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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Jun 04. 2021

구름다리 아래 공항버스

연재소설 구름다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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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버스는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고 있다. 현재는 의식을 치르듯 다리 아래를 지나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현재는 무언가에 홀린 듯 무작정 공항버스를 탄다. 버스는 한 시간이면 공항에 도착한다.


익숙한 걸음으로 공항에 들어선 현재는 단골이 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름을 기억해 주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그 사이 비행기는 이착륙을 반복하고 사람들은 물고기 떼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현재는 이 세계에 익숙해지려는 듯 공항 이곳저곳을 탐색한다.


무중력에 익숙해지려는 우주비행사처럼 현재는 공항 이곳저곳을 유영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간다.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구름다리에 내린 현재는 구름다리 위에서 다음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집에 들어간다.  


구름다리 이쪽과 저 쪽은 다른 세상이다. 이쪽과 저쪽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값이 천양지차였다. 척박해진 삶 탓인지 이쪽 동네는 툭하면 주차 때문에 시비가 붙고 큰 소리가 오가고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짜증을 냈다.


옆집 개가 짖는 소리에 욕을 퍼붓고 창문을 거세게 닫는 소리에 잠을 설친 적도 있다. 큰 소리로 통화하며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 때문에 듣고 싶지도 않은 남의 인생사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저쪽 동네는 고요했다. 개 짖는 소리도 없었고 욕설도 없었다. 주차장은 깔끔했고 집은 넓고 아늑해 보였다. 소문난 베이커리에는 사람들이 차분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새로 생긴 쿠키 가게의 진열대에는 핑크빛 상자에 담긴 쿠키가 가지란히 열을 지어 담겨 있었다. 한산한 공원이 두 개 정도 있었고, 주차된 차들은 중형 세단이었다.


이쪽 동네에 사는 현재는 한번에 가는 길을 마다하고 굳이 구름다리 너머 저쪽 동네를 통해 지하철을 타러 다녔다.  


현재는 하루에 버스가 세 대 밖에 안 들어오는 어촌 출신이다. 마을에는 십여 가구가 살았고 형편이 고만고만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현재는 자신이 부한지 빈 한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은 고만고만한 크기의 집에서 살았고, 누구의 집이 크고 작은지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염점과 백사장으로 둘러쌓인 어촌마을에는 부자도 빈자도 없었다.


봄가을로 농사를 짓고 여름겨울에는 고기잡이를 하고 양식업을 해서 그런대로 사는 동네였다. 실한 고기가 잡히는 날이면 이웃에 하나씩 나눠 주고 회를 떠서 먹기도 했다.


참외가 풍년이면 평상에 자리를 깔고 앉아 참외 껍질을 과도로 쓱쓱 잘라서 베어 물었다. 잘 익은 수박은 쩍 갈라서 큼지막한 조각을 들고 먹다가 수박씨를 발라서 멀리 튀튀 뱉곤 했다. 참외와 수박을 먹던 고향의 대청마루는 좁고 아늑한 현재의 세계였다.


현재는 대학에 입학할 무렵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세계를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TV 속 놀이동산 풍경은 유럽풍의 옷을 입은 외국인들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퍼레이드 차량 옆으로는 마법사와 요정이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까악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과 머리카락이 허공에 떠서 휘날리는 동안 놀란 듯 즐거운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현재는 놀이동산에 가고 싶었다.


현재가 사는 동네 근처에도 놀이기구가 있기는 했다. 커다란 바이킹이었는데 한번은 그게 허공에서 멈춰 서는 바람에 소방사다리가 동원되어 사람들이 구조됐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악명 높은 놀이기구였다.


언젠가 친구 녀석은 진짜 무서운 바이킹은 우리 동네에 있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했다. TV에서 본 놀이기구는 현재 동네의 놀이기구와 차원이 달랐다. 놀이동산은 하나의 세계였고 현재는 그 세계로 진입하고 싶었다.


현재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세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오전은 입장료가 비싸서 야간개장 시간을 기다려서 입장했다. 놀이동산에 들어간 현재는 제일 인기 있고 유명하다는 놀이기구를 향해 전력 질주를 했다.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려서 탄 놀이기구는 생각보다 빨랐고 기대보다 싱거웠다.


한번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현재는 두세 번을 같은 놀이기구만 타다가 놀이동산을 나왔다.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면서 현재는 놀이동산 연간회원권을 끊었다. 현재와 은혜는 주말마다 둘만의 의식을 치르듯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고 음식점들을 하나 둘 탐방했다.


현재에게는 놀이동산이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세계였고 꿈과 낭만의 장소였다. 모험과 신비로 가득한 세계에 입장을 가능하게 했던 세 장의 연간회원권은 은혜와 현재의 가장 큰 사치였고 연애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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