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과 괸당

공동체에 대한 시기

by 박현

제주 사람들의 호칭 가운데 삼춘이라는 것이 있다.

삼춘은 제주에서는 손윗사람을 남녀 구분 없이 지칭해서 부르는 호칭이다. 그 말은 너무나 정겨워서 제주어와 잘 어우러진다. 또, 제주에는 괸당 문화가 있어 현지인과 교류하기 어렵다고 한다. 괸당이라는 말은 제주어로 혈족, 친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괸당이라는 말과 삼춘이라는 호칭에서 제주의 독특한 문화를 엿볼 수 있고 제주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다.


제주살이를 시작하기 전에 제주도는 이주민에 대해 배타적이어서 다른 어느 곳보다 정착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공동체 개념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 것이고, 시기심으로 과장되고 왜곡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동체 의식은 오래된 전통으로 제주의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제주도의 행정구역 체계를 보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법정동과 행정동이 구분되어 있고 마을이라는 개념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 마을은 설촌이라고 해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마을 단위를 중심으로 마을회와 청년회, 크고 작은 모임들이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


내가 거주하는 보목동은 이웃 마을인 토평동, 영천동과 함께 행정동으로는 송산동에 속해 있다. 보목마을에도 자치기구가 있고 리장은 리더로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갖는다. 마을의 발전과 안녕을 기원하는 포제를 드리는 전통도 이어가고 있다. 구두미 포구에는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섶섬지기'라는 카페가 있다. 푸드트럭에서 나오는 수익 중 일부가 마을 운영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을 공동 소유의 목장이나 어장에는 수눌음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제주의 마을은 이런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마을의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한다. 바다에 돌을 쌓아 그물망 구실을 하는 바다 목장을 뜻하는 '원담'은 마을 공동 소유이고 어업이나 보수 등 작업을 마을 구성원들이 같이 한다. 공동체 의식에는 상부상조를 뜻하는 수눌음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수눌음은 품앗이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또, 중산간의 벵듸라고 부르는 넓은 초지는 대부분 마을 소유의 목장이었다고 한다. 물론 개발이 되면서 대자본에 팔려나갔지만 마을 공동체에서 공동 목장을 보존하고 지켜낸 곳도 많다.


나는 제주의 마을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리사무소나 마을회관을 찾아가면 마을의 유래와 함께 마을의 볼거리를 찾아볼 수 있다. 제주의 마을은 어느 곳이나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내어 놓는 공동체 정신이 깃들어 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큰길과 올레길을 산책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마을 어르신을 만나면 "어디 감수꽈"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길을 물어보기도 한다.


제주의 숲길을 걸으며 제주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생각한다.


제주에서는 공동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지역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흔히 쓰는 말이다. 제주 공동체의 관념과 인식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공허한 논쟁이기도 할 법한 공동체 의식이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 녹아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서귀포 시내를 다니다 보면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무료 주차장이 많다. 그곳은 대부분 시에서 조성한 것이 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사유지이면서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땅을 내어주는 것이다. 제주의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와 돌과 덩굴이 우거진 모습을 보게 되는데, 오래된 나무들이 이끼와 양치식물을 껴안고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제주 사람들을 꼭 닮았다.


* 포제 : 제주에서 매년 정월 첫 정일에 지내는 동제. 마을 공동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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