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
아이가 처음으로 호칭한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였다. 말 그대로 나를 갈아 넣으며 아이를 키워낼 때다. 내가 아인지, 아이가 나인지도 모를 만큼 온 신경이 아이에게 몰입되어 있던 때다. 응당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릴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웬걸, 아빠란다. 서운한 마음도 잠시, 비로소 가족이 된 것만 같아 가슴께가 뻐근해졌고 시구절처럼 서로의 이름이 불리자 어엿하고도 완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아이가 첫 뒤집기를 할 때도 옆에 앉아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성공했을 때처럼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다. 사과를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잘라 과즙망에 넣어 아이 입에 대니 미간이 구겨지는 우스꽝스러운 얼굴 표정도 나는 기억한다. 첫돌, 미역국에 쌀밥을 말아 입에 넣어주니 이도 없는 아이가 눈꼬리를 내리며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젤리처럼 반짝이는 아이의 입술을 보며 어찌나 행복해했던지.(드디어 밥을 먹는구나!)
작은 곤충은 그게 뭐든 겁내지 않고 만질 수 있는 아이, 지나오는 길에 민들레가 보이면 냅다 뜯어 흔들어 날리던(어느 순간부터는 뜯지 않고 자세를 낮춰 불어줍니다) 아이의 모습을 기억한다. 매일같이 들르는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을 직접 타고 내려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높이가 높은 편) 유치원 첫 등원 날 입구에서 저만치 떨어진 골목에 차를 세우고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의 웃음소리도, 울음소리도, 밥을 먹을 때 짓는 표정도, 나를 부르는 음성도 한나절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먹먹했고, 그걸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괜한 말로 아이를 달랬다. 정작 아이는 슬퍼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기대에 부푼 아이가 저만치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나 혼자 눈물바람, 초등학교 입학 때도 그랬던 걸 보면 그건 단순한 헤어짐이나 불안감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느끼는 부모의 안쓰러움이리라.
아이의 첫니가 빠지던 날도 나는 한바탕 눈물 바람이었다.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느라 고생한 이에게 고마운 마음, 아이의 귀한 무언가가 몸에서 빠져나왔다는 허탈감, 또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기대와 아쉬움 등이 버무려져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 드레스 원피스를 입었을 때도, 제 얼굴의 반쪽만 한 껌 풍선을 성공한 날도, 줄넘기를 두 개 이상 연속으로 넘었을 때도, 산낙지를 처음 먹어본 날도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 25년을 꼬박 하루 남긴 날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근데 만약 내가 남자친구가 있으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거야? 내버려 둘래, 아니면 헤어지라고 할래?’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라 잠시 고민했다. ’ 네가 듣고 싶은 말은 뭐야?‘ 아이가 듣고 싶은 말로 대답을 해주고 싶은 마음과 귀엽다는 생각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oo한테 (진심으로 좋아해서 그래) 고백했거든. 근데 성공이야! 그래서 우리 오늘부터 1일이래!!!! 아빠한테 말하지 마!’ 그러곤 증거사진이라며 oo과 주고받은 문자 캡처화면을 연이어 보내왔다. 성교육, 경계 교육, 그루밍 등등 머릿속을 지나가는 단어들 사이로 하나의 단어가 달처럼 밝다. ‘축하해’
이렇게 아이의 ‘처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잊고 싶지 않다. 모든 처음을 함께 했듯 살아가는 동안의 무수한 처음에도 내가 곁에 있기를 소망한다. 물리적인 위치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속에서도 처음의 순간에 나를 떠올려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무서운 일이어도, 두려운 일이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언제든 내가 도울 수 있다는 걸 아이가 기억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 아이는 한순간도 잊기 어려운 존재이지만, 아이에게 난 한순간도 떠올리기 어려운 존재가 될 터이니 바라건대 아이에게 어느 순간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부질없이 바라본다.
글로채움
주제 '잊고 싶지 않은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