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안 사고, 이유만 사는 사람들

이현승의 마케팅 인사이트 ep.02

by 이현승


백화점 앞 새벽 줄서기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한때 '할인'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지갑이 열렸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그들이 묻는 건 가격이 아니라 이유입니다.


소비의 새로운 문법, 퍼스트 마케팅


2024년 소비 트렌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유 있는 소비'입니다. MZ세대는 '싸다'는 이유만으로 사지 않고, '좋다'는 말만으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명확합니다.


"왜 이걸 사야 하는가?"


흥미로운 건 이들의 구매 패턴입니다. 3만원짜리 텀블러는 주저 없이 사면서, 천원짜리 생수는 30분 고민합니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죠. 텀블러에는 '환경보호'라는 명분이, 생수에는 '그냥 물'이라는 무의미함이 있을 뿐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이 '불편함'마저 기꺼이 감수한다는 점입니다. 일회용컵이 편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온라인 주문이 간단하다는 걸 알면서도 동네 서점을 찾아갑니다. 합리적 소비자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동들이죠.


이는 단순한 소비 패턴의 변화가 아닙니다. 구매 행위 자체의 의미가 바뀐 거죠. 과거엔 '필요'에 의해 샀다면, 지금은 '정체성' 때문에 삽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합니다.



브랜드는 이제 '존재증명서'를 팝니다


브랜드들이 말하는 내용을 보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제품 기능 설명은 줄어들고, 브랜드 스토리는 늘어났습니다. 환경 친화적 소재, 동물실험 금지, 사회적 기업과의 협업까지...


하지만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봅니다. 환경보호를 외치면서 과대포장을 하거나, 동물보호를 말하면서 동물실험 업체와 거래하는 브랜드들은 순식간에 외면받습니다.


현대 소비자들은 브랜드 탐정입니다. 브랜드의 진정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모순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립니다. 그들에게 브랜드는 단순한 제품 제조사가 아니라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반자'여야 합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가치관 논란'으로 타격을 받은 브랜드들을 보면 이 현상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소비자들은 SNS를 통해 브랜드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고, 경영진의 발언을 분석하며, 협력업체의 윤리성까지 따집니다. 한 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들은 이제 '완벽한 일관성'을 요구받습니다. 광고에서 말하는 가치와 실제 운영 방식이 다르면 즉시 발각되고, 그 순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당신은 왜 존재하나요?"라는 실존적 질문


최근 한 병원 원장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상담 받으러 온 환자분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원장님은 왜 의사가 되셨나요?'라고. 처음엔 당황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중요한 질문이더라고요."


이는 의료계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기술이나 가격, 서비스 품질 같은 '기본기'는 이제 어디서든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차별화의 기준이 '무엇을 하느냐'에서 '왜 하느냐'로 이동한 거죠.


소비자들은 브랜드에게 실존적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왜 존재하나요?" 그리고 그 답이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할 때만 지갑을 엽니다.


병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들은 이제 단순히 '잘 고쳐주는 곳'이 아니라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철학을 가진 곳'을 찾습니다.



구매는 투표다, 지갑으로 하는 가치관 선언


현대의 구매 행위를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말은 '투표'입니다. 소비자들은 돈을 쓸 때마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에 한 표를 던집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단순히 카페인 섭취가 아닙니다. '글로벌 브랜드를 지향하는 나'를 표현하는 행위죠. 로컬 카페를 선택하는 건 '동네 상권을 살리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고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브랜드는 정치적입니다. 소비자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브랜드가 실수하면 소비자들의 반응이 격렬한 거예요. 단순한 제품 불만이 아니라 '배신감'을 느끼는 겁니다.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 전환, 기술 VS 철학


의료계에서도 이런 변화가 뚜렷합니다. 과거 환자들은 "잘 고쳐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지금은 "어떤 철학으로 치료하세요?"라고 묻습니다.


한 치과 원장의 경험담이 인상적입니다. "예전엔 '얼마나 빨리 치료가 끝나나요?'라고 물었는데, 요즘엔 '왜 이런 치료를 권하시나요?'라고 물어요. 설명해달라는 게 아니라 제 치료 철학을 알고 싶어 하는 거죠."


환자들은 의료진의 기술력은 기본으로 전제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찾습니다. '환자 중심 진료', '개인 맞춤 치료', '충분한 상담' 같은 철학적 가치들이 병원 선택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마케터의 새로운 역할, 이유 디자이너


이 변화 속에서 마케터의 역할도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할까'가 아니라 '왜 존재하는가'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마케터는 제품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발굴하고, 그것을 모든 접점에서 일관되게 구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핵심은 '이유의 일관성'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말하는 브랜드 가치와 실제 서비스에서 경험하는 가치가 일치해야 하고, SNS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모습이 같아야 합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소비자들은 즉시 알아차리고 등을 돌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작은 디테일'입니다. 환경을 중시한다고 말하는 카페가 일회용품을 남발하거나, 고객 중심을 외치는 병원이 대기시간 안내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모든 메시지가 무너집니다.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믿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공 공식, 진정성 = 일관성 × 지속성


결국 이 시대의 마케팅 성공 공식은 간단합니다.


진정성 = 일관성 × 지속성


일관성은 모든 접점에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지속성은 그것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곱해질 때 소비자들이 인정하는 '진정성'이 만들어집니다.


맥락이 말보다 중요하고, 철학이 가격보다 설득력 있고, 태도가 기술보다 신뢰를 만드는 시대입니다. 이유 없는 브랜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이유로 존재하나요?"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물건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 이유를 선택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지 않습니다. 그 물건을 사도 되는 이유만을 사는 것이죠."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그건 ‘실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디부터 어긋난 건지, 제가 직접 진단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액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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