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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May 18. 2021

빙하 위에서 한 마리 펭귄이 되어

외로운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7 엘 칼라파테(El calafate)

엘 찰텐에서 엘 칼라파테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중간에 풍경들이 예뻐서 잠자기 아까운 시간이었으나 새벽에 일찍 일어난 탓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자꾸 머리가 앞 뒤 옆으로 곤두박질쳤다. 내가 탄 미니밴은 엘 칼라파테 공항을 거쳐서 3시간 반 후에 나를 엘 칼라파테 숙소 앞에 정확하게 내려주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America del sur 호스텔에 예약할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다. 아메리카 델수르 호스텔은 남미 체인 호스텔인데, 호스텔의 분위기나 직원들의 서비스, 청결도가 높은 편이어서 유명한 호스텔이다. 엘 칼라파테의 America del sur 호스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의 원목 하우스였다. 높은 천장과 큰 창을 가진 로비에 바 겸 식당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호스텔에서 쉴 틈도 없이 배낭을 방에 던져두고 바로 나왔다. 버스터미널로 가서 내일모레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떠날 버스표를 먼저 사둬야 했기 때문이다. 넓고 휑한 도로를 지나 한참을 걸어갔더니 버스터미널이 나왔다. 버스표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시간은 6시가 다 되었는데 아직 태양은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엘 칼라파테는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라서 어디든 다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숙소 뒤쪽에 눈에 보이는 큰 호수까지 걸어가기엔 너무 멀어 보여 포기했다. 우선 시내로 걸어갔다. 먼저 내일 떠날 빙하 트레킹 예약을 확인하러 빙하 트레킹 사무실에 들렀다. 직원들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여권을 보여줬더니 내 바우쳐를 인쇄해서 챙겨주었다. 숙소와 내일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나왔다. 좀 이른 시간인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한다지만 숙소 앞으로 픽업을 온다니 별 걱정이 없었다.



엘 칼라파테 시내는 깔끔하고 예쁜 가게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높은 회색 건물이 없어서 좋았다. 모두 뾰족뾰족한 지붕을 이고 있는 나무집들이다. 빙하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는 가게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기에 패스. 저녁을 먹을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루프탑을 갖춘 힙한 맥주집들도 보였고, 큰 창을 가진 멋진 레스토랑도 보였다. 그 가운데 깔끔하고 뭔지 모르지만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빈 테이블도 더러 있었고, 바가 눈에 띄어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웨이터가 테이블에 앉아도 된다고 했지만 바에 앉겠다고 했다. 혼자인 나는 바에 앉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바에 앉는 것을 선호한다. 식당 구석에 통바비큐가 돌아가고 있었다. 굴뚝으로 연기가 나던 이유였다. 엘 칼라파테는 양고기나 소고기가 맛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그러나 나는 며칠째 소고기를 먹어서 더 이상 고기는 먹고 싶지 않았다. 눈 앞에서 바비큐가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생선을 주문했다. 송어구이가 먹고 싶어 주문했지만, 바비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고 웨이터가 바비큐 옆에서 구운 채소 메뉴가 있다고 말해 줬다. 그래 고기를 못 먹으니 구운 채소라도 먹자 싶어 함께 주문했다. 차려진 음식을 보니 오랜만에 만찬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와인 두 잔과 함께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나니 웨이터가 서비스 술 한잔을 주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 허브와 론으로 자기가 직접 담근 술이라며 한 잔 내밀었다. 우리나라의 약술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맛있다며 잘 마시니까 그가 한 잔 더 주었다. 덕분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시곗바늘은 분명 10시를 향해 가는데 밖은 환했다. 낮술을 마신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아직 백야를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백야를 맞이하는 느낌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흐뭇한 기분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엘 칼라파테는 혼자 걸어도 전혀 위험이 느껴지지 않는 남미에서 몇 안 되는 안전한 도시였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호스텔 로비 겸 바에서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다. 6시에 일어나 여유롭게 준비하고 아침도 아주 푸짐하게 많이 먹었다. 거의 8시가 다 되었을 때 버스기사가 와서 아주 힘든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하마터면 못 알아들을 뻔했다. 다행히도 카운터의 직원이 나를 보며 손짓을 해주어서 마시던 커피도 그대로 내려두고 가방을 들쳐 메고 입구로 나갔다. 호스텔에서 빙하 트레킹 가는 팀이 몇 있었지만 나와 같은 버스에 타는 사람은 없었다.


작은 버스에 사람들이 빼곡히 타고 있었다. 미니 트레킹이라서 작은 버스로 가나 보다 하고 약간 실망을 했다. 그러나 버스는 강가로 달려 두어 군데 호텔을 더 들러 사람들을 태우고 나서 큰 길가에 세워진 큰 버스 옆에 세우더니 큰 버스로 갈아타라고 했다. 큰 버스에도 사람들이 조금 있었으나 다행히 앞쪽에 자리가 남아 있어서 나는 버스 앞쪽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20대 이후로 버스에 타면 웬만하면 앞쪽에 탄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이다. 버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우르르 올라타더니 버스는 곧 만석이 되어 출발하였다. 가이드라는 사람이 신나게 인사했다. 그리고 영어와 스페인어로 계속 떠들었다. 창 밖으로 멀리 설산이 보였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있는 곳, 보이는 것들은 여전히 비현실적이었다. 


버스는 곧 빙하 국립공원에 도착하였고, 입장료를 내었다. 2개 종류의 입장료를 내었는데 국적도 말해야 했다.

"꼬레아나"라고 내가 국적을 말했더니 가이드가 웃으며 되물었다. 

"아, 꼬레아나? 께 부에노!(아, 한국인이야? 좋아!)"

뭐가 좋다는 지는 모르겠지만, 남미에서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모두 관대하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아마도 k-pop이니 영화니 드라마들이 유명해져서 예전보다 한국이 많이 알려져서 일거라고 믿는다. 더불어 한국의 국격과 위상이 높아졌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남미 여행하면서 돈을 펑펑 써대는 사람들 덕분일 거라는 의심도 있다. 



버스는 먼저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보이는 전망대를 지나서 선착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배로 갈아타고 빙하를 향해 달렸다. 배는 빙하 가까이에 가서 한참을 머물렀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소리도 지르고, 빙하가 깨지는 소리도 들었다. 다시 배를 돌려 돌아가는 듯하더니 빙하와 가까운 돌산 같은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그곳에는 산장 같은 시설이 있었고, 거기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빙하를 향해서 얼마간의 숲길을 줄지어 이동했다. 장갑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나는 장갑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산장에서 여분의 장갑을 제공해 주었고, 심히 불결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껴야 했다. 



빙하 입구에서는 또 다른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빙하 트레킹 전문 가이드였다. 대장과 부대장 같은 포스를 뿜 뿜 풍기는 두 사람은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빙하 위에서 주의할 것을 당부 또 당부하였다. 그들의 행동에서 안전사고에 대한 불감증은 없어 보여서 좋았다. 사람들은 빙하 앞에서 어린아이 마냥 즐겁고 신나 보였다. 이렇게 들뜬 사람들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안전 장비는 아이젠과 장갑 외에는 없었다. 오로지 가이드만 의지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의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한지 표정과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아이젠을 신고 빙하 위를 걷는 느낌이 너무도 신기했다. 얼음산을 밟고 넘으며 발밑에서 사각거리며 사그라드는 얼음을 느꼈다. 얼음산 사이로 만들어진 골짜기에는 짙은 비취색 빙하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일렬로 줄을 지어 천천히 가이드를 따라 움직였다. 뒤에서 줄줄이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펭귄과 닮아 보였다. 더군다나 나는 팔(八) 자 걸음이라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정말 한 마리의 펭귄이 되어 빙하 위를 배회하였다. 처음엔 흙과 먼지로 지저분한 빙하가 보여서 약간의 실망을 했지만 얼음산으로 된 고개를 넘으면 넘을수록 다른 이들이 밟지 않은 깨끗한 빙하도 밟아 볼 수 있었다. 



1877년에 프란시스코 파스카시오 모레노가 발견하여 모레노라는 이름이 붙여진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더군다나 3~4년에 한 번씩은 크게 파열된다고 한다. 그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우리가 얼음산위를 걷고 있는 동안에도 가끔씩 얼음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물결의 파장은 아주 크게 일어났다. 이 빙하는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빙하 언덕을 올라가고 올라가도 또 다른 얼음산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하늘과 맞닿은 듯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가이드는 중간중간 설명을 했지만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얼핏 모레노 빙하의 면적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만 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빙하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가이드를 따라 줄을 지어 다니며 빙하 위를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었던 것 같았다. 가이드는 우리를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안전하게 손을 잡아주며 빙하 속에서 녹아가고 있는 빙하의 속살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가 밟고 지나가는 중에도 빙하 아래에서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아이젠으로 인해 걷는 것이 조금 힘들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가이드는 거의 다 왔다고 했다. 그리고 바가지로 얼음을 퍼와서는 위스키 잔에 붓고 위스키를 한 잔씩 돌렸다. 봉봉 초콜릿과 함께. 사실 위스키 맛은 끔찍했지만 기분은 안데스 산맥의 깊은 산속에서 한 잔 하는 기분이었다. 



위스키 한 잔에 사람들은 더 신이 난 듯했다. 우리는 다시 일렬로 줄을 지어 무사히 빙하에서 내려왔다. 내려와서 모두 서로에게 감사 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빙하에서 내내 나에게 사진을 찍어준 고마운 커플이 있었다. 나도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지만 혼자 온 나를 많이 배려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가이드는 빙하에서 내려와서 우리를 빙하 동굴로 안내해 주었다. 신기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산장 근처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점심시간을 가졌다. 점심을 먹고 다시 빙하를 바라보며 바람을 쐬었다. 여유로운 자유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큰 바위 언덕에 올라가서 다시 빙하를 마주 보고 앉았다.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신청한 코스는 미니 트레킹이었다. 사실 가격도 비싸고 후기가 좋지 않아서 망설이긴 했지만 빙하 위를 걸어 다니면서 든 생각은, 신청하길 잘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다. 1월은 성수기라서 가격이 더 비싸다고 했지만 사실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되었다. 미니 트레킹 프로그램은 빙하 트레킹뿐만 아니라 전망대에서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전망대에서 보는 빙하는 그 위를 걷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상하기에는 좋았다. 숙소에 돌아오니 거의 6시가 다 되었다. 말은 미니 트레킹이지만 하루 종일 걸린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아주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이었다.




숙소에서 피곤한 몸을 좀 뉘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짐 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앞 침대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미니 트레킹 이야기를 잠깐 하고 있는데,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여자가 부스럭거려서 우리는 같이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9시 가까운 시간인데 아직도 대낮 같이 환했다. 우리는 시내를 좀 걷다가 맥주집에 들어갔다. 닭고기와 맥주로 간단히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브라질인이라고 했다. 이상하게 난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브라질 사람을 자주 알게 된다. 그녀는 간호사라고 했다. 휴가차 파타고니아에 왔고 내일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보러 떠난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여행 이야기를 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11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어두워졌다. 나는 숙소 식당에서 혼자 맥주를 한 잔 더 했다. 바 옆에는 작은 무대가 만들어져서 어디서 왔는지 가수들이 노래를 했다. 순식간에 라이브 카페가 되었다. 


밖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래도 멀리 호수가 보이고 설산이 보이는 듯했다. 가수가 '베사메 무쵸'를 쓸쓸하게 불렀다. 노곤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되어 나는 또 비현실적인 현실을 경험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주 구글 지도를 꺼내서 확인해야 했다. 지도상에서의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서야 내가 존재하고 있음이 느껴져 안심이 되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짧고 깊은 잠을 잤다. 아침 일찍 떠나는 버스를 예매했기에 일찍 일어나 서둘러야했다. 6시쯤 일어나 숙소 주변을 한번 더 산책했다. 떠오르는 해를 볼 수는 없었지만 호수 주변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든 모습을 보았다. 주황색이라니... 온 세상이 주황색이 되는 모습은 난생 처음이라 감격 그 자체였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세상 풍경을 혼자서 봐야 한다니 새삼 외로워졌고 급기야 남미로 떠나오기 훨씬 전에 헤어진 그 사람이 그리워졌다. 아마 이때부터였나보다. 불쑥불쑥 그리움이 쏟구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비현실적인 풍경을 볼 때마다 그 사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외로움이 파타고니아 바람처럼 불어와 더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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