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단상

노란빛 환희

by 박현

내가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살이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에 조경으로 꾸며진 규격화된 나무와 풀이 대부분이었으나, 제주 바닷길이나 숲길에서 보이는 식물들은 달랐다. 그 생생한 생명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갖게 했다. 그중에서도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유채가 두해살이식물이라는 것과 겨울이라는 혹독한 계절을 견디어 내고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울의 시간을 넘어가는 유채는 폭풍우를 이겨낸 노란빛 환희다.


어리석게도 유채는 모두가 월동 채비를 하는 늦가을에 뿌리를 내린다.

두해살이식물은 잎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 추위를 피하고 체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땅에 붙은 어린싹들이 누워서 울긋불긋 물든 채 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작은 씨앗들이 봄꽃을 피운 그 자리에 떨어져 다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다니 어리석음을 넘어 우직하기만 하다.


봄이 되니 꽃대가 자라나 노란 꽃망울이 맺힌다. 밤새 불어닥친 꽃샘추위에도 유채는 더 샛노랗게 빛난다. 땅의 차가운 기운과 세찬 바람을 견뎌 내고 꽃을 피우니 그것은 세상 무엇보다 가슴 벅찬 환희일 것이다. 유채의 노란 물결 같은 환희는 무리 지어 피어나 봄의 시간 내내 이어질 것 같다.


봄이면 제주섬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
늙고 죽는 삶처럼 바다가 더 푸르러지기 전에 떠나다.


유채에게 바다가 더 푸르러지는 여름의 시간은 어떨까?

씨앗이 싹트고 자라고 꽃 피고 열매 맺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식물의 세계도 생로병사의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 유채는 꽃이 진 자리에 다시 푸른 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에서 열매를 맺고 검게 익을 때까지 씨앗에 기름을 채운다. 뜨겁고 습한 땅에서 뿌리는 여름을 견디며 다시 씨앗에 기름을 채우는 것이다. 또 한 번의 겨울을 건너기 위해 긴 고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목해안도로에도 섶섬을 마주 보고 유채꽃이 피었다.

겨우내 바닷길을 걸었지만 먼저 핀 꽃들에게 눈을 빼앗겨 유채인 줄 모르고 지나쳤다. 노란빛 꽃이 푸른빛 바다와 대비를 이루어 봄빛이 난다. 특히, 아침 해가 뜨고 저녁 해가 질 때 노란빛은 더욱 밝아진다. 가을에 씨를 뿌리면 봄이 시작되자마자 한 발 앞서 꽃을 피우는 유채지만, 푸른 바다 길섶에 피는 노란 꽃은 밤새 폭풍우를 이겨낸 환희 같아서 더 좋다.


* 두해살이식물 : 그해에 싹이 터서 그 이듬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뒤 죽는 풀. 보리, 무, 유채, 완두 따위가 있다.(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

작가의 이전글서귀포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