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길잡이교사 (4)
프로젝트가 끝나면 청소년자치회가 개최된다. 8시까지 이어지는청소년자치회(청자) 회의를 매주 참관했다. 4기부터는 내가 청소년자치회 담당 길잡이교사로 세워졌다. 운영지원팀에게 닥친 어려움도 한 몫했다. 운영지원팀 파견 교사가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면서 청자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나는 헬퍼로서 운영지원팀을 보조해 청소년자치회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길잡이교사로서 처음 참석한 날,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열정에 감탄했다. 밤늦게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열정 속에서도 나는 문제를 발견했다. 비민주적인 문화, 폭력적인 언어, 그리고 경쟁적인 학습 분위기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자치의 본질을 오해한 채, 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었다.
청소년자치회의 대표 선정에 관한 논의를 할 때였다. 대표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한 청소년이 말했다.
“대표가 되면 짱 먹는 거잖아요?”
이 발언은 단순한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깊은 오해가 담겨 있었다. 자치는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우수한 이들을 추앙하며 엘리트 중심의 문화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기존의 경쟁적 학생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운영지원팀 선생님들도 같은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회의는 열정적으로 진행되었지만, 합의 없이 진행자와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은 결국 자치의 가치를 무너뜨릴 위험이 컸다. 이러한 흐름을 방치할 수 없었다. 자치의 본질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야 했다.
은하수학교에서 서클은 청소년들이 민주적 소통과 존중을 배우는 중요한 도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본질이 점차 희미해졌고, 형식만 남은 채로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서클의 본래 의미를 되찾는 일은 단순히 형식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청소년들에게 소통과 민주성의 본질을 가르치는 작업이기도 했다. 운영지원팀과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이대로 진행하면 청소년자치회가 자치조직이 아닌 권력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방향을 바로잡아야 해요.”
고민 끝에, ‘다시 서클로’라는 이름의 워크숍을 제안했다. 서클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민주적 문화와 평등한 소통을 배우는 장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야 했다. 그렇게 긴급하게 두 차례의 워크숍을 개최했다.
첫 번쨰 워크숍에서는 은하수학교의 철학과 서클의 가치를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나는 청소년들과 함께 학교가 설립된 배경을 나누며, 기존 공교육의 한계를 짚어보았다. 특히 은하수학교의 슬로건인 "같이 빛나며 성장하는 은하수학교"가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능력의 차이를 넘어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번째 워크숍에서는 서클을 운영하는 구체적인 원칙을 정립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청소년들은 제안과 합의 과정을 통해 서클의 규칙을 직접 만들어 갔다. 나는 이 과정에서 "참여적 의사결정의 다이아몬드"와 "동의 단계자" 같은 개념을 설명하며 민주적 소통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공유했다. 청소년들은 서로 토론하고 고민하며 서클의 주춧돌로 삼을 원칙들을 도출해냈다. 워크숍을 통해 청소년들은 청소년 자치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고, 민주적 토론을 위한 다양한 방식을 익히게 되었다.
서로 존중하며 말을 끊지 않아요
누군가가 의견을 내도 평등하게 경청해주세요
리액션 또한 서클의 일부에요
회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당일 오후 2시 전까지 참여 여부 투표를 완료해요
사적인 감정은 두고 친구가 아닌 토의자로 대해요
서클 안에서는 모든 의견을 포용해요
이 서클 워크숍을 통해 나는 길잡이교사로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청소년 자치의 본질은 단순히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적절한 순간에 개입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자치란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때로는 자신의 욕구를 양보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은 방임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방향을 제시하여 청소년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도록 돕는 데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서클 워크숍의 기획과 실행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운영팀과 길잡이교사 간의 유기적인 협력과 빠른 판단 덕분에 워크숍은 청소년들에게 자치의 본질을 배우는 기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청소년들은 민주적 소통과 자치의 원칙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과 경험을 통해 습득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은하수학교에서는 감정 관리, 민주적 의사소통, 학교 철학에 대한 연수와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서클 워크숍의 가장 큰 의의는 문제의식을 느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한 점에 있다. 청소년들은 실패와 미숙함을 통해 배우며 성장한다. 따라서 교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실패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사랑이란 단순히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랑의 실천이다.
자치란 청소년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사가 적절히 개입하며 동행하는 과정이다. 이 경험은 교사로서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청소년 교육의 본질은 적절한 지도를 통해 그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