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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 오픈 플레이스 Oct 24. 2021

영국 집, 알바니아 빌더, 그리스 건축가, 그리고 나

예상대로, 이 집에는 경쟁자가 없었다. 저번 과정과 너무 달라, 역시나 사람들은 공사할 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또한, 우리는 바로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 공사를 하기로 한 것이고. 집을 사는 과정은 변호사와 자금의 출처를 확인해 승인을 받고, 이를 기반으로 모기지 대출 심사를 거쳐야 했다. 원래 생각보다 작은 집이었고, 은퇴자 주택이었기 때문에 대출을 받고 나면 우리에게 공사를 진행할 잔금이 남아있을 예정이었다.



영국에서 집을 사는 과정은 보통 4주에서 8주 이상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지역이나 부동산마다 조금씩 심사의 순서가 다른데, 우리의 경우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모기지 대출 브로커였다. 부동산에서 소개를 받은 모기지 상담사인 필립은 먼저 스스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금을 추적하고 확인하였고, 까다로운 서류를 요구하고 질문을 했다. 처음에는 왜 이 분이 모든 걸 다 보나 생각했지만, 그가 꼼꼼히 확인을 해서 넘기고 나면 변호사도 별말없이 스르르 넘어갔고, 은행은 마법처럼 돈을 내어주는 구조였다.


한가지 문제는, 그는 도통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디. 겨우 연락이 되어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으면, "당신, 전형적인 과학자군요, 안 그래요?" 농담을 하며 답을 얼버무리곤 했다. 몇 번의 서류 보충을 통해 단계가 넘어가고, 어느 순간 잠잠 무소식에 돌입했다. "어쩌면 이게 일을 잘하는 방법일지도 몰라". "얼마나 많은 초조한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전화를 했겠어, 다 받다 보면 일을 못할 것 아니야?" 겨울잠을 자듯, 완전한 고요 속에서 매우 긴 몇 주가 더 지나고, 드디어 연락이 왔다. "미안해요, 아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다니느라 너무너무 바빴어요." 나는 의심스러웠지만 남편은 몸은 괜찮은지, 예의 바르게 물었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모기지 승인이 났어요. 축하합니다."


대출 승인이 나고 난 후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부동산에서 열쇠를 받아가지고 처음 집으로 들어섰다. 달그닥거리며 긴 열쇠로 오래 된 문을 따고 발로 쾅 차서 겨우 들어가자, 꽃무늬 욕실, 그러고 보니 창문에도 장미무늬, 램프에도 꽃무늬가 새로워 보였다. 전에 살던 분도, 이 집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감흥에 젖은 것도 잠시, "이럴 때가 아니에요". 사실이었다. 원래 소개를 받았던 스코틀랜드 빌더와는 예산에 대해 의견이 달라서 그만 연락이 끊겨버린 상태였다. 승인이 나고 너무나 기뻤지만, 현실은 바로 그달부터 대출금이 갚기가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모기지 대출과 워릭에 살고 있는 집의 월세를 양쪽으로 내고 있었다.


그래, 빌더찾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인터넷이 있고, 공사비를 주고 공사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호기롭게 인터넷으로 검색한 인테리어 업체에 하나하나 들어가 포트폴리오를 유심히 보면서 전화를 해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휴가라 3주 정도 있다가 한번 가볼 수 있겠네요." "그 지역까지는 공사안 해요." 몇 번의 거절을 당하자 뭔가 불길한 느낌으로 보이는 대로 마구 전화를 하던 중, 드디어 한 업체에서 경쾌한 목소리의 리셉셔니스트가 말했다 "네 좋아요. 내일모레 존과 약속 잡아드릴게요. 존은 저희 대표님이에요" 약속을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에 들었다. 다시 보니, 구글의 평도 꽤 좋았다.  



드디어 아이들을 태우고 인테리어 업체로 향했다. 옥스퍼드에 이사온지 얼마 안 되는 초보였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따라가다 보니, 컴 너 힐이라는 길을 오르는데 이제껏 보지 못한 저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을 기웃기웃 보고 싶어도 정원이 넓고 나무가 많아 안 보이는 그런 집. 나는 갈수록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입구가 보이지 않는 높은 담으로 된 집들이 보이더니, 꼭대기쯤, 저택과 저택 사이에 반짝 빛나는 단층 쇼룸이 있었다. 반짝이는 차 사이에 우리의 오래된 SUV를 세우며 /애써 불안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하얗고 반짝반짝하는 독일제 키친이 즐비하게 전시된 쇼룸에 당당하게 들어섰다.


"존과 약속하셨죠?” 벌써 나가고 싶은 생각을 하며 비서의 안내를 따라 유리로 된 테이블에 자리에 앉으니, 존은 그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남편은 천진난만하게 물이 나오는 아일랜드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 집의 플랜을 커다랗게 프린트를 해서 사장님이 들고 들어오셨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우리 집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진도 보여주었다.


"먼저 우리 회사의 역사를 좀 설명해야겠군요". 인사를 건넨 후, 풍채 있는 슈트를 입은 그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는 20년간 옥스퍼드에 키친 전문 회사였지요. 그러다가 나는 생각했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실현해가는 것으로요. 키친을 설치하는 전문이지만, 몇 년 전 이 언덕으로 이사 오면서, 이 건물을 지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고객의 집에 엘리베이터도 설치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 사례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힘을 주어 설명했다.


"그렇군요" 나의 관심 없는 목소리를 눈치챘는지, 그가 서둘러 말했다. “알았어요. 이층에 방 세 개와 화장실을 만들고 싶다 그거잖아요? 우린 모든 걸 다 해요. 모든 걸 최고로.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할 수 있어요.” 그리고는 이 디자인 회사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그 간의 공사 결과물도 보여주었다. “우린 건축가와 전기설비기사까지 다 있어요. 원스톱이죠. 마침 운이 좋게도, 공사하던 집이 밀려서, 당장 시작할 수 있어요.” 제일 묻고 싶은 질문은 이거였다. “공사비는 얼마인가요?” 그는 생각한 공사비의 두 배를 불렀다. 1층만요. 그럼 이층은요? 2층은 1.5배. '우리의 버짓으로는 1층 아니면 2층만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이 들며 한 가지 더 물었다. “키친은 포함인가요?” “아니죠, 키친은 따로 7500만 원.”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 인테리어 회사는 디자인과 건축비가 모두 들어있는 형태였다. 분명 유기적으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는 형태였으나, 4분의 1의 버짓밖에 없었던 나는 기운 없이 집에 돌아와, 이메일로 버짓이 안 맞아 못할 것 같다고 남겼으나, 디자이너와 건축가와 함께 일하는 사무실의 가격이 대략 그렇다면 아마도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구루와 만나 토로했다. “그런 회사는 비쌀 수밖에 없을 거예요. 개인 빌더를 구하고, 건축가를 따로 고용해서, 발품을 팔아 자재를 사서 가장 쌀 거예요”. 물건을 사고, 빌더와 건축가 사이를 오가고, 프로젝트를 관리할 금액이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사장님은 그 후로도 굳이 집 앞에 와서 전기기사와 와 있다고, 와보라고 전화까지 왔다.


"그 사장님 멋지다.” 싫으면 말라는 영국인 공사업자들에게 상처 입은 지라 적극적인 회사가 내 입장에서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었다. 인건비도 없고,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사는 인테리어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빌더, 전기기사와 함께 전체를 관할하고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이었다. 보통 빌더를 구해서 빌더와 도면을 만들어가며 하는 방식이 가장 저렴하고 소규모 공사라면, 1층의 키친과 화장실을 바꾸고, 다락 증축을 하는 우리의 공사는 대규모 공사에 속했다.


나는 이메일로 도면을 받아보고 결정하고, 컬러를 정하고, "이 색깔이 좋아요." 하고 답신을 보내는 역할을 하고싶었지만, 그러나 '프로젝트 울버 코트'에 우리가 책정한 공사비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없이, 건축가 없이 재료와 비어있는 틈을 누군가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난 비어있는 틈이 뭔지도 모르는데"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저녁을 먹으며 "그리고 빌더도 없고. 옥스퍼드에 빌더는 다 어디 있는 거야? 왜 다들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거야?"



 11월에 산 집은 3개월째 텅 비어있고, 물론 모기지는 꼬박꼬박 나가고 있다. 공식이 있다. 인기 있는 빌더는 여유롭다. 인기 있는 빌더는 몇 달째 줄이 서 있다. “쉽게 잡히는 빌더는 잘 봐야 해요. 카우보이 빌더도 있어요.” 친구는 처음으로 화장실을 고치며 실리콘을 마구 발라놓고 작업을 끝내고 가버렸다고 했다.  빌더를 찾는 일이 제일 큰 문제였다. 인기 있는 빌더 회사는 몇 달씩 기다리기도 한다. 빌더 찾기의 딜레마, 인기 있는 빌더는 줄이서 있어서 오래 걸린다.


“인터넷 보고 아무나 시키면 안 돼요. 정말 카우보이 빌더들도 있어요. 어쩜 이렇게 했을까 싶게 페인트를 칠해놓고, 정말 대강 마감을 해놓고는 연락도 되지 않아요. "공사 단계마다 돈을 지불해야 하고, 절대로 선불로 주면 안돼요!"

설상가상, 그 나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는 듯했다. "빌더를 아직 못 구했다고요? 인기 있는 빌더는 몇 달씩 기다려야 해요". 공사 경험이 있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렌트와 대출을 같이 나고 있는 거예요?" 측은한 듯 바라보았다.


엄청난 일을 벌인 것 같은 생각에, 공사가 한창인 언니에게 풀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집에 그냥 들어가 살 수도 있나요?" 스스로 공사라는 비슷한 일을 겪고 있던 언니는 안쓰럽게 바라보며 함께 머리를 짜내었다.


 "빌더가 안 구해지면, 일단 방 하나에 카펫을 깔아봐요.  현수 씨가 남편과 둘이 깔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사를 들어가서 그 방에 살면서, 주변에 배관공을 찾아요. 배관공이 화장실을 고치고, 난방 라디에이터를 새로 달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보통 배관공이 전기기사 연락처를 알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하면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지만 돈은 많이 아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전기, 배관, 구조 공사를 관할한 빌더 없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넘어서서, 각 전문가를 관리하는 것까지 공사 과정을 순서대로 지휘하며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혹했다. 일단 양쪽으로 지불하기가 힘들었고, 남편은 출근을 앞두고 있었고, 아이들의 학교도 결정하려면 결국 이사를 가야 했고,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도움이 적을수록, 공사면적이 적을수록 공사비는 더욱 절약이 될 것이었다.


겨울날 밤, 아이들은 집  안에서 신나게 공을 차고 놀고 있는 동안,  집에 들어가 카펫을 주욱 뜯어보았다. 회회색  콘크리트 바닥이 나왔다. "이게 우리 집이라니." 12년간 렌트집을 불평하며, 꼭 따뜻하고 좋은 집을 산다더니, 콘크리트 바닥에 우리가 스스로 카펫을 깔아야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마음의 끈을 동여매고, 주말마다 에어베드를 놓고 여기서 지내며 본격적으로 셀프 공사를 세우고 있었다.


한쪽에서, 남편은 "누군가..누군가 더 있을텐데. 내 주변에 집 공사를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무의식 속을 헤엄치며 명상을 하는 듯 했다.  그러던 그가 한건 해냈다. 새로 공사한 집에 초대해 주었던 그리스 동료 멜리나가 생각난 것이다. 뒷마당에 증축을 해서 세운 그녀의 키친에는 최신식 '물나오는 곳'이 있고, 그리스식 타일이 깔려 있었다고 했다. "아니, 왜 이제 물어봤어요? 내가 아는 좋은 빌더가 있어요. 원래 런던에서 15년 일한 사람인데, 제가 공사 계획할때 옥스퍼드에 스카우트하듯 데려왔어요. 저희 공사하고 마음에 들어서, 주변에 굉장히 많이 소개했어요. 일단, 혼자 일하는 사람이어서, 인건비 면에서 아주 가성비 좋다고 할 수 있죠. 아, 이름은 요티예요"


그리하여 1월의 우울한 겨울날 저녁,

요티는 30분 늦게 후드를 쓰고 나타났다. 선보듯 긴장하고 있는 우리를 두고 집을 한 바퀴 돌아본 그는 천천히 공사비를 불렀다. "나는 이런 식으로 일해요. 건축 자재는 다 내가 사고, 눈에 보이는 것들 있죠? 스위치, 페인트, 나무 바닥, 타일. 이런 건 직접 사서 가져와야 해요. 그렇게 하고, 공사는 내일모레부터 할 수 있어요." "저는 공사만 해요. 다락 증축은 자세한 건축도면이 있어야 할 거예요." "혹시 아는 건축가가 있나요?" "야니." 그는 바로 이름 하나를 댔다. "그와 여러 번 일해봤어요. 써머 타운에 있으니까, 가봐요."


너무 빨리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드디어 우리가 오랫동안 들고 있던 엉킨 실타래가 저절로 풀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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