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는 대물림되는가

by 현정
‘조카 물고문 살해’ 이모, 군산 아내 살인사건 범인의 딸이었다 - 세계일보(2021.03.15)
"비극의 대물림"...'아동 학대', 세대 간 전염된다 - 하이닥(2021.05.04)
[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폭력은 대물림된다 - 일간스포츠(22021.03.03)


언제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뉴스가 있다. 아동학대에 관련된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상대를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의 처참함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된다. 악마라는 수식어조차 아깝게 느껴지는 가해자들은 종종 자신도 언젠가 그 학대의 피해자였음을 호소한다. 정말 학대는 대물림되는 것일까.



외삼촌의 잔혹한 짓은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점이 있었어. 외삼촌은 우리를 방에 세워두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 세워두고, 귀를 잡아당기거나 연필 같은 뾰족한 물건을 눈 앞에서 흔들며 악담을 하는 거야. 몇 시간이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서 용변도 봐가면서, 반드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질이 나쁜 말들을 퍼부었어. 우리는 서 있었어. -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中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의 등장인물 ‘파씨’는 어린 시절 외삼촌의 집에서 자랐다. 파씨는 외삼촌으로부터 (책에서 표현하기를) ‘미묘한 형태의 학대’를 당했고, 결국 외삼촌의 엄지발가락이 파씨의 오른쪽 눈의 시력을 앗아간 뒤에야 이모에게 ‘구출’된다.


이모에게 구출된 뒤에도 파씨는 종종 외삼촌의 집 앞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그 앞에 서서 온갖 잔인한 상상을 한다. 상상이라기보다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일이다. 그는 이 행위가 마치 다트를 던지는 일과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다트를 손에 쥐고, 표적을 노려보고, 표적의 동심원들을 머릿속으로 장악한 뒤, 자신감이 생기면, 다트를 던지는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실제로 외삼촌이 죽고 만다. 교통사고였다.


이모는 영정 앞에 우리와 함께 서서, 외삼촌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어. 외삼촌은 할아버지 때문에 비뚤어진 거니까, 모든 것이 완전히 외삼촌의 탓만은 아니라는 말이었어. 이모는 울었어. 그때 나는 이모의 말을 더는 알아들을 수 없었어. 나는 바닥에 떨어진 다트를 보고 있었어. 외삼촌이 갑자기 죽어버려서, 표적을 잃은 다트는 바닥에 떨어지고 만 거야. 사라지지도 않고, 에너지를 가득 담은 채, 바닥에 놓여 있고, 가운뎃 부분이 두툼한 다트의 붉고 단단한 몸통을, 나는 언제까지나 응시하고 있었어. 이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야. -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中


외삼촌은 할아버지 때문에 비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부모 때문에 비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부모는? 그 부모의 부모는? 죄를 털어버리는 방법이 너무 쉬워서 화가 났다. 그러나 이게 꼭 틀린 말도 아니라서 더 화가 났다.


너무너무 싫어하던 부모님의 어떤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나를 문득 마주칠 때가 있다. 자식이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닌 듯하다. 싫어할수록 닮아간다는 말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외삼촌의 학대에 할아버지가 기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진실일 테다. 그럼에도 나를 아쉽게 만드는 건,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모든 자녀가 학대하는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모는 완전히 외삼촌의 탓만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오렌지를 씹으면서 나는 생각했어. 외삼촌은, 자기를 괴롭힌 사람의 다트를 응시하느라 자기 속의 다트를 보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외삼촌이 우리에게 한 일에 대한 몫은 완전히 외삼촌 한 사람만의, 자발적인 몫인 거야.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다트를 계속 지켜보자, 나는 생각했어. (…) 다트가 있고, 그걸 지켜보는 내가 있어. 잔혹한 방법으로 어딘가에 보복하고 싶어 하는 내가 있고, 그것을 하지 않는 내가 있어. 외삼촌과 나는 바로 여기서 구별되는 거야. -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中


외삼촌은 매일 할아버지가 가진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응시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느라 자기 마음속에도 똑같은 폭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놓쳤을 테고, 어느 순간 본인도 모르게 폭탄이 터져버리고 말았을 테다. 외삼촌과 파씨가 구별되는 점이라면 이것 하나뿐인 것 같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를 인정해주는 것.


South Australian Health and Medical Research Institute의 Jason Armfield는 1986-2017년까지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4월 30일, 많은 수의 아동 학대가 세대 간 대물림된다는 사실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1. 약 83%의 아동 학대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아 ‘호주 아동 보호 서비스(CPS)’를 받은 엄마들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사실

2. 어린 시절 학대당한 엄마와 함께 지내는 아동의 30%가 12세까지 모성 학대나 방치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학대를 대물림하는 현상에 아빠의 역할 또한 추가로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한다.)


안타깝고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한 일이지만, 학대는 대물림된다. 불안정한 정서를 가지고 성장한 아이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만의 다트가 던져지고야 만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다트를 하나씩 가지고 살아가는 거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해야 다트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다트는 별 탈 없이 여기 있어. 내가 다트를 보고 있으니까. 다트의 에너지는 전혀 사라지지 않아. 다트는 굉장해. 그것을 계속 들여다보는 나도 굉장해. 그런데 이것은 좀 쓸쓸한 일이야. -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中


위 연구의 수석 저자는 “이 아이들과 부모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필수적이지만, 아동 학대의 세대 간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역 사회가 그들이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연구를 결론지었다.(출처: 상기 하이닥 5/4 기사)


파씨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파씨일 수도 있고,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이웃이 파씨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아동학대 문제를 좌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이에겐 건강한 정서를 누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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