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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하는 교사 공동체

고민하는 길잡이교사 (3)

by 교육혁신가 이현우

청소년을 지원하는 길잡이교사의 역할은 단순히 지도와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존중하면서도, 적절한 시점에 개입해 방향을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고, 언제 방임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했다. 특히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길잡이교사로 활동을 시작한 청년 교사들은 이러한 경계에서 혼란을 겪었다. 이들은 자신이 교사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청소년과의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고군분투했다.


내가 이런 고민을 공유했던 동료들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명확한 지침이 없는 문제에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우리는 개별적인 고민을 넘어서, 교사로서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발전시키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 속에서 ‘학습 조직’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길잡이교사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배움과 성장을 도모하는 모임을 기획했다.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첫 시도였다.


하지만 길잡이학습공동체를 현실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기획하고 조직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임의 구체적인 목적과 운영 방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계획서를 작성했고, 운영지원팀의 도움을 받아 예산을 확보하고 장소를 마련했다. 홍보와 모집을 통해 참여자를 모았다. 최종적으로 10명 남짓한 인원이 모임에 합류했다. 대부분 신규 청년 교사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민과 열정을 품고 있었다.


길잡이학습공동체는 매월 1회씩 '주제별 토론회'를 개최했다. '길잡이교사의 정체성', '서클과 민주적 소통', '참여와 출석 활성화', '관계 형성과 갈등관리'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전체 길잡이교사를 대상으로 참여 기회를 열었다. 모두가 직면하고 고민하던 문제였기 때문에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각자의 고민을 공유하면서, 우리 모두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접근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성공 사례뿐만 아니라 실패 사례를 나누며 배운 점은 매우 유의미했다. 단순히 추상적인 토론에서 그치지 않고 서클 2.0을 개발해 청소년자치회 자체평가 회의를 지원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1690643279071.jpg?type=w3840 주제별 정기 토론회


수도권 자치배움터 공동 연수에 참여해 은하수학교의 사례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의 배움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눔과 환류가 필요하다. 이 자리에서 다른 자치배움터와 지혜를 나누고 연계를 도모했다. 길잡이교사로서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비슷한 길을 가는 이들과 서로 연결되고 뭉친다는 큰 힘이 된다. 이렇게 매년 서로의 이야기를 풀고, 고민을 나누는 게 참 좋다. 그리고 이 열기는 전국 단위이 자치배움터 컨퍼런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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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활동을 기반으로 학습 자료를 정리하고 ‘길잡이학습공동체 자료집’을 발간하며 우리의 기록을 남겼다. 두 달 가까이 편집한 끝에 겨우 완성했다. 기록은 미래로 연결되는 열쇠다. 우리끼리의 성장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 길잡이교사에게 우리의 고민과 지혜가 연결되길 바란다.

%EA%B8%B8%ED%95%99%EA%B3%B5.png?type=w966 길잡이학습공동체 자료집


길잡이학습공동체의 가장 큰 의의는 교사들의 주도성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모임의 모든 과정은 교사들이 직접 계획하고 실행했다.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특히, 서클 프로세스 2.0을 개발하며 자치 회의 운영 방식을 개선한 성과는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는 길잡이교사가 단순히 청소년을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 자치 활동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길잡이학습공동체는 교사 간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실천했다. 개별적으로는 막막했던 문제들도, 함께 모여 고민하고 토론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교사들 각자가 가진 주도성을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교사가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이 곧 청소년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청소년들은 교사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지침을 주며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모습을 통해 깊은 신뢰를 느낀다. 교사의 역할은 단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며, 청소년에게 진정성 있는 사랑과 관심을 전달하는 존재가 된다.


교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길잡이학습공동체와 같은 자발적 학습 모임이 필요하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자신만의 철학과 방식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한, 청소년과 교사가 함께 성장하는 은하수학교의 철학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길잡이학습공동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교사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를 이끌며, 청소년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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