 말인가? 내가 못 알아듣고 있으니 목소리는 훨씬 크게 내면서 더군다나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면전에 대고 블라블라한다. 설마 소리가 작아서 내가 못 알아들은 걸로 생각하는 것인가?


할 수 없어 파파고를 꺼내 들고 말을 하라고 하니 눈동자가 잠시 동공 지진을 잠시 일으키다 아주 또박또박 발음해서 말을 한다. 오 그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어찌나 정확하게 발음을 했는지 번역이 완벽하다. 그렇게 해서 일을 다 해결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소에는 그냥 간단한 영어가 마치 나의 모국어와 다름없는 상황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가지고 태어난 언어 금수저들은 세상 어딜 가도 당당함이 하늘을 찌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찌 됐든 간에 내가 일본에 와서 영어가 더 편한 느낌을 받고 자신감도 향상되고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아 상당히 만족 중이다.


이전 14화 활기찬 공원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나의 음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