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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Nov 29. 2021

MBTI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우리

ESTJ와 INFP의 닿을 수 없는 평행선

Mbti는 과학이다. 어디 허접하게 과학적 근거라곤 없는 혈액형이니 별자리니 따위랑 엮일 게 아니다. 서른 넘어 갖게 된 신념 중 하나다. MBTI... is Science...


Mbti를 알게 된 뒤, 이전에는 설명되지 않던 수많은 삶의 궁금증들이 해소 되었다. 쟤는 왜 저렇게 아무 의미도 없어보이는 내면의 소리 같은 거에 집중하나? 저 사람은 앞담을 까면 몰라 누가 지 뒷담 좀 깟다고 저렇게 시무룩할 일인가? 이 친구는 갑자기 “한라산까지 트월킹 하고 올라가기 vs 설악산에서 비료포대 타고 내려오기 중에 뭐가 더 어려울 것 같아?” 같이 이상한 질문을 왜 하는가?


그 모든 궁금증의 답이 mbti와 연결돼 있었다. 덕분에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쟤는 이상한 게 아니라 그저 나랑 mbti가 달라서 저렇구나… 쟤는 저 상황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렇게 세상의 '이상한 사람'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는 Mbti를 통해 차이를 받아들이는 어른으로 성장한 셈이다.


며칠 전 일이다. 오랜 친구 infp와 만났다. 어린 시절에는 “쟤는 왜 만나기만 하면 재밋어질때쯤 집에 가지? 내가 싫나?”라고 생각했지만 mbti를 알게 된 후에는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infp는 사람과 대화하면 방전이 되었다. 방전을 무릅쓰고 나를 만나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느껴져 고마웠다. 물론 그녀도 mbti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야 나의 삭막한 잔소리가 전부 애정에 기반한 것임을 깨달았고, 내가 지하철 탑승시 환승구간에 가까운 플랫폼을 계산하는 것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런 infp는 얼마 전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상대방과는 갠톡을 해보기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를 생각하며 쓴 일기장만 수권이라고 했다.


짝사랑의 최종 목표는 상대방의 애정을 손에 넣는 것일 터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그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내 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둘만의 자리를 자꾸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일기는 보여줄 거 아니고서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일방적인 감정을 최대한 빨리 상호교류의 감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눈에 띌 정도의 플러팅은 필수였다.


infp의 행동은 내 생각과 정반대였다. 함께 앉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웃기지 않은데도 깔깔 웃어주면서, 짝사랑 상대의 말에는 정색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고 했다(대신 귀는 쫑긋 세우고). 짝사랑 상대가 단톡에 하는 말에는 대꾸조차 안 했다(실제로는 그 톡을 보고 웃으면서). 그러고 일기를 줄줄 썼다. infp는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시인이었고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암살자였다.


Infp: 아마 그사람은 내가 자기를 엄청 싫어하는 줄 알 거야ㅠㅠㅠㅠㅠㅠ난 좆 됐어ㅠㅠㅠㅠ

Estj: ???그럼 티 내… 눈을 마주치고 웃고 은근히 스킨십을 하고 단톡에서 반응하다가 은근슬쩍 공통점 찾아서 갠톡을 유도하라고!!!!

Infp: 아냐… 알아채면 안 돼... 난 좆 됐어….

Estj: 아니 이 연애의 프로세스가 있잖아, 너 지금 맨 첫단계에서 시작도 안 된 거잖어!! 이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깨나가야지!

Infp: 야 여기서도 프로세스야?ㅠㅠㅠㅋㅋㅋㅋㅋㅋ아주 타임테이블을 짜주지 그러냐ㅠㅠㅠㅠ난 못 한다고ㅠㅠㅠㅠ


진짜로 겐트차트 그려서 ppt 띄우고 이 전략대로 가야 하는 근거 대면서 잔소리를 퍼붓고 싶었다. 야 나는 옛날에 황과장이랑 연애 할 때… 라는 말로 시작하는 라떼 타령도 하고 싶었다. 외적인 스펙(학벌, 전공, 직장, 고향, 직급, 종교 등등)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다. "부모님은 뭐 하신대?" 내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 있던 infp는 “그 사람은 말을 할 때 시적인 표현을 많이 써”라고 동시에 말했다. infp는 모든 게 너무나 감성깊었고 나는 모든 게 너무나 세속적이었다. 우리는 이만큼이나 달랐다.


서로의 차이에 한참 웃다가, 나는 최악의 시어머니가 될 게 분명하다고 말했는데, infp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내 아들이 미래에 데려올 여자가 너무 착하고 사랑스러운데 머리 텅텅 vs 박색에 싸가지없는데 완전 부잣집 딸 이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엇다. 아직 애가 태어나지도 않았기에 그런 상상은 살면서 해 본 적이 없었고 실제로 실현 가능성도 낮아 보였지만 내 답변을 기다리는 infp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ㅈㅔ..발….


사실 mbti를 알고 있는 우리는 이미 이 짝사랑의 결말도 알고 있었다. Infp는 금사빠였다. 그녀는 짝사랑 상대가 짝사랑 상대가 아니게 된 순간 마음이 짜게 식을 것이었다. 차라리 짝사랑일 때가 나을 수도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계속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짝사랑의 감성을 즐긴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갔지만 그래도 infp 친구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ok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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