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구름다리 #3
3
“배낭여행은 어떨까?”
“아는 선배가 그러는데 신혼여행으로 배낭여행을 가면 여행가서 죽도록 싸운데.”
“왜?”
“결혼식 준비하면서 엄청 지치잖아. 그래서 결혼식 끝내고 나면 긴장이 확 풀린데. 그러고 나면 만사가 다 귀찮다는 거지. 고로 신혼여행은 그냥 팍 퍼져서 지낼 수 있는 리조트 같은 곳에 가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다가 와야 한다는 말씀이지.”
“그래도 유럽은 가고 싶어. 이번 아니면 언제 갈 수 있겠어. 스페인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라고 들어봤어? 그곳은 신비한 채광이 흘러 나와서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눈 뜬 채로 눈물을 흘린데.”
“사그라다 뭐? 그런 데가 있어? 좋겠다. 아, 고민되긴 한다. 스페인도 이태리도 한번 가보고 싶긴 해. 피렌체에 가서 우피치 투어도 하고 두오모에도 올라가고.”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우리도 올라가서 이름을 부르고.”
“애절하겠다. 그럼, 배낭여행을 갈까?”
현재는 결혼식 없이 결혼하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결혼식이 뭐가 중요하냐며 친구들 몇 명 카페에 모아놓고 작은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결혼 서약을 낭독하는 걸로 결혼식을 대신하자고 그럴 듯하게 얘기하곤 했다.
그때마다 은혜는 그것도 괜찮겠다며 맞장구를 치다가 은근 슬쩍 자기가 알아봤다며 테블릿에 담긴 결혼식장 사진을 보여줬다. 차분하고 은은한 빛이 감도는 소박한 결혼식장이었다.
현재는 그런 은혜가 좋았다. 무엇에서건 반대부터 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해주며 한편으로 플랜B를 제시할 줄 아는 은혜의 그런 살뜰함이 맘에 들었다. 웬만한 일로는 놀라는 법이 없고 자신을 위해서는 커피 한잔도 아까워하는 은혜였다.
한번은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책을 읽고 있으니 옆자리 승객이 도대체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느냐고 묻더란다. 현재가 뭘 그렇게 열심히 읽었냐고 물으니 은혜는 배고파서 참느라 책 읽는 척을 했다며 싱겁게 웃었다.
돈이 없었느냐고 물으니 자신에게 뭔가를 사주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도시락을 못 샀다고 한다. 미련 곰탱이라고 나무래도 은혜는 바뀌지 않았다. 감기 한번 걸리지 않던 은혜는 그 해 겨울 삼일을 앓아누웠다. 병원에도 한번 가지 않고 동네 약국에서 진통제와 감기약을 사서 먹고 내리 삼일을 자다가 일어났다.
차도가 없어서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는 내시경이 비싸고, CT가 비싸다며 그냥 나와 버렸다. 별문제 없을 거라며 다음에 종합검진 받을 때 한꺼번에 받겠다는 똑같은 얘기만 되풀이하며 병원 문을 나섰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서 은혜는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그 때는 치료시기를 놓쳐 회복가능성이 없었다.
은혜는 마지막 수술을 거부하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자신을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은혜는 죽어가면서도 가족을 걱정하고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빚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은혜는 고요한 사람이었으나 남겨진 생애의 끝에는 고통 때문에 신음했고 모르핀을 맞고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생전 들어보지 못한 욕을 가족들에게 퍼부었다.
은혜의 욕은 슬프고 가냘 퍼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것은 통곡이었고 살려달라는 부르짖음이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그 욕마저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가녀린 숨을 쉬다가 발끝부터 종아리가 푸르스름해지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현재는 그 일주일을 은혜 곁에 머물렀다. 잠시 깨어난 은혜는 현재에게 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되뇌고 다시 잠이 들었다.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알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여행을 꼭 갔으면 좋겠어. 아끼지 말고 가서 먹고 싶은 거 먹고 타고 싶은 거 타고.”
그게 은혜의 마지막 말이었다. 현재는 은혜의 마지막 말은 기억했지만 그 일주일간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했다. 은혜의 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게 잦아졌다. 간호사가 다가왔고 뒤따라 온 의사는 사망선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