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너만 기다리는
금붕어
있지, 오늘은 하루 종일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그냥 울었어.
일생을 투명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고,
너와 나 사이에 생긴 얇은 벽은 그토록 두꺼워서,
보고 싶지만 볼 수 없고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었어.
마음이 성기어 본 적도 없고 변한 때도 없는 이를 기다리는 일이란
내 안에서 피어난 낯선 감정들을 에멜무지로 붙드는 일이었고,
날 송두리째로 헤집어 놓는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그땐 몰랐어.
있지, 오늘은 나도 모르게 금방이라도 어딘가로 튀어 나갈 것만 같았어.
나는 이런 내가 견딜 수 없이 불안해서
작은 날개를 지었지만, 날이 새도록 빌어도 날 수 없었고
내 어린 밤들은 갈 길을 잃고, 달도 별도 눈물을 훔쳤으니
이 밤을 찢는 작은 짐승의 비명은 경각의 나팔 소리.
생이란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속에서 난파하는 귀 하나가
맴돌고 맴돌아 수중에 부유하는 한 점의 파란.
슬프게도 깨달았어.
이건 누군가(어쩌면 내)가 삶을 애걸하는 목소리라는 걸.
있지, 오늘은 내버리던 무언가가 잠시 눈에 밟혔어.
한때 손을 타던 물건들, 이를테면 한때 가장 왕성했고 가장 밝았던 것들.
오래된 곰인형, 손편지, 그리고 너와 내가 담긴 필름 사진 한 장.
캔버스 한 폭에 내가 섬세하게 수놓았던 순간은 현실이라는 장치에 묶여 말라버렸어.
빛바랜 수채화 한 장을 놓지 못하는 건 유약한 이별인 걸까, 도태된 낭만인 걸까.
연약한 육신은 탄력을 잃고, 허물은 허물대로 실어 보낼 때가 왔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대체 이게 다 뭔지 싶어.
만남 끝엔 맺음이 기다리고, 영영 푸르를 줄만 알았던 계절은
눈 깜짝할 새에 잎새마저 닫아버리지.
하지만 난 아직도 너와 내 시간 사이에 벽 하나를 걸쳐 두고서
올 듯 말 듯 끝내 가버릴 그날의 너만을 기다리고 있어.
오지도 않을 장마 따위는 내버린 채로.
있지, 오늘은 잊고 살던 때가 떠올랐어.
아이처럼 황황해진 가슴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서
함께 췄던 춤을 추고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부르고
너는 다시 날 사랑하고, 나는 여지껏 널 사랑하고
네가 사랑하던 음성은 거리에 사랑을 부르고,
내가 외우지 못했던 음표는 시상으로 적히고,
입가에 붉게 맺힌 언어들이 꽃잎인 양 소복이 쌓여 속살거려도
그게 무얼 향한 갈증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만 가라앉고 말아.
그때 그날들, 멀미처럼 얹혀 쉽사리 토해지지 않던
그 언어―가령 사랑―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연민, 동정, 쾌락, 순애, 행복, 자유. 책임감, 맹세, 언약, 상징, 증표, 배신, 실연, 상실, 상사(병), 미련?
어느 하나 당연하지 않은 감정이자 개념이고,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때론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예고도 없이 던져질 때
다시 한번 그 단어들을 입가에 머금을 수 있는 순간이 올까.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여. 망각의 벽아.
이제 추억을 와인 대신 머금고 시간에게 돌려주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주황빛 적막에, 문득 들려오는
정박의 초침 소리에 내 정신의 부레가 부풀어 터져버린다면
그땐 죽은 정(情)을 살릴 수 있을까. 껴안고 달랠 수 있을까.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
나는 게 아니라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해엄치는 게 아니라 파도에 실려가는 물고기처럼
거스를 수도, 다스릴 수도 없는 얄궂은 인생을
온몸이 부서지도록 껴안아 그 안의 용기와 사랑을 자각하고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졌다죠.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연민, 동정, 쾌락, 순애, 훔모, 행복, 자유. 질투, 책임감, 맹세, 언약, 상징, 증표, 배신, 실연, 상실, 상사(병), 집착, 미련?
어느 하나 가볍지만도, 무겁지만도 않은 개념이고,
얼마 안 가 사람을 부러 제압하는 비비탄 총알 같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제게 있어 사랑이란 끊임없이 장전되는 감정이자 가장 본능적인 감각이고,
인생이란 육중한 저울로부터 구제된 한 마리의 호기심과 같다는 것을.
전 아직 아직 인생에 대해 아는 게 없고.
별안간 제 사랑이 궁금하다고 멀리 떠나보고도 싶지만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 혹시 저처럼 지독한 짝사랑을 앓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저와 같은 인물이 있다면 작게나마 말씀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기다림은 얼룩을 남기고. 얼룩은 시간의 때를 남기지만
시간은 곧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얼룩은 시간에 물든 모든 감정―애정이나 감정―들이 포개지고 포개진
눈물의 총체이겠죠.
한때 숨결 내비치던 속살을 가만가만 매만지며
우리에게만 푸르지 못했던 추억 하나 둘 메워버리니
금빛 햇살에 물든 눈물 훔쳐내면
긴긴 겨울의 어깨에도 눈꽃은 한 아름 피어나리니
당신이 쏟은 시간이 희망이 소용없는 것 같다고 해서 당신의 흠모까지 무용하다고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짝사랑을 앓고 있는 분들을 응원하며 이만 말을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