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 <COLZA>와 나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 작달막한 비행기가 밭을 가로지른다. 비행기엔 금관 악기가 달려 있고 그 음악 소리에 맞추어 노오란 유채가 자라난다. 주인공 도마뱀 클라랑스는 소박하게 유채를 수확한다. 그러나 작달막한 비행기는 곧 거대 트랙터의 부품이 될 예정이다. 클라랑스는 자신이 몰던 비행기를 훔쳐서 떠날 작정을 한다.
어디로 가려는데? 클라랑스를 돕는 조력자 안톤이 묻는다. 클라랑스는 대답한다. 바다 너머로요. 안톤은 마을에 커다란 콘서트를 열어 주민들의 주의를 돌려주고, 클라랑스는 경작용 비행기 하나에 훌쩍 올라 바다로 떠난다. 정든 마을을 뒤로하며, 안톤을 뒤로하며, 눈물을 살짝 흘리고는.
옛날에 나는 화면이 다 부서져가는 낡은 핸드폰으로 이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COLZA>를 보았다. 프랑스 애니메이션 학교 채널을 구독해 둔 덕에 이것이 알고리즘에 나타나주었다. <COLZA>는 그 즉시 내 인생영화로 등극했는데, 처음 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가물거려 유튜브 시청기록을 확인해 보니 2020년 11월 17일이었다. 세상에, 나는 그때 입시생이었다. 딱 하나의 대학에만 서류 접수를 하고서 그 1차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매일 불안을 한 움큼 집어먹던 그런 스물이었다.
평생 나를 감싸던 안전한 공동체에서 떠나 고작 밭만 가로지르던 변변찮은 비행기를 훔쳐 저 바다를 건너려는 건 아주 무모하고 미친 짓이다. 쫓아오는 다른 주민들을 막고 비행기를 가져가 절벽에 서서 출발을 앞둔 그 순간까지 클라랑스는 내심 망설였을 것이다. 미친 짓이라는 건 누구보다 클라랑스가 잘 알았을 테니까. 바다 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안톤도 저 뒤에 남아 있다. 바다 한가운데에 추락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다.
하지만 이 마을은 유채를 수확하는 것이 주된 일이고, 클라랑스가 아끼는 비행기는 휴지조각이 되어 트랙터의 일부가 될 것이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이 안전한 마을에 남는다면 클라랑스는 자신답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클라랑스는 떠난다.
나는 2017년 봄에 본격적으로 어떤 울타리를 내팽개쳤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자퇴를 결정한 게 내게는 털털거리는 경작용 비행기를 타고 바다로 다이빙한 순간이다. 2020년 말에 나는 식량도 연료도 다 떨어지고 아무것도 없이, 그러나 돌아갈 마음도 없이, 여전히 위험한 항로만을 고집하며 철벅거리는 파도 위를 날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어떤 도마뱀의 얼굴을 했다.
지금 나는 그때 시험을 보았던 대학의 (나름) 고학번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실 아직 바다를 다 건너지 못했다. 나는 이 세상에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한참 많고, 아직은 어떤 공모전에서도 입상하지 못한 신분이며, 이 사회에서 내 목소리는 미미하다. 미래가 너무도 멀어 보일 땐 이제 와서 안정적인 취업을 생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이번주 <검붉고 새파란 잡지>에는 원래 다른 글을 연재하려고 했다. 6월 막바지에 동화 공모전을 준비했기에 지친 건지, 그 글은 잘 풀리지 않았다. 나는 바닥난 글머리로 막막하게 노트북을 노려보다가, 영화 리뷰라도 준비하려고 <COLZA>를 보았다. 그렇게 다시 깨달았다.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언제라도 그 절벽에 서게 된다면 나는 마을로 돌아가는 대신 바다로 뛰쳐나가는 선택을 할 사람이라는 걸.
이 작달막한 5분짜리 단편이 나에게 다시금 이만큼의 패기를 불어넣었다. 어쩌면 마지막 장면에서 클라랑스가 짓는 표정 하나가 필요했던 전부다. 영상 예술은 결국 이런 기능을 한다. <COLZA>의 탁월함은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아리따운 아트워크, 짧은 러닝타임에도 엿보이는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들의 확고한 성격 등을 모두 논해도 모자라지만 - 내가 이 글에서 역설하는 탁월함은 딱 한 가지. 바로 클라랑스가 관객에게 건네는 패기다.
나는 결국 날개가 다 부스러져가는 낡은 비행기를 타고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서는 도저히 불가해 보이는 나의 목적지를 찾아 비행한다. 그러다 보면 나와 얼굴 근육이 똑 닮은 클라랑스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