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M Jul 07. 2020

01_시작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운명처럼 만났다.


운명같이 만나서

운명같이 사랑에 빠지고

운명같이 결혼에 골인하는

그런 터무니 없는 말을

믿지 않았다.



-



  28살, 여름이 막 시작될 때쯤이었나.. 시련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 대던 어느 날.

  대학 동창모임을 가게 되었다. 대학 때 워낙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인데, 각자 사회로 나간 후 한참을 뜸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갖게 되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도 거기,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모임에 참석했다. 대학 다닐 때는 츄리닝 바람에 과패딩 하나 걸쳐 입고 추레한 모습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그 모습이 내 심장을 때렸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우리 넷은 그저 '영원한 친구' 사이였으니까.

  술이 한 잔, 두 잔, 분위기 타고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깔깔깔깔 술집이 떠나가라 웃어대고 실없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즐거움은 늘 빨리 끝나는 법.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다들 집에 가야 한다고 이만 헤어지자고 들 했지만, 술만 들어가면 경주마가 되어 버리는 나를 버리고 두 놈은 도망가고 지금의 남편만이 내 곁에 남아 날 부축해주고 있었다. 술김이었을까, 그놈의 정장 때문이었을까. 내 어깨를 부축하고 있던 그 손이 따뜻해서였을까. 그날따라 그 사람이 참 멋있어 보였다.

  그 날이, 1일이었다.


  대학 시절 형제처럼 지내던 두 사람의 열애설에 주변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아주 뜨거웠다. 이렇게 급격하게 서로가 좋을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사실 군대 갈 즈음부터 나를 좋아했었다고, 그래서 그 시절 내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도 보여주면서 사실을 인증해주고 그랬다. 나에겐 특별했지만, 뭐, 그런 흔한 러브 스토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 알고 보니 남자는 대학시절부터 여자를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군대 문제로 고백을 미루게 되고.. 제대 후 고백하리라 다짐했지만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 형편에 연락조차 못하게 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모임에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뭐 이런.. 그러나 나는 그 흔해 빠진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그 행복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나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내 앞에 나타난 남편은 운명 같았다. 모든 게 완벽했고 모든 게 빨랐다. 사귄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첫째가 찾아왔으니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난 원래 결혼도 일찍 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싶어 했던 터라 그 눈물은 '모든 게 끝났어'라는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남편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하는 걱정의 눈물이었다. 혹시, 일 저지르고 나 몰라라 도망가는 비겁한 사람일까 봐. 나는 조심스레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두 줄'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남편은 꽤 침착한 타입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얼굴에 핸드폰 꼭 대고 남편의 반응만을 기다렸다. 내 기억에 남편은 피식- 웃었던 것 같다. 날 걱정해주었고, 기쁘다고 해주었고, 그리고 행복하다고. 그렇게만 말해주었는데도, 걱정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쏟아졌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나도 이제 결혼한다. 나도 이제, 엄마가 되는 것이다..! 그때의 기쁨을 아직까지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3개월의 연애 끝에 2012년 12월 2일, 무사히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