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아빠의 눈물

by Hyuntae Kim


전쟁터를 다녀온 적이 있다. 2009년부터 2010년 여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인들과 일년을

생활했다. 같이 지낸던 동료들의 장례식도 치루어보기도 했다 그때도 슬프긴 하였지만 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운다는 것은 전쟁터에 있는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울음이라는 것

이 울고 싶다 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 속 저긴 어딘가에 있는 울림통을 누가 쳐주어야 난

다. 마치 북이 혼자서는 소리가 안 나듯 북채로 때려 주어야만 하듯이 내 안에 쌓이고 쌓인 가죽

겁데기를 (북은 가죽으로 되어있는 경욱가 많다) 때려 주어야 하는데 그런 날이 오고 말았다. 아이

랑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을 받으러 치료실에 갔다. 한참 어렵게 치료실을 찾다. 기다림

의 시간이 끝나고 겨우 찾은 곳이었는데 아이는 그곳에서 참여를 하지 않았다. 안 할 수 있다. 아

이라고 그 치료가 즐거울 수는 없다. 아이는 그날따라 치료 하시는 선생님 (여기 보통 치료사라 부

른다.)이 감당 할 수 없었는지 아빠인 나를 치료실로 불렀다. 아이가 바닥에 누워 소리 지르며 움

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지시에도 따르지 않는 것이었다. 무릎 꿇고 앉아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보고 하였음에도 무엇인 불만이었는지 내 안경을 잡아 옆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이를 들어보려 함에도 아이가 제법 커서 일으키는 것도 여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용을 쓰고 아이

를 달래고 하고 있는 중에 들리는 한 마디 “ Poor Daddy” “불쌍한 아빠” 라는 말이 북채를 북에다

세게 때리듯 마음 한 구석 어디에 있던 가죽 껍데기를 후려 치는 것이 아닌가? 북이라면 둥둥 소

리가 났을 터인데 눈가에서 갑자기 눈물이 쭈루룩 혹시나 치료사가 볼까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

쳤다. 아마도 아이와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 치료사가 보기에는 너무 안스러웠던 모양이다. 전쟁터

에서 동료를 잃은 슬픔이 컸음에도 속으로 삼키던 눈물을 "불쌍한 아빠" 그 한마디에 무너진 것이

다. 치료사가 오늘은 진척이 없으니 접자고 한다. 아이를 부랴부랴 챙겨서 차에 앉아 시동을 걸자

차의 우렁찬 시동 소리와 함께 다시 “불쌍한 아빠” 라는 북채가 다시 한 번 마음을 두드렸다. 눈물

이 주르룩 하 이건 나이가 몇인데 겨우 그 한마디에 우나 하면서 집으로 운전 하는 내내 눈물이 났

다. 그렇게 큰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울었다 그리고 또 울었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의 간식을 먹이

고 앉아 있는데 아이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 듯 살짝 포옹 하더니 내 등을 토닥였다. 넌 아빠가

우는 이유를 아니? 사실 나도 우는 이유를 몰랐다. 삶의 현장에서 장애 아이와 이렇게 씨름 하는

일이 한 두 번인가? 그 힘겨움을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오늘도 울음을 삼키는 너

“그래, 한 번은 울자, 울음보를 비워내야 또 울음을 삼키지 않을까? 넌 참 잘하고 있는 거야 힘을

내 파이팅.” 오늘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모든 부모님에게 말하고 싶다. 울자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지

말자, 울음 보따리가 차면 풀어놓자 그래야 시원해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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