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

행복한 시 읽기(12) 보들레르의 시

by 박현

보들레르의 시에 매혹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의 시를 통해 악의 세상을 바라보고 꽃의 향기에 취하고 그 속에 감춰진 연민을 보았다. 세상을 조롱하는 대신에, 나를 미궁에 빠뜨리는 대신에 그의 시를 흉내 내면서 슬픔이라는 힘을 얻었다.




보들레르의 시를 다시 읽는다.

1857년 출간된 『악의 꽃』은 우울과 이상, 파리의 정경, 술, 악의 꽃, 반역, 죽음 등 6개의 주제로 구성된 시집이다. 『악의 꽃』에서 시인은 감추어진 모든 것들을 세상 밖으로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우울과 이상'편에 4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우울(Spleen)」이란 제목의 시는 보들레르 시를 이해하는데 실마리 같은 시다. '우울'은 단순히 활기가 없는 상태를 넘어 '권태' '환멸'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우울'은 시간적 개념으로 나타나는데, '무거운 하늘이 영혼을 짓밟고 지평선이 밤보다 더 어두운 낮을 쏟아내는 시간'이다. 우울은 마음속에 감춰진 것이 아니라 짓밟히고 쏟아내는 모든 것을 드러내는 주도적인 행위다. 어쩌면 우울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이 시간의 개념이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다 순간이라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의 다른 시 「여행」은 '죽음'편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의 삶을 항해로 비유하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하지만 결국 죽음만이 진정한 목적지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시인은 '죽음의 닻을 올리는 시간'이라는 표현을 통해 죽음을 시간적으로 나타낸다.


"La mort, vieux capitaine, il est temps! levons l’ancre!"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이제 시간이야! 닻을 올리자!”




보들레르의 시는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인간 내면의 추악한 것들을 모두 끄집어냈으니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들레르 덕분에 우리의 내면에 감춰져 있던 우울, 불안, 공포 등 부정적인 감정들의 실체를 문학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것들이 낱낱이 들추어질 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니 시를 읽는 보상은 충분한 것 아닌가.





Quand le ciel bas et lourd pèse comme un couvercle
Sur l'esprit gémissant en proie aux longs ennuis,
Et que de l'horizon embrassant tout le cercle
Il nous verse un jour noir plus triste que les nuits ;


Quand la terre est changée en un cachot humide,
Où l'Espérance, comme une chauve-souris,
S'en va battant les murs de son aile timide
Et se cognant la tête à des plafonds pourris ;


하늘이 낮고 무겁게 뚜껑처럼 짓누르고
신음하는 영혼 위에 긴 권태가 드리우고,
지평선이 온 세상을 감싸며
밤보다 슬픈 어두운 낮을 쏟아낸다.


땅은 축축한 감옥으로 바뀌고,
희망은 박쥐처럼
그 미약한 날개로 벽을 두드리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찧는다.


- 보들레르의 시 우울 IV 중에서 인용

매거진의 이전글한 편의 연극 같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