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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가? 분노인가?

고민하는 길잡이교사 (5)

by 교육혁신가 이현우

길잡이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항상 아이들을 사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에, 솔직히 때로는 미워하는 마음도 생긴다. 이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통제하려 드는 걸 경계해야 한다. 그건 위선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 교사의 행동은 통제가 되어버린다. 아이들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행동으로 변질된다. 사랑하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순간이 있다. 내게는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은하수학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면서 나는 은하수학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은하수학교의 가치를 지키고 전승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 의무감이 나를 얼마나 좁은 시야로 만들었는지는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나는 정의의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칼을 들이댔다.


5기 새출발워크숍을 준비하며 ‘공동선언식’을 기획할 때 생긴 일이다. 공동선언식은 은하수 청소년과 길잡이교사가 각각 선언문을 읽으며 한해살이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이 자리는 교육감님도 참여해 함께 선언문을 전달 받을 예정이었기에 행사의 무게감이 더해졌다.


청소년 선언문을 낭독할 아이들을 선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대에 오르고 싶은 아이들은 많았지만, 무대 공간과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모두가 참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길잡이교사와 운영지원팀은 신중하게 논의했다. 희망자를 조사한 결과, 총 20명이 자원했다. 무대에는 10명 정도 밖에 못 올라가는 조정이 필요했다. 인원을 확정하고 리허설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논의 끝에 새로운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5기에 새로 온 청소년들이 새로운 5기의 문을 여는 무대에 서는 것이 새출발워크숍의 의미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존 청소년들이 무대에 선 경험이 많았기에 새로 온 청소년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어퍼머티브 액션, 즉 적극적 우대조치를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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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규 청소년 중에서 선언문 낭독자를 모집했고, 적절한 인원이 모였다. 그런데 문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당일 리허설 도중 한 청소년이 무대 앞으로 찾아왔다.


“선생님, 왜 새로 온 애들만 시켜줘요? 나도 하고 싶었는데!”


그 청소년은 화가 나 있었다. 기존 청소년에게 신청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일단 그를 진정시키고 자리로 돌려보냈다.


속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리허설 무대 앞까지 찾아와서 본인의 입장만 늘어놓을 일인가. 5년 동안 은하수에서 활동한 청소년이 함께함의 가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이미 수차례 무대를 경험했기에, 마지막 활동에서 양보를 해주기를 바랐다. 그날, 돌아가는 길에 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오늘 네 행동에 실망했다. 그동안 무대를 그렇게 많이 섰으면서 왜 이번에는 양보하지 않니? 네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거야.”


말을 마치자 청소년이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저한테 화나셨어요?”


그 질문에 나는 화난 게 아니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돌아보니 화난 게 맞았다. 비폭력 대화를 수없이 연습했던 내가, 정작 비폭력 대화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너무 미안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고민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차갑고 무자비한 칼이 된다. 질서를 명분으로 혼돈에 칼을 들이대는 태도로는 청소년을 사랑할 수 없다. 애리히 프롬이 말했듯, 사랑은 결단이고 약속이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결단이다. 청소년을 온전히 사랑하기란 결고 쉽지 않은 일이다.


화내기와 혼내기는 다르다. 화내기는 내 욕구를 분출하는 것이고, 혼내는 것은 존중이 기반되어 있다. 우리는 혼을 내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내가 너무 교육이라는 틀 속에서 애들을 가두려고 하지는 않았나 돌아보았다.


사랑은 분노를 잠재우고,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그 다리가 무너지는 순간, 길잡이교사는 더 이상 아이들의 편에 설 수 없다. 이는 실패한 길잡이교사의 고백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분노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했고, 때로는 사랑보다 분노를 앞세웠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사랑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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