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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Feb 27. 2020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로 처음 내 이야기를 접하는 분들도 계실 테니 짧게 자기소개를 하자면,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던 작년 8월,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생전에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운 알코올 중독이었고, 사인도 알코올성 간경변이었으며, 간은 물론이고 신장과 폐까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엄마와 아빠는 아주 오래전 이혼을 하셨고, 나는 중학생 때 이후로 줄곧 아빠와 살고 있다.


대략 7-8년 전쯤부터 엄마의 알코올 중독은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고, 내 결정에 의해 수차례의 강제 입원 치료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본인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셨고, 인내심이 한계치를 넘어선 나는 엄마와의 인연을 끊기에 이른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건 작년 초여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로부터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를 받지 않는 상태로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엄마와 연락을 끊은 뒤로 나는 글을 쓰게 되었고, 그 시간 덕분에 엄마에 대한 원망만큼이나 커다란 연민이 내 안에 자리 잡은 상태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엄마의 얼굴은, 참혹했다. 이때의 엄마에 대해 묘사하려면 이 단어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참혹했다. 엄마의 참혹함을 마주함과 동시에 엄청난 죄책감이 피어올랐고, 그래도 엄마이니 앞으로는 내가 돌보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밀린 입원비를 결제하고, 휴대전화 차단 목록에서 엄마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엄마는 퇴원을 했고, 그날 밤 술집으로 향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아물고 있던 상처가 도로 터져버렸다. 다시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했고,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나 엄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간이식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간이식이라, 나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을까. 엄마의 자식으로서, 엄마와 같은 한 여자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나는 결국 엄마를 포기했다.


억 소리 나는 수술 비용도 감당할 처지가 못되었고, 내 간이 엄마에게 맞을지도 미지수였고, 간을 이식한다고 해도 이미 망가져버린 신장과 폐는 돌이킬 수 없었고, 이모들도 어느 하나 수술을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튼 이 결정에는 수많은 이유가 따라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저런 이유, 이딴 거 다 집어치우고, 솔직히, 정말 솔직히, 내가 엄마에게 간을 이식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게 이유였다. 그래서 힘들었다. 내가 천하의 패륜아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냄새나는 쓰레기인 것 같아서.


간 이식을 해준다고 한들 엄마가 술을 끊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 간을 달고 매일 밤 술집에 들락거리는 엄마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에 하나라도 엄마에게 내 간은 안 맞는데 동생 간이 맞는다면, 그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간이식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동생도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느 늦은 밤 동생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자기가 대출을 알아볼 테니 엄마 수술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우리가 너무 쉽게 엄마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위에 열거한,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가면서 동생을 설득했다. 엄마를 살리자는 동생에게, 엄마를 죽이자고 설득했다.


나는 살인자였다.


이성적으로 내 판단은 옳았다. 누구도 내게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다들 나를 위로했고, 지지했고, 응원했고, 존중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러질 못했다. 동생을 설득하던 그날 밤 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나 자신이 미치도록 혐오스러웠고 더러웠고 수치스러웠다.


최근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이때의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어가고 있다. 머리로만 이해하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잘한 결정이다, 최선을 다했다”라는 문장이 조금씩 목을 타고 내려와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직 목구멍에 걸려있긴 하지만 나는 안다. 이렇게 글을 통해 뱉어내고 나면 목구멍을 꽉 막고 있던 생각도 소화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살인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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