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요 흔들려

by 현스


빵을 굽기 시작한 것은 빵을 좋아해서도 있지만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삶이 불안해서였다. 내가 빵을 좋아하지만 집에서 빵을 만드는 수고를 기꺼이 하면서까지 빵을 먹는 것을 좋아할까?


코로나가 터지기 전부터 연기를 하며 먹고 살아가는 걱정은 늘 해왔다. 좋아하니까, 이 일을 할 때 가치를 느끼니까. 당장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일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하니까. 그리고 작품을 하나 끝내고 나면, 성실하게 한다면 언젠가는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나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들었다. 드문드문 들어오는 일에 이건 안 되겠다가 아니라 드문드문 들어오니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희망을 가진다고나 할까.


희망이 있다고 불안함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그 불안함의 시작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나 명확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자주 말했다. “답이 나오거나 명확한 결과물을 얻고 싶다고.”


좋아하는 것은 너무 많았고 그중에서 어떤 것이 실용적일까 생각을 하다가 제빵을 배워보기로 선택했다. 제과도 있었지만 제빵보다 섬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조금 투박해도 될 것 같은 제빵기능사 자격증 코스에 등록을 했다. 시험을 칠 때 운이 좋지 않게도 수업 딱 하루 빠진 날의 품목이 나왔지만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합격을 했다. 그렇게 입문 턱을 넘고 도구들을 하나씩 사기 시작해서 홈베이킹을 시작했다.


꼭 필요한 도구만 샀기 때문에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반죽기는 없었다. 레시피대로 계량하고 물 온도를 맞추고 밀가루를 치대고 있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졌다. 이런 것이 명상의 효과일까? 원래 하는 일과 다른 방식의 일을 할 때 우리의 몸은 새롭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분명 힘든 노동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그 행위를 통해 또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다. 평소에는 이야기 분석, 인물 분석, 그걸 체화시키는 시간, 다른 배우들과 소통하며 답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가졌더라면 빵을 만드는 것은 주어진 가이드에 따라 하나씩 하다 보면 하나의 빵이 완성되었고 그 결과물 또한 그럴듯하게 보였다. 이것도 하나의 창조가 아닐까. 성질이 제각각이던 재료들이 섞여 맛과 향과 형태를 가진 하나의 결과물로 나왔으니까.


글루텐, 발효 정도, 구움색과 같이 눈에 보이는 변화들에만 집중하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고 나면 생각이 마치 필터링이 된 것처럼 개운해졌다. 어떤 것에 집중해서 몰입하고 난 후에 느껴지는 편안함이랄까. 꽤나 품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빵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삶의 불안이 꽤나 옅어졌다. 하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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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이나 제과를 시작한 사람들의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느껴지는 보람은 비슷하지 않을까. 한 번의 노동과 정리가 끝난 뒤 명상을 한 것처럼 개운해지고 만든 것을 맛있게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 느껴지는 행복감. 우당탕탕 빵을 만드는 과정이 내게는 어떤 명상 방법보다 집중하기 쉽고 안정감을 주는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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