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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biya Oct 03. 2023

[2] 누군가의 뜨거운, 여름 (3)

우리의 제철

(2) 상수의 여름 (과거) 


상수가 엘피 더미에서 좋아하는 가수, ‘밥 딜런’의 엘피를 한번에 찾았듯이 상수가 원하던 이상형, 연희도 함께 찾게 되었던 그 해 봄. 상수와 연희의 만남의 목적이 제대로 된 한끼 먹기에서 두 사람 자체로 바뀐 건 그 만남 이후 두어번 정도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상수의 단골 식당, 두부 전골을 먹었고, 상수가 남자가 아닌 여자와 단골식당을 찾은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항상 가본 식당만 가던 상수가 연희와 <혀가 벌떡>에 나온 식당을 찾아 다니다가 마치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듯이 첫사랑같은 그 식당에 연희를 데리고 간 것이었다. 얼큰한 두부전골로 그 해 봄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그 밤,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온도에 연희의 동네, 연희동에서 밤 산책을 하던 중, 상수는 연희의 손을 잡고 싶었다.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간수가 풀어져있는 콩물을 두부의 형태로 만들어주듯, 연희와 있으면 드는 감정, 신나고 행복하고 재밌고 설레는 그 흩어진 감정들을 사랑의 형태로 만들어주었다. 이 마음이 순두부처럼 누르면 바스러지는 마음이 아니라 단단한 부침용 두부인 것 같아 상수는 연희의 손을 잡았다.     

봄 밤의 선선한 그 온도를 놓치면 바로 더워지듯 그 순간을 빨리 즐길만큼 즐겨야하는데 상수는 연희와 있을 때 누군가 심장 안 쪽을 간지럽히는 간질거림을 연희와 함께 빨리 즐기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상수가 손을 잡았지만 연희의 손에는 힘이 풀려있어 상수의 손이 감싸져있진 않았다.     

“부끄러워”

상수가 연희를 쳐다보지만 연희의 눈에는 초점이 풀려있어 상수를 쳐다보고 있진 않았다.

대신 부끄럽다는 말만 했다.

“나도 부끄러워. 우리 제대로 만나보자. 밥친구 말고 연인으로.”     

8월, 여름은 지난번보다 항상 더 덥고, 길게 찾아온다. 상수와 연희가 함께했던 그 여름도 비오는 날 우비 속에 갇힌 몸뚱아리처럼 너무 습해서 곤혹스러웠다. 연희의 앞머리는 금방 땀에 쩔어 상수와 연희처럼 찰싹 달라붙어있기 일쑤였고, 상수의 목덜미도 땀이 맺혀있다못해 뜨거운 태양빛에 타서 점점 커져가는 연희에 대한 상수의 마음처럼 진해졌다. 연희와 상수의 사랑은 말 그대로 첫만남을 했던 봄보다 여름에 그 해 여름처럼 뜨거웠다.  

연희와 상수가 만나기로 한 합정동, 오후 2시. 8월의 오후 2시에 약속을 잡으려면 꼭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있는 실내에서 잡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

연희는 여느때처럼 5분에서 10분정도 늦었다. 더운 여름 합정역 바깥에 나와있는 상수는 습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렸고, 더위에 짜증이 났지만 늦은 연희에 대한 짜증은 아니었다. 너무 더워 연희와 얼른 만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연희의 얼굴을 5분 더, 10분 더 빨리 보고 싶었다.  

지하철 출구에 다다러서 상수가 보일듯 말듯한 곳에서부터 뛰기 시작한건지 그다지 헉헉대지 않는, 그렇다고 헉헉대지 않다고 볼 수 없는 연희가 상수 앞에 왔다. 상수의 얼굴에 맺혀있는 땀방울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지은 미소때문에 살짝 흔들리며 밑으로 떨어졌다.     

“미안해, 헉헉 늦었지.”

“너 또 여기 다 와서 뛴 것 내가 다 알아!”

“아냐, 지하철이 막히고.. 신호마다 다 걸려서 그랬어”

“귀여워”     

상수 눈엔 연희가 정말 귀여웠다. 조그만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어쩌면 그렇게 귀엽고, 발랄한지 만약 누군가 상수에게 ‘너의 이상형을 3d 프린터로 만들어줄게!’

한다면 연희 그 자체였다. 연희가 하는 어이없는 거짓말과 늦음에 화나기보다 그녀의 귀여움이 상수를 어쩔 수 없게 만들었다.     

둘은 일단 더위를 식히려고 바로 눈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분위기를 살피고, 주문하기 전 자리에 잡았다.

이 카페는 여름이라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때문인지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고, 둘은 운 좋게 창가자리에 앉게 되었다.  상수와 연희가 발길이 닿는 의자로 앉으려고 했고, 상수가 먼저 의자에 엉덩이를 대었다. 그리고 연희에게 “네가 여기 앉아”라며 자신이 앉은 자리를 양보했다. 카페 의자가 상수의 것이 아니라 양보라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를 연희에게 내주었다.     

“무슨 문제 있어?” 라며 상수 엉덩이의 온기가 스쳤던 그 자리로 발길을 향하는 연희.

문제가 있어 그 자리를 연희에게 내어주지 않았다는 걸 연희도 알지만 말이 그렇게 나왔다. 

“여기서 보는 공간이 예뻐. 예쁜 사람은 예쁜 것만 보아야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였다. 카페에 가면 구석자리, 편한 쇼파의자, 뷰가 좋은 곳이면 뷰가 잘 보이는 자리 외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앉았을 때 보이는 공간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는데 상수는 잠깐 앉아있던 그 자리에서 본 카페의 공간이 예뻐 연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주 잠깐 상수의 자리였다가 연희의 자리로 넘어온 그 자리에서 본 공간은 창을 통해 동네에 흔히 있는 공원에서 어린아이들이 토요일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고, 일단 카페 내부 인테리어에 놓여진 식물들로 카페 바깥과 안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원래 연희의 자리였던 그곳보다 더 예쁜 공간이 되었다.     

연희는 상수의 그 사소한 수고로움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무언가 먹을 때도 맛있는 부위를 내어주던 상수의 배려가 이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누군가를 만날 때 늘 손해를 보던 연희의 지난 연애와 비교되는 만남이었다. 만날 때는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난 사람들이 오징어로 보인 순간 손해라고 느껴지는 그런 연애.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고, 연희는 그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를 상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연희는 항상 카페를 가면 그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가 없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상수는 그때그때 달랐다. 그 카페는 계산을 하면 진동벨을 주지 않고,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 주는 옛 감성이 묻어나오는 카페였다.     

직원이 두 사람의 음료를 가져다 주었고, 연희는 카페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휴대폰 와이파이 연결을 하기 위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찾았다. 연희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직원에게 물어보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테이블 위를 정리하던 사람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가리키며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 사람은 비밀번호 대신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연희는 카페 직원이 그것도 모르나 하고, 다시 “와이파이 비밀번호요!”라고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그 때 누군가 연희 옆에 바짝 서서 “자기야, 이 사람 누구야? 저 이사람 여자친구인데요.”라고 쏘아붙였다. 음료를 가져다주는 카페라 테이블 위를 정리하는 그 사람도 직원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직원이 아니라 테이블 위를 정리하던 손님이었다. 연희가 휴대폰을 들고, ‘번호요’이라고 이야기하는 입모양을 화장실에서 나오던 그 사람의 여자친구도 보았고, 연희가 휴대폰을 들고,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무언갈 물어보는 게 휴대폰 번호라고 생각해서인지 축지법을 쓰듯 두사람 곁으로 온 것이었다. 연희의 시야가 직원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얼굴에서 줌 아웃 돼 자신을 향하는 뜨거운 눈빛을 가진 여자도 보였고, 곧 둘이 커플이라는 것. 동시에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희는 “죄송합니다”라고 했고, 자신의 뒤에서 사고친 여자친구의 낌새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낀 상수가 다가왔다. 

“아, 제 여자친구가 착각을 했나봐요. 죄송합니다.” 

연희를 처음 만났을 때 나왔던 그 저음의 목소리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상수였다. 그 커플이 어이없어하며 나갔고, 상수는 참은 웃음을 터뜨리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너 진짜 너무 웃겨. 어떻게 헷갈릴 수가 있어”   

“그만 웃어..나 이제 이 카페 못 와.. 창피해.”

주변에서 쳐다보는 시선을 곁눈질로 느끼며 연희가 말했다.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연희가 창피함을 느끼는 것과 상수가 있는 것이 어떤 연결이 있어서 괜찮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상수의 그 말로 안심이 된 연희였다.       

더위가 식혀지자 두 사람에게 잊고있던 허기가 찾아왔다. 연희는 상수와 만나면서 식사를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는 상수처럼 상수스름하게 여러 끼니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연희의 양 쪽 볼엔 두사람이 함께 먹었던 음식들의 흔적이 살로 축적이 되었다.     

연희는 귀엽게 툴툴대며 “너 때문에 살 쪘어” 라고 했지만 상수는 연희의 얼굴을 볼 때마다 두 사람의 행복한 추억들이 하나 둘 쌓여가는 것 같아, 그만큼 두사람이 더 가까워진다는 방증같아 더 좋을 뿐이었다.     

“너의 턱이 두개가 되어도 난 좋아.”

연희는 상수의 말이 현실이 될까 두려웠지만 상수와 함께하는 순간들이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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