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810m에서의 항해

반짝반짝 빛나는 길, #11 Titikaka 호수

by 일로나

코파카바나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던 날 아침에 태양의 섬 투어를 떠났다. 선착장에서 8시에 출발한다던 배는 8시 반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남미에서 30분 지연은 양호한 편이다. 작은 보트에 나를 포함해 열네댓 명 정도의 여행객이 탔다. 이 보트는 다른 섬으로 가는 운송수단이기도 한데 현지인들은 없었다. 아마도 어제 밤새 마시고 노느라 모두 뻗어있을게 뻔했다. 보트는 시원하게 호수를 달렸다. 처음에 강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엔 바다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멀리 보면 잔잔한 호수처럼 보이지만 보트가 지나가며 물결을 일으킬 때는 강이나 바다처럼 약한 파도가 치기도 했다. 날씨마저도 좋아 잔잔한 물결이 보석처럼 빛나고 신선한 공기가 스쳐갔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호수라니... 그 호수에서 내가 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니 새삼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보트를 타고 한참을 달리니 태양이 뜨거워졌다. 그늘이 절실했지만 선크림을 덧 바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갑자기 몇 명의 젊은 남자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즐겁고 더 낭만적인 항해가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정박지인 남쪽 섬에 도착했다. 여기도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정겨운 다랭이 밭들이 차곡차곡 산꼭대기까지 이어졌다. 산꼭대기에 호텔들도 있었다. 그리고 태양의 섬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어서 여기에서 내려서 태양의 섬까지 트레킹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대로 태양의 섬에서 이곳으로 와서 코파카바나로 나가는 배를 타고 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선착장 옆 호수가 쪽으로 무분별하게 지어지고 있는 호스텔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후면 여기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호스텔들이 즐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MG_4337.JPG
IMG_4363.JPG


보트는 두어 군데 마을을 더 들렀다가 태양의 섬에 도착해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거기에는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서 마을을 구경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태양의 섬은 국가지정 자연공원(?)이어서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했다.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무슨 유적지 같은 마을도 나왔는데 거기도 입장료를 받았다. 두 번 정도 입장료를 내었던 것 같다. 비싼 가격도 아니었고 유적지 유지와 일하는 현지인들을 위한 비용이라고 하니 아깝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좋은 트레킹 코스였다. 힘들지도 않았고 자연경관은 수려했으며 사람들은 친절했다. 마을을 지나서 걸어가다 보니 호수가가 무슨 해변처럼 펼쳐졌다. 순간 바닷가 해변의 캠핑장 같아 보였는데, 이곳에 캠핑 온 사람들의 텐트가 어지러이 쳐져있었다. 캠핑 장소로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 낮엔 뜨겁겠지만 밤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IMG_4427.JPG


태양의 섬은 볼거리가 솔솔찮게 많았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바라본 호수의 전체 배경은 너무도 멋졌다. 호수로 둘러싸인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산 정상에는 돌로 쌓은 유적지가 있었고(마추픽추에서 본 돌집 모양과 비슷했다.)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신단 비슷한 곳도 있었다. 그곳에 동전을 놓고 소원을 빌라고 했다. 정상 주변으로 크고 작은 돌탑들이 보였다. 여기 사람들도 돌탑을 쌓아놓고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나도 돌탑에 작은 돌을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IMG_4525.JPG
IMG_4604.JPG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설명을 해주던 가이드가 이제 좀 쉬라며 자유 시간을 주었다. 이곳에선 단체 여행이라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절대 재촉하는 법도 없어서 좋았다. 사람들은 간식을 먹으며 넋을 놓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태양이 뜨거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유로움과 자연의 신비와 상쾌한 공기가 한데 어우러진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태양의 섬은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고 했다. 여기 정상에서 남쪽 섬 정상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있단다. 보트에서부터 동행했던 영국인 부부는 트레킹으로 남쪽 섬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서 보트를 타고 코파카바나로 나갈 수 있는데 아마 시간 상으로 같은 보트를 타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그 커플은 아무도 안 가는 길을 둘이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엄청난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길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모르는 위험을 생각해야 하고 저 영국인 부부와 동행하기엔 내가 너무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단호히 단념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보지 못했던 것은 아직도 아쉽다.)


IMG_4549.JPG
IMG_4553.JPG


태양의 섬을 둘러보고 다시 보트를 타고 남쪽 섬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선착장 쪽에 호스텔과 레스토랑, 카페도 있어서 여유롭게 쉴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면 자연경관을 해치고 환경오염이 될 것이기에 염려스럽다. 선착장에서 곧바로 보이는 곳에 108계단 보다 더 많아 보이는 돌계단이 정상까지 놓여 있었다. 돌계단을 올라가며 뒤돌아 본 경치 또한 예술이었다. 티티카카 호수는 마법 같았다. 어디를 보아도 아름다운 호수 배경이 펼쳐져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남쪽 섬에서 한 시간 가량 시간을 보내고 다시 보트를 타고 코파카바나로 돌아왔다. 코파카바나에 돌아와서도 아직 반나절이나 남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시간은 더디게 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느낀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것이다. 코파카바나에서도 배낭 여행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모두 잠깐씩이었다. 숙소를 호스텔이 아닌 호텔로 잡아서 더욱 누군가와 함께 동행하거나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 태양의 섬에 다녀오고 나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오후 버스를 타고 라파즈로 출발할걸 그랬다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릴없이 호수가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또 송어구이와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IMG_4384.JPG
IMG_4542.JPG


keyword
이전 10화하필이면 축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