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에세이
인생에 내 편이 단 한 명 있다고 해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평생 한 사람도, 친구는 물론이고 부모도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줄 거란 믿음이 없을 때 인생은 모래사막보다도 황량하고 북극보다 더 춥다.
7년여 동안 우울증으로 사람들과 거의 접촉 없이 지내던 분이 있었다. 함께 지내는 가족도 없고 오랜 칩거생활로 친구와의 연락도 거의 끊겼는데, 점차 망가져가는 같은 모습이 안타까웠던 그분의 친구가 무료상담 기회를 찾아 연결시켜줘서 만나게 되었다. 그 후로 약 2년 동안 상담이 그분의 유일한 정기적인 외출이 되었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나오면서 작은 일을 찾아 자립하게 되었다.
상담이 그분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아마도 가장 큰 부분은 떠나지 않고 곁에서 지켜봐 주는 내 편이 하나 생겼다는 심리적 지지였을 것이다. 마주 앉아 얘기를 한다고 해서 답답한 상황을 변화시킬 묘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내 편이 한 사람 생긴 것 같은 든든함, 그것이 주는 안정감을 바탕으로 세상에 나올 용기를 내본 것이 아닐까 싶다.
가족 혹은 직장의 관계 속에서 심리적 지지에 대해서 얘기하면 종종 듣는 얘기는 “잘하는 것이 있으면 칭찬하려고 노력합니다”고들 한다. 그런데, 잘하는 것에 대해서 칭찬해주는 것은 남의 편도 한다. 바람직한 행동을 알려주기 위해서 칭찬과 처벌도 물론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저 평가 없이 곁에 서 있어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무조건 편들어 주다가 버릇 망치면 어쩝니까”고도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는 것과 편이 되어 주는 것은 배타적이지 않다. 잘못된 행동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바람직한 방향을 알려준 후에 여전히 그의 곁에 서 있어 줄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얘기하는 걸 그저 들어주고 믿어주고 이해하려고 애써준다면, 이 야박하고 심심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위로가 된다. 그래도 그 사람은 이 얘기를 하면 들어주겠지, 같이 분개하겠지, 안타까워하겠지 하는... 그 위로와 지지를 에너지로 삼아서 지치고 좌절할 때 버티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
‘네 모습 그대로 괜찮다’라는 종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지지를 구하는 마음들이 많은 탓일 게다. SNS 게시물에 ‘좋아요’가 늘어나면 기뻐하는 것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내 편이 많기를 바라는 만큼 나는 누구의 편이 되어 주었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멋진 조언과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지만, 날카로운 분석과 큰 통찰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어떤 사람에게 잠시 같은 편에 서서 주의를 기울여준다면 그것이 그에게 세상을 버티어 가는 힘을 보태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