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연 동생이다. 내겐 동생이 곧 일상, 일상이 곧 동생이니까. 어떻게 동생과 그렇게 붙어 있냐고? 사이가 좋은 거냐고? 태어날 때부터 주종 관계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종, 동생은 주. ꉂꉂ(ᵔᗜᵔ*)
머리채 잡힌 (누)나
동생의 병은 아주 희귀한 병이다. 미토콘드리아 근병증. 같은 병이어도 어떤 사람은 걸어 다니고 말도 다 하는데 동생처럼 의사소통은커녕 걷거나, 듣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평범하게 살다가 발현되는 경우도 있고, 동생처럼 태어나자마자 병을 알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은 곧, 이 병엔 답도 없고 예시도 없다는 말이다. 엄마는 미토콘드리아 근병증 학회에 가서 처음 혼자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같은 병인데도 여기 모인 아이들마다 증상이 다 다른 거지? 아, 나는 누군가에게 병에 대해 물을 수도 없겠구나. 모든 게 내 몫이구나."
나였다면 벽을 만났을 때 가장 하기 쉬운 선택인 '좌절'을 했을 거다. 몸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을 놔버리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안다. 좌절 끝에 가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기다리고, 나는 흩어지는 미세한 좌절을 또 맛볼 뿐이라는 걸.
다행히 강인한 우리 엄마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지금 어두컴컴한 곳에 있어 빛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걸어가기로. 사실 엄마는 혼자 걷는 줄 알았을 거다. 하지만 주변을 밝힐 수 있었다면, 그 옆에 아빠와 오빠, 나, 동생 자신, 외가 식구들, 병원에 함께 입원한 엄마들, 바우처 이모, 내 아이의 병을 한국 최초로 연구하겠다고 다짐한 주치의 선생님과 의료진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겠지? • ᴗ •̥ ˳ ˳
진짜 무서운 성장은 내가 크는 줄 모르고 살다가 내가 큰 사람이라는 걸 어느 순간 자각하는 형태일 것이다. 걷다 보면, 자고 일어나 보면, 우리는 조금씩 변해 있다. 우리가 살면서 그런 사이클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일상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게 곧 자기 인생을 삼킬 줄은 전혀 모른 채로….
하얗게 불태웠던 어느 날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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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의 일상. 여기까지 적은 다음에 그 일상을 어떻게 묘사할까- 생각하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다람쥐 쳇바퀴'다. 매일매일이 똑같아서.자세히 좀 말해볼까? ( ᵕ ᵕ)⁾⁾
새벽까지 동생과 놀면서 엄마가 시키는 잔심부름을 한다. 앉아서 수다를 떨다 보면 엄마가 먼저 잠에 든다. 나도 졸리지만 혼자 남은 동생 생각에 이 악물고 눈을 뜬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 엄마를 깨워놓고 이번엔 내가 잔다. 일어나 보면 어느새 오후가 되어 있고 동생 쪽을 쳐다보니 머리가 불쑥불쑥 올라온다. '아, 언제 깼지? 엄마는 아나?' 엄마를 흔들어 깨워 "쭈니 언제 깼는지 알아?" 다급하게 확인해 보고 엄마도 나도 '진짜' 기상을 한다.
엄마는 동생을 안아 들고 나는 먹을 걸 꺼내온다.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눕히면 2-3시간은 벌 수 있다. 그때 엄마는 집안일을, 나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내 방에서 할 일을 한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앉아 있어도 별 수 없을 땐 거실로 나와 동생 옆에 눕는다. 동생에게 "글이 잘 안 써져, 쭌아. 영감 좀 줘봐"하며 치근덕댄다. 엄마가 오면 엄마와도 수다를 떤다. 수시로 기저귀를 확인하고 약, 밥, 음료를 시간에 맞춰 먹인다. 엄마가 바쁘면 내가, 내가 바쁘면 엄마가 쭈니를 케어한다. 그리고 밤이 된다. 자기 전까지 앞의 일을 계속 반복.
아, 참! 자는 시간은 랜덤. 특별한 이벤트(경기, 오줌 넘침, 변비, 안 돌고 안 먹음, 기침 심한 날, 안 자는 날, 병원 가는 날)들은 별첨.
적고 보니 알겠다. 일상은 매일 같으면서도 매일 다르다. 어째서 '일상'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지루함을 불러일으키는 기구한 운명인지. 일상의 사전적 뜻이 궁금해졌다.
일상: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상이 주는 지루함이 있다면, 일상이 주는 안정감도 있다는 것. 종업원에게 침 튀기며 욕하던 사람도 집에 가선 따듯한 부모로 변하는 것처럼,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으니까.
동생 덕에 나는 안정적인 일상을 산다. 내가 밖에서 친구와 싸우고 들어왔든, 한여름에 다이어트한다고 걷다가 땀범벅이 돼서 왔든, 집에 오면 동생은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다. "쭌아~ 누나 왔다" 말 걸며 동생을 보면 나는 다 잊고 행복해진다. 이만하면 행복한 일상. 흔들리는 배를 타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인생에도 잠깐의 고요는 찾아온다.
많이 예쁜 내 동생
난 일상을 사랑하기로 했다. 반복이 주는 지루함보다 익숙함이 건네는 안정감을 생각하면서. 인생이 흔들린다고 나까지 흔들릴 필요 있을까. 그중에서 안정된 것을 찾아 덜 불안하다, 덜 불안하다- 되뇌며 산다. 흔들리면 더듬더듬 동생에게로 가 일상부터 잘 살아내면 되지.
우리 일상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안정감을 즐기자. 별일 없는 것이 '진짜' 행운일 것이다. 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