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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 기다려야 하는

by 현율


50살 석규는 78세 장인과 단둘이 나들이를 준비하며 심란한 마음에 휩싸여 있었다. 오늘 아침 장인은 느닷없이 석규에게 가까운 곳에 가볼만한 강이 있는지, 그곳에 산책할 만한 장소는 있는지 물었다. 석규는 처음에 한강을 떠올렸지만, 장인이 아스팔트 위에서 자전거 행렬이나 조깅을 하는 무리에 섞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물보다 논밭이 더 많은 지방 소도시에서 중고책방을 운영하던 김노인은 일주일이 넘도록 서울 딸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던 참이다. 딸의 손에 이끌려 몇 곳의 병원을 찾았고, 여러 번 검사를 반복하고 난 후 얻어낸 병명은 식도암이었다.


석규는 생경한 나들이 계획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내와 상의할 일도 못되는 것이, 아내는 지금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의사는 환자의 나이와 체력을 고려해야 한다며 수술 여부는 본인과 가족의 몫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망설이면 평생 가는 불효가 되고 말거야.” 팔짱을 낀 아내는 단호했다. 아버지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하려던 오빠 내외에게도 의사가 말한 ‘고려’할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석규의 아내는 김노인을 가족이 모인 자리에 앉히고,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병을 고치고 장수하실 수 있다며 인터넷에서 찾아낸 치료 성공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아들 내외와 석규 부부의 시선에 둘러싸인 채 김노인이 꺼낸 유일한 말은 ‘기다려보자’였다. 그때부터 며칠째 김노인은 침묵했고, 오늘 아침 사위인 석규에게 나들이를 가자고, 운전을 요청한 것이다. 석규의 아내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한폭탄의 초침이 된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다 석규를 조용히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속 터져 죽겠어. 아빠는 젊어서나 나이 들어서나 맨날 기다리래. 당장 수술해야 되는데, 도대체 뭘 기다리라는 거야.” 아내는 분통이 터지는지 가슴에 손바닥을 올리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아버님도 평생 이런 큰 수술 경험이 없으시니 그럴 수 있지. 우리가 설득해야지 뭐.” 석규는 얼굴이 붉어진 아내 등에 손을 올리며 뾰족한 해법이랄 것도 없는 말로 위로를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참고서 필요해도 중고책이 가게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라. 나이 들어서는 암에 걸려서 수술이 급해도 기다려달라. 도대체 아빠는 뭔 팔자가 매번 기다리는 인생이야.”

“암에 걸릴 때까지 분명히 여기저기 증세가 있었을 텐데, 엄마 없이 혼자 살면서 아마 좋아지기만 기다렸을거 아니야. 그러니 그런 몹쓸 병에 걸리지.” 붓기와 주름살이 동시에 늘어난 아내 얼굴에서 눈물이 굴곡을 찾고 있었다. 석규는 아내 등을 쓰다듬던 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말았다.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장인을 변호할 마땅한 표현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신 오늘 아빠랑 외출하면서 꼭 설득하고 와. 아빠 고집 센거 당신도 알잖아. 그나마 사위 말에는 수긍할지도 몰라. 알았지?” 아내는 턱으로 모이던 눈물을 손바닥으로 연신 훔치며, 알겠다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석규 얼굴에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알았어. 내가 아버님하고 얘기 좀 많이 하고 올게. 너무 걱정하지마.” 석규는 핏발이 돋아 희불그레해진 아내의 눈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서둘러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 몇 가닥의 불안과 의구심들이 서로 얽혀 생긴 타래가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장인은 마뜩지 않은 상황을 만났을 때 곧바로 수긍하거나 거부하는 성향이 아니다. 장인의 중고책방에는 그 누구도 열어보지 않을 낡은 서적들이 폐지로 수집될 운명을 기다리며 성벽처럼 곳곳에 쌓여 있다. 확신이 부족한 수술을 감수하면서까지 생의 의지를 품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어떤 불길한 결심을 하고자 외출을 의식처럼 준비하시는 건가. 불안의 가닥들을 아무리 당겨봐도 타래는 풀리지 않았다.


석규는 침대에 걸터앉아 오른쪽 무릎을 위아래로 흔들며 곰곰이 생각하다 오래전 아이들과 찾았던 남양주의 정약용 유적지를 떠올렸다. 자그마한 생태공원과 평탄한 산책로가 고즈넉했고, 팔당호에 둘러싸여 있어서 좋은 풍광을 가진 장소였던 곳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서울시내에서 거리도 멀지 않아 여차하면 병원으로 차를 급히 몰아야 할 상황에도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늦가을 주말 국도는 제법 붐볐지만, 차는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김노인은 뒷좌석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앉아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국도 오른편에 팔당댐이 나타나자 석규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마치 장인의 책방에 쌓인 중고서적 더미 같다고 생각했다. 속도를 늦추며 백미러로 장인을 흘끔 쳐다보니 김노인은 연이어 높이 솟아 있는 회색빛 사각 기둥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도착할 때까지 석규는 장인과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수술을 왜 망설이는지, 지금 어디 아프신 곳은 없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시종일관 생각에 잠긴 장인의 표정을 볼 때마다 입이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도착 후 차에서 내린 김노인은 뒷짐을 진채 앞서 걷기 시작했다. 엉거주춤 뒤를 따라나선 석규는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할지에만 골몰했다.

“아버님. 공기 어떠세요? 여기가 서울에서 가까운데도 완전히 다른 곳 같지 않으세요?” 석규는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나오는 공기타령을 시작했다. 평생 낡은 책 더미의 미로 속에서 살아온 김노인에게 이렇게 드넓게 트인 공간은 완전히 다른 공간일 것이 분명하긴 했다.

“그렇네” 공들인 석규의 물음에 짧은 대답만 내놓은 김노인은 앞만 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생태공원 쪽으로 가는 초입에 소박하고 초라해 보이는 좌판들 몇 개가 늘어서 있었다. 수년전 가족들과 찾았을 때는 행상들이나 좌판이 없었는데, 이 곳도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면서 여지없이 등장한 모양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나물이나, 흙 묻은 더덕 등을 무심히 흘려보며 걷다가 문득 나무 판 위에 쌓아놓은 감들이 눈에 띄었다. 잔가지와 진한 녹색 잎들이 붙어있고, 투박하지만 제법 윤기 있고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감들이었다. 석규는 걸음을 멈추고 탐스러운 감들을 내려 보았다. 좌판 뒤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은 할머니는 이렇다 할 반응 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못 먹는다.” 앞서 걷던 김노인이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도회지에서만 자란 사위에게 낮게 읊조렸다.

“아, 그래요? 제법 잘 익은 거 같은데요?” 석규는 의아한 표정으로 장인의 얼굴과 싯누렇게 익은 울금색 감들과 햇볕에 그을린 좌판주인 할머니의 무표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땡감이야. 떫어서 못 먹어.” 김노인은 풀었던 뒷짐을 다시 지고 앞으로 걸어가며 이야기했다.


“못 먹는데 왜 파는거죠? 너무 양심이 없는 것 같네요.” 머쓱해진 석규는 장인과 멀어진 거리를 좁히려고 보폭을 넓혀 걸으며 투덜댔지만, 김노인과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김노인은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늦가을 제법 차가워진 바람에 유적지 초입 은행나무들은 노란색에 물들어 무거워진 잎들을 간신히 붙들고 서있었다. 자그마한 생태공원에서는 여러 색 국화꽃들이 작은 군집들을 이루고 있었지만 축축했던 여름을 보내고 추레해진 느낌을 감추지는 못했다. 석규는 흐느적거리는 갈대와 그 아래서 바쁘게 흔들리는 강아지풀 사이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빠져나가는 김노인의 몸놀림을 보며, 혹시 장인의 병이 지금 막 완쾌된 것은 아닐까 상상했다.


김노인은 갈대와 강아지풀과 국화들이 어우러진 곳들을 지나 강가에 이르러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늦가을 서늘한 바람이 자그마한 물살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발끝에 걸려 물에 빠진 조약돌 소리가 귓전에 울릴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김노인은 펼쳐진 팔당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벤치를 골라 앉았다. 석규는 장인이 자리를 잡는 곳을 바라보다 거리를 약간 만들며 이어 앉았다.


어디까지가 호수이고 어디부터가 강인지 알기도 어렵고 알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산자락을 품어 흐르거나 여울목을 돌아 처음 만나 두물머리라 부르는 곳. 그 물살들은 지나온 어귀들마다 만난 사람들의 사연들을 품어와 이 곳에서 풀어놓는지, 김노인의 발치에서 찰랑거리며 재잘거렸다. 김노인은 물결이 속살거리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시선은 멀리 호수 한가운데에 두고 있었다. 석규는 장인이 응시하는 곳을 따라가다 햇살이 물결 위에 내려앉다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것을 보며 눈을 작게 뜨고 있었다. 아내가 당부한 이야기는 이미 까맣게 잊었고, 늦가을 오후의 시간은 흐르는 물과 함께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의미 없지.” 김노인이 바지에 묻지도 않은 먼지를 털어내며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네?” 물소리와 햇살에 취해있던 석규는 장인의 외마디를 듣지 못했다. 야속하게도 김노인은 다시 입을 꾹 다물고 왔던 길로 향하기 시작했다. 석규는 선잠에서 깬 것처럼 버둥거리며 장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불현 듯 아내의 당부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곤두섰다.


‘그거 얼마요?“ 김노인은 뒷짐을 풀지 않고 좌판 앞에 서서 한마디 건넸다. 앉은뱅이 의자 위 할머니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올려 종이 위에 투박하게 쓰인 ‘오천원’을 가리켰다.


“두어 달은 지나야 상하지 않은 거 골라 먹게될낀데, 좀 싸게 주소.”


할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다가, 느릿하게 한마디 꺼냈다.


“기다려야 맛있게 잡숫는거 다 아시면서.”


“내가 어데 가면 남이 먹을지 모르는데, 좀 깎아주소.”


할머니는 그제야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주름진 실눈을 살짝 치켜뜨고 김노인을 올려다보았다.


“기다렸으면 먹어야지. 어델 가우. 먹고 가야지.”

“노인네들은 이런거 기다리며 겨울 나는거 모르시나?”


무표정하던 김노인이 빙긋 웃는다. 석규는 장인의 웃는 얼굴을 오늘, 아니 요 며칠 처음 보았다고 생각했다. 김노인은 한동안 할머니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석규는 두 사람의 대화에 도무지 끼어들 수 없었다. 뒤편에 백년은 그 자리에서 살아왔을 것 같은 은행나무만 숨죽이며 두 노인을 내려 보고 있었다. 바람이 한차례 은행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며 노란색 은행잎들이 수다스럽게 몸을 떨었다.


“그 할머니 장사 잘 허시네. 한 봉다리 주소.”


“가자 박서방. 내년 봄에는 여기서 냉이랑 달래 좀 사야지.”


“아버님. 그럼 수술을…….”


석규가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를 건네받는 사이 김노인은 이미 한참 멀어졌다. 헐레벌떡 장인에게 달려가는 석규의 비닐봉지에서 두툼하게 살이 오른 진녹색 감잎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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