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 Apr 26. 2020

카카오톡, 저는 제 생일을 공유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들어가면 내가 설정한 즐겨찾기보다도 더 상단에 뜨는 목록이 하나 있다. 바로 “생일인 친구”


작년까지는 이 목록에 내 이름이 뜨지 않았었다. 생일이 아무리 가까워져 와도, 심지어는 생일 당일에도. 이유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내가 생일을 설정해두지 않았다는 것.


나는 그게 좋았다. “오늘은 박현정 님의 생일이에요.”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누군가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축하해 준다는 게. 물론 서운한 일도 종종 있었다. 내가 생일을 축하해 줬던 어떤 이가 내 생일 23시 59분을 넘겨서도 연락이 없을 때. 그럴 때는 좀 서운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좋았다. 뭐랄까, 진짜 인연을 걸러낼 수 있을 기회로 여겼달까, 지금은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데 아무튼 예전엔 그랬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올해 갑자기 친구들의 카카오톡 생일인 친구 목록에 내 이름이 등장했다. 카카오 계정으로 연동되어 있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아마도 어디선가 내 생일 정보가 입력된 것으로 추정된다. 썩 유쾌하지 않았다. 왜 내가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강제로 오픈하게 하는가에 대한 불쾌함이었다.


특히나 생일은 더 그랬다. 생일에 대한 몇 가지 안 좋은 기억들이 쌓이다 보니 사실 나는 생일에는 더더욱 하루가 조용히 흘러가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유난스럽지도 시끄럽지도 특별하지도 않게, 여느 하루처럼 아무 일 없이 24시를 넘기기만을 바라곤 했었다. 이런 내 생일 정보를 강제로 공개하게 하다니, 왠지 모르게 카카오톡에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바로 어제 카카오톡 생일인 친구에 내 이름이 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늘 생일을 맞았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사람, 애매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 혹은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축하 메시지가 날아오기라도 한다면 그 불편한 메시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일 지경이었다.(그들이 메시지를 보낸 것도 아니었는데 혼자 김칫국 한 사발을 원샷하고 있는 꼴)




생일을 강제 공개당하고 하루를 지내보니, 결론적으로 썩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조금은 더 많았달까. 다행히 생일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이 희석된 상태이기도 했고.


생일에는 가능한 많은 축하를 받는 게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된 하루다. 하루 종일 오롯이 축하만 받을 수 있는 날이 인생에 그다지 많지는 않은데, 매년 1년 중 하루는 그렇게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덤으로 카카오톡 선물함에 쌓이고 쌓인 기프티콘이 주는 풍요로움 또한 나를 슬며시 미소 짓게 한달까,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여러분♡)


글을 쓰다 보니 생일이 끝나버렸다. 마지막으로 내가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생일 축하해 나야!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 축하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맞는 첫 생일이어서 그런지 유독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하루였어. 나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