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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biya Oct 22. 2023

[3] 누군가의 짧은, 가을 (2)

(3) 상수의 가을 (과거) 


그날도 어김없이 상수와 연희는 10분같은 1시간의 통화를 했다. 통화 내용은 하루하루 다르지 않고, 비슷했는데도 1시간은 꼭 채웠다. 매일 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무리했다. 먼저 피곤해하는 건 연희였다. 연희는 “상수야, 나 피곤스름해.”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통화를 마무리지었다.       

하루의 끝은 연희가 마무리 지었지만 하루의 시작은 부지런한 상수가 했다. 오전 10시, 상수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도 (그 당시엔 베이커리 카페 오전조였나보다.) 화장실 가는 척하며 연희에게 모닝콜을 했다. 연희는 상수의 모닝콜엔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오후 12시쯤 일어나 밥 사진과 ‘너와 함께하면 더 맛있을텐데’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연희는 상수와 세개의 계절을 함께 하면서 혼자 밥을 먹어도 더이상 심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일상을 공유하며 혼자 하고 있지만 혼자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으며 서로를 닮아갔다.      

상수가 집 앞에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다며 연희를 초대했다. 연희는 집에서 버스 타면 금방이라며 데릴러 오겠다는 상수를 극구 말리고, 상수 집에 가는 길 소품샵에 들러 선물을 사서 그의 집으로 향했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상수가 팔을 벌리고 서있었고, 연희는 손에 들린 쇼핑백을 뒤에 숨기고 그에게 안겼다. 상수는 연희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았지만 연희를 위해 모르는 척 해두었다. 상수의 말대로 집으로 가는 길에 천 따라 놓여진 나무에 물이 들어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자연이 만들었지만 상수는 괜히 자신이 준비한 웰컴 선물이 완벽해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나는 꽃보다 단풍이 왜이렇게 예쁠까. 꽃은 질 때 폈을 때의 아름다움을 다 갖고가지 못하는데 단풍은 질때도 분위기 있게 떨어져서 그런걸까? 낙엽은 낭만있잖아.” 

솔톤으로 우와만 하던 연희가 세 음 낮은 톤으로 낙엽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수의 집 앞에 다다르자 좋아하는 사람, 그것도 남자 집에 방문하는 게 처음인 연희는 신발을 벗으면 보이는 양말에 구멍 뚫리진 않았는지, 짝 맞춰서 양말을 잘 신고 왔는지, 엄마가 시장에서 막 사온 양말을 신었나하고 생각했다. 그냥 긴장 투성이었다. 다행히 연희는 무난하고 구멍 뚫리지 않은 흰색 양말을 신고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연희가 좋아하는 가수, ‘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희를 위해 준비한 상수의 낭만이었다. “노래 뭐야~ 준비한거야?” 상수는 어깨를 으쓱했고, 연희에게 집을 안내했다. 상수의 집은 연희를 대하는 지금의 모습처럼 집안 구석구석이 세심했다. 깔끔한 흰색의 벽과 바닥. 거실에 있는 책장엔 10장 정도의 LP판, 전공책과 만화책, 소설책 여러권이 꽂혀 있었고, 그 옆에 턴테이블과 스피커, cd플레이어와 작은 기계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연희는 거실을 둘러보다가 cd플레이어 옆에 있는 작은 기계, 휴대용 카세트와 테이프 뭉치를 보고 멈춰섰다. 

“우와, 이거 네가 모은거야? 이런 카세트가 아직도 있어? 이거 작동 되는거야?” 

상수가 대답하려고 하자, 연희가 무언갈 발견했다.

“엇? 넬 노래 여기서 나오는 거였어? 대박! 테이프가 있어?”

상수의 작전이 성공했다. 

연희가 그 공간에 멈춰설 것임을 연희와 만나는 시간동안 그녀를 파악했던 것이다. 연희의 그런 관심사때문에 마음이 더 커진 것도 맞다. 연희는 상수를 위한 쇼핑백이 신발장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도 모른체 카세트를 만지작 거리며 신기해했다.      

“연희야, 이 카세트 기계 너 가져. 그리고 네가 이걸로 듣고싶은 노래 테이프들도 골라서 가져가”

연희가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상수에게 안겼다. 

“뭐야~ 이거 구하기 힘들었을텐데.. 나 줘도 되는거야?”

“이거 100개 준다고 해도 너랑은 절대 못 바꾸지!” 

“고마워 정말루. 나도 준비한 선물 있어. …근데 어딨지?” 

신발장에 놓여진 쇼핑백을 상수가 들고 왔고, 연희의 턱짓에 상수가 선물을 풀어보았다. 선물은 탁상용 시계였다.      

“우와, 너 우리집에 시계 없는 것 어떻게 알았어?”

“나 이연희야~ 요즘 시계없는 집 많잖아. 휴대폰으로 다 해결되니까.”

“근데 이 턴테이블이랑 너무 잘어울린다. 고마워 연희야. 나 선물 필요 없는데 너무 맘에 든다. 이 공간이 이제서야 완성이 됐네.”

상수가 턴테이블 옆에 시계를 놓아 그 공간을 완성시켰다.      

“시계는 매일 보잖아. 시계 볼 때마다 내 생각하라구!” 

“시계 안봐도 너 생각은 매일 하는걸?” 

나뭇잎이 붉게 물드는 이유가 이과적으로 분명 있지만 문과적으로 보면 이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부끄러워서일 것이다.      

“아무튼 골라봐. 연희야. 이 카세트로 듣고싶은 노래. 넬은 당연히 챙길거고~”

“음.. 다 쉽게 구할 수 없는 테이프라 고르기 어려운데.. 상수야 네가 추천해줘!” 

“내가 진짜 아끼는 테이프긴 한데.. 아끼는 거라 너한테 꼭 주고 싶어. 이거.”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이 노래잖아!”

상수가 집어든 테이프는 연희도 집을까 말까 망설였던 김연우의 2집 테이프였다. 그 당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별 택시’를 불러서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정도는 알고 있었던 연희였다.      

“이 노래, 1번 트랙부터 들으면 그 노래가 얼마나 슬픈지 알 수 있을걸?” 

“왜?”

“누군가의 사랑 처음부터 끝까지가 다 담겨있거든.” 

“그래? 지금 들어보자!” 

“이거 이제 너꺼니까 네가 듣고싶으면 듣는거지! 일단 되감기부터 해볼게!” 

능숙하게 테이프를 넣고, 되감기를 해서 1번 트랙부터 들을 수 있게하는 전 주인 상수. 

상수는 카세트를 들고, 연희를 쇼파 쪽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쇼파에 등을 기대고, 어깨는 서로에게 기댄채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가 잘 들리지 않고, 멜로디만 귀에 들리는 연희는 인터넷으로 ‘김연우- 재회 가사’를 검색해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들었다. 네번째 트랙 ‘연인’의 노래가 흘러나올 땐 ‘내 옷장에 입을 옷이 왜이리 없나요’에서 두사람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바로 전날 밤, 연희가 전화로 “매번 오는 가을인데, 지난 가을엔 나 무슨 옷을 입고 살았던걸까?”라고 했던 말이 두사람의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연희가 가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노래를 듣다가 가사, ‘진짜 첨엔 별루였는데’ 부분에서 상수의 어깨를 흔들었다. 두 사람의 첫만남에 연희에게 상수는 정말 별로 였으니까. 어떤 연인의 첫만남 키워드가 재채기와 분비물, 꽃잎일까. 연희는 노랫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덕분에 꽃잎을 잡았고,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아”라고 말했다. 두사람의 시간은 멈춘 것 같았지만 노래는 계속 흘렀다. 알쏭달쏭한 제목의 노래, ‘8211’이 흘렀고, 가사 속 두사람에겐 위기가 찾아온 듯 했다. 연희는 ‘8211’의 뜻이 무엇인지 폭풍 검색을 했고, 한국의 국제 번호 ‘82’와 예전에 많이 쓴 번호 ‘011’을 합친 것 아니냐는 추측글을 보고, 장거리 연애가 만든 두 사람의 연애의 슬픈 결말에 점점 몰입해갔다. 그리고 절정의 ‘이별택시’가 흘러나오자 연희의 눈엔 눈물이 맺혔다.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 노래인지 몰랐어 엉엉” 

상수가 일어나 휴지를 가져와 연희에게 주려는 순간, 연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눈물 빠진만큼 먹어야겠다 연희야. 내가 맛있는 것 해줄게.”

상수는 연희의 눈물을 닦아주고, 연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편히 쉬고 있으라고 했다.      

연희는 카세트의 볼륨을 살짝 낮추며 “노래 제목이 ‘끝’? ‘잘해주지 말 걸 그랬어’? 상수야 너 나랑 만약에 아주 만약에 헤어진다고 하면 너도 이런 말 할거야?”라고 물었다.  

“아니, 우리가 왜 헤어져.”

상수가 오직 한사람만을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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