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 있든지 과거는 거짓이고,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지난 봄은 다시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격정적이고 집요한 사랑도 어찌 되었든 잠시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것을 권고하고 말았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조구호 옮김, 민음사
그는 첫 인상부터 기이했다. 도무지 입시학원 강사의 얼굴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고 3 입시를 마치고 모 대학의 공과대학에 합격했던 나는 입시미술 학원들을 전전했었다. 당시 나로서는 도저히 미술 대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림에 대한 애착과 소박하기 그지없었던 재능이 미지의 운명과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부모님은 그런 내 심정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술가로 살아보겠다는 자식의 미래를 흔쾌히 응원해줄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결국 내 판단에 맡기겠다는 허락의 조건은 충분히 알아보고 심사숙고하라는 것이었다. 거기엔 재수종합학원에 등록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학원 수업 첫날 국어 시간에 등장한 강사가 바로 그였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입시과정에 필요한 동기부여와 학습방식에 대해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는 듯 열변을 토했지만, 그는 달랐다. 오로지 수업 내용만 얘기했고 마치 수업종료 벨만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늘상 무표정한 얼굴에 시끌벅적한 세상 뉴스에도 일절 관심이 없어보였다. 모두에게 국어 시간은 졸리고 무료한 과정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은근히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들이 느껴졌지만, 도무지 그 감정의 실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봄이 지나고 그해 여름이 오기 전 나는 미대 입시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과 대학입시 현실의 괴리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비용은 물론이고 오로지 합격만을 위한 정교하고 기술적인 방식들은 나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단지 그림이 좋을 뿐이었던 나는 사실상 길을 잃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계절이 한번 바뀌고 한편으론 홀가분해져버린 내게 국어강사에 대한 호기심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욕망이나 열정은 손톱만큼도 읽히지 않는 말투, 그에게서는 조만간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기분까지 느껴졌다. 그럼에도 어떤 알 수 없는 형태의 분위기를 감지한 건 이따금 창밖을 말없이 응시하는 눈빛이나 오르내림 없는 말투로 언급하는 문학작품의 문장 사례들 때문이었다. 문제를 풀어가다 이따금씩 소설의 일부나 시들을 툭툭 꺼내놓는데, 나는 매번 내 가슴에 내려앉는 그 문장들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특히 시를 이야기할 때면 죽어있던 그의 눈빛이 살아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그는 수업시간에 들어와서 책을 펼치지도 않고 칠판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한 편의 시였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평생 잊지 못하고 외우고 있는 그 시였다. 그리고 그가 써내려가던 시를 읽으며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알 수 없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분위기는 고독이었다. 무료하거나 외로운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그 안에 기꺼이 홀로 머무는 정서 같은 것이었다. 그는 칠판에 시 한편을 채우고는 사정이 있어 더 이상 강의를 하기 어렵다는,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홀연히 강의실을 떠났다.
해가 바뀌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으며 다시금 그의 고독을 떠올렸다. 물론 내가 발견했던 국어강사의 고독은 소설 속 그것과는 달랐다. 대를 이은 불행한 고독을 안고 살았고, 결국 스러져버려야 했던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고립에서 시작된 저주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설이 제시하듯이 고립을 원천으로 하는 고독은 잔혹한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백년의 고독>을 접했을 때 나는 잊었던 국어강사의 고독을 반복해서 되살렸다. 그건 아마도 그가 마지막 수업시간에 칠판에 적어 놓았던, 내가 평생 외우고 있는 그 시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해마다 서늘한 공기가 소슬해지는 가을이 되면 창작의 공간으로 되돌아갔을 게 분명한, 더 이상 국어강사가 아닌 시인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린다. 그의 삶에 백 년 동안 이어진 ‘부엔디아 가문의 불운한 고독’이나 저주의 문장이 담긴 ‘양피지 원고’가 아닌, 창작의 희열이 가득하길 기원할 따름이다.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