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서 벗어나기

끊기 #1

by 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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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의 TV는 항상 켜져 있었다. 물론 너무 심하게 계속 켜져 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시간에는 거의 켜져 있었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이유도 분명 있었다. 날씨를 알아야 되고, 뉴스를 들어야 된다. 지금처럼 간단히 그런 정보들을 알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그런 시대의 필요에 대한 연장선상일 순 있지만, TV와의 인연은 꽤나 질기고 오래되었다. 대학 시절 하숙을 하며 가만히 혼자 있는 걸 못 참았다. 조용히 홀로 있으면 좀이 쑤셨다. 사실 외롭다는 느낌보다는 재밌는 게 하고 싶었고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깊게 생각하는 시간은 철저히 금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사는 게 틀렸다는 걸. 그렇기에 철저히 더 멀리했다. 조금이라도 혼자 있게 되면 꼭 TV를 틀어놓았다. 하숙방엔 TV가 없으니 예능이나 드라마를 인터넷에서 받아서 틀어놓았다. 누군가는 내 앞에서 떠들고 시끄럽게 소리 내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그게 없으면 오히려 너무 불안했다. 불안을 회피하지 않으면 또 더 불안해지더라. 이 모든 걸 이제야 돌이켜보니 외로움의 문제라기보다는 중독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중독된 사람의 뇌가 약물의 효과를 중화시킴으로써 적응할 때 사용자가 약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뇌는 결핍 상태에 빠진다. 도파민 분비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면, 도파민 결핍은 불쾌한 느낌을 초래한다. 정상 생활은 따분한 것으로 변하며, 약물이 없으면 심지어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약물 말고는 이제 그 어떤 것도 즐겁지 않다. 중독된 사람은 금단 상태에 빠지는데, 그것은 뇌가 기본값 상태로 되돌아가기까지 약물 없이 충분히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때에만 사라진다.

“불안 세대”라는 책의 한 부분이다. 사실 나의 불안을 위해 관심이 갔던 책이지만, “모든 부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요한 하리의 추천사를 보고는 꼭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중독과 도파민의 결핍 부분을 통해 그동안 나의 불안이나 공허감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었다. 지속적인 술 약속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 줄어들었을 때의 설명하기 힘든 공허함과 불안감에 짓눌려 홀로 힘들었던 지난날이 도파민의 결핍이란 간단한 단어로 설명되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매일 누가 날 찾는 게 그리 정상적인 생활은 아닐 텐데 오히려 그런 날이 따분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이미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던 듯하다. 뇌가 기본값 상태로 되돌아가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린다는 만큼, 지금 나도 완전한 정상의 나로 돌아오기까지는 거의 2년이 세월이 걸린 듯하다. 사실 도파민 범벅이었던 그 생활이 정상이 아니란 걸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렇게 가정보다는 회사를, 무료함보다는 자극을, 밥보다는 술을 더 찾으며 결국에는 어느 순간 회사에서도, 내 일상에서도, 가정에서도 거부받는 슬픈 아저씨가 될 게 뻔했다. 변해야만 했다. 하지만 알고도 변하는 게 그리 쉽진 않았다. 하루하루가 아니라 매시간 시간 감정의 그래프가 요동쳤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나름 돈독했던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조차 거의 연락이 없는 게 서운하기도, 주변 대부분이 회사에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상황에서 나만 나와 혼자서 다른 시도를 하는 게 더욱더 불안해지기만 했다. 혼자서라도 술을 마실 방법을 궁리해 보기도,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다른 자극을 찾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결국 자연스럽게 모든 게 해결되더라. 이젠 오히려 술을 마시기가 싫어졌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과 커피 한잔하자고 스스로 먼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자극보다는 스스로 가지는 평온함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모두가 핸드폰이나 패드로 영상을 보기 때문에 TV가 필요 없다는 이유가 아니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TV를 켜놓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다. 멍하니 TV를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제거하였다. 우리 가족은 좀 더 서로 이야기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난 훨씬 더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 잔뜩 TV에 취해 잠들고,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살고 있는 에 대한 불안감도 없어졌다. 내 인생에 이제 TV는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많이 돌고 돌아서 드디어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 재미가 예전의 뭔가 재밌는, 새로운 것만 찾던 시절보다는 훨씬 재밌다. 커피를 한잔 하며 맛의 차이를 느끼는 재미,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재미, 내 일에 몰입하는 재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재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개운한 재미, 정돈된 내 삶을 즐기는 이 재미. 아마 도파민으로 절여진 그때가 각종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 자극적인 요리였다면, 지금은 은은하며 깊은 맛을 내는 장인의 요리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먹고 나서 속도 아프지 않은 그런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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