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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Jun 05. 2021

은혜의 자리

연재소설 구름다리 #2

2


모르핀에 의지해도 결코 진정되지 않는 고통으로 은혜는 밤새 벽을 손톱으로 파헤쳤다. 두 차례의 수술에도 경과는 좋지 않았다. 환자를 포기할 수 없었던 담당의는 마지막까지 가족들을 설득했고 가족은 치료에 동의했다. 


치료는 더뎠고 육체와 영혼은 빨리 잠식되고 무너져갔다. 은혜는 의학 연구에 도움을 주는 조건으로 치료비를 감면 받았다. 자신의 사후에 가족에게 남겨질 빚을 은혜는 용납할 수 없었다. 


호스피스 병원은 그런 은혜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은혜는 석 달을 넘기고 얕은 숨을 거두었다. 우는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 현재는 결승점을 통과하는 마라톤 선수를 본 적이 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그 어디를 봐도 우승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날 은혜 가족들의 표정이 그랬다. 


주위 사람들은 마라톤 승자에게나 보낼 만한 찬사를 가족들에게 전했다. 이런 가족이 없다며 은혜는 복도 많고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 거라며 사람들은 가족들의 수고에 찬사를 보냈다. 


가족들은 그때마다 마라톤 우승자의 그 일그러진 표정으로 사람들의 위로를 받아냈다. 슬픔도 고통도 모두 남겨진 자의 몫이었다. 화장터까지 간 가족들은 은혜의 육신이 한줌의 재로 변할 때까지 화장터를 지켰다. 


단지에 담긴 은혜의 육신은 가벼웠고 그 온기는 따스했다. 재가 담긴 단지는 납골당 제일 위 칸에 안치됐다. 값비싼 가운데 칸 대신 그 반 가격인 모서리 위 칸이 선택되었고 그곳이 은혜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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