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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biya Oct 01. 2023

[2] 누군가의 뜨거운, 여름 (2)

우리의 제철

(2) 상수의 여름 (현재) -2 

해방촌 에스프레소 바, 바 테이블에 몸을 기대 잔 밑에 남은 설탕과 몇방울의 에스프레소를 섞기 위해 컵을 빙빙 돌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는 남자가 있다. 다 마신 후 휴대폰에서 카메라 어플을 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검색창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남자. 

그리고 주위를 스윽 둘러보는 이 남자의 이름은 평양이다.      

흥행한 미니시리즈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의 비서 역할로 나온 후로 그는 바깥에 나올 때마다 심사받는 느낌이 든다. 지금 방송하는 미니시리즈에 매주 얼굴이 나오고 있는데 평양이가 맨얼굴을 드러내고 다녀도 알아보는 이 하나 없다. 어딜가나 사람들이 그 드라마 이야기뿐이고, 카페 옆자리에서 ‘그 남자주인공 비서가 범인 아니야? 왠지 의뭉스럽게 생겼어’라는 말도 종종 들리지만 그들은 옆에 있는 평양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단역 배우만 하는 평양이의 친구는 옆모습이 살짝 나와도 ‘이거 너 아니야?’라는 연락이 많이 와서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조각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흔적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는 느낌이라 했는데 평양이는 대놓고, 얼굴이 빡!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평양이가 말을 해야 ‘아 너였어?’란 반응이 전부다. 내 얼굴이 이렇게 슴슴하게 생겼나 자괴감에 빠지다가 평양냉면처럼 그 슴슴함으로 격한 팬들이 생기면 되지하고 스스로 위로한다.      

‘나 좀 알아봐주소’란 마인드로 촬영 때 입는 의상 그대로 입고 다니지만 너무나 평범한 양복을 입는 직업이라 서울에 돌아다니는 직장인 6785번째일 뿐이다. 누군가 ‘어, 그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아니에요?’ 라는 말을 한다면 평양이는 맛있는 한끼, 아니 그보다 더 한 걸 줄 수 있을 정도로 그 말이 고프다.      

이번엔 작전을 바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컬러의 의상으로 풀착장하고, 에스프레소 바에서 찾아놓았던 식당으로 향한다. 자신의 스타성을 심사하기 위한 과정이 또 시작되었다. 일주일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주문을 한다면 그 가게 직원이 한번쯤 ‘오늘 또 오셨네요’를 하고, ‘지난번처럼 그메뉴 맞죠?’라고 할 거고, 그 때 평양이의 얼굴을 한번 제대로 보고, ‘어? 그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아니에요?’를 말할테지. 물론 드라마 방영 이후로 지금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만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상수 식당>

골목 구석에 콕 박혀있지만 평양이의 눈에 띈 이곳. 이 식당도 누군가에게 알려지기 위해 노력하겠지 싶어 느낌이 좋은 평양이다. 오후 2시 30분, 점심 시간이 지났고, 브레이크 타임을 앞두고 있어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간 식당 사장은 여유로울 테고, 평양이가 스타성을 심사받기 좋은 시간이다. 

“어서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식당사장처럼 보이는 누군가와 눈인사를 한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인사해 자신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1차 심사 실패. 사실 평양이는 눈인사로 자신을 알아볼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0.1%의 희망을 갖고 있었는지 조금 쓰라리다. 평양이의 시선에 ‘오늘의 메뉴 : 갈치 솥밥 + 매실장아찌’가 보였고, 단일 메뉴인 이 식당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마친 평양이 상수에게 주문을 하고, “쌀을 씻을 때 수돗물로 씻으시나요?” 라는 무리수 질문도 추가했다. 상수는 뜻밖의 질문에 눈썹을 위로 올리며 맞다고 대답했고, 평양이는 “제 밥은 생수로 씻어주실 수 있을까요? 수돗물 냄새를 잘 못맡아서요. 부탁드립니다.”라며 상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평양이는 수돗물을 생수처럼 마실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어떻게서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평양이는 솥밥 위에 놓여져있는 갈치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살짝 코를 훌쩍였다. 바다에 있을 땐 빛에 반사된 갈치의 은빛깔 비늘은 눈이 부셔 바다 위 스타였는데 이렇게 솥밥 위에 얹어져 있다. 은빛깔은 사라지고, 오동통한 살점의 생선일뿐인 갈치를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나올지경이었다. 평양이는 잘나가는 배우의 비서 역할로 캐스팅 됐을 때 이제 나의 길은 탄탄대로구나 생각하며 한때는 꿈이 바다 위 갈치같이 빛나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솥밥 위 갈치보다 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일뿐이라 생각되니 갈치 살이 퍽퍽하지도 않는데 목이 메었다.      

평양이 얼굴은 흔하게 생겼다. 고작 지구, 누구의 나라의 작은 도시 크기일 수 있는 나라에서 얼마나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겼겠느냐만은 정말 평양이의 얼굴은 흐릿하다. 평양이는 모르지만 흥행하는 드라마 감독이 평양이를 캐스팅한 이유도 남자 주인공의 비서가 남자 주인공보다 존재감이 뛰어나면 안됐기에 언뜻봐서 인식이 안되는 얼굴을 선호했기때문이다. 평양이 얼굴이 흔한 것도 모자라 단체에 가면 존재감도 없다. 아까부터 그 자리에 있다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건데 “너 왜 지금 왔어”라는 말도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그런 평양이가 배우를 꿈꾸게 된 건 흐릿하게 생긴 얼굴이라 여러 연기를 했을 때 연기 변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거란 생각때문이었다. 연기만 잘하면 존재감이 확실하게 보여질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누군가의 운전기사 연기를 할 때 오른쪽에 살짝 얼굴이 비춰지고, 누군가의 비서를 연기할 때도 평양이는 그간 노력했던 연기를 뽐냈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흥했을 때 연기만 잘하면 된다라는 신념이 평양이의 얼굴처럼 흐릿해졌고, 평양인 길에 나가 사람들이 알아봐주기만을 바랐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의도된 한끼를 하러 그렇게 같은 시간, 같은 식당, 같은 옷을 입고 찾아간 것이다.      

다음날, 평양이는 어제와 같은 시간인 2시 30분에 상수 식당으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간 홍대는 사장으로 보이는 상수가 어딨는지 찾았고, 그가 있는 쪽을 향해 가서 눈을 똑바로 보고, 인사를 건넨다. 2차 심사도 실패. 혼자 장사하는 상수가 정신이 없어 평양이를 잘 쳐다보지 못하고, 인사를 건네 평양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평양이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을 한다. 한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더 쓰라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이는 마치 구애하는 피라미처럼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낸다. 또 상수에게 “쌀을 수돗물로 씻으시나요?”라고 물어본 것. 상수는 피라미가 아니라 상수식당의 사장일뿐이었는지 어제와 똑같은 대답을 평양이에게 한다. 평양이는 “제가 수돗물 냄새에 좀 민감해서..”라고 말했고, 상수는 “네, 기억하고 있어요. 생수로 씻을게요”라고 말했고, 평양이가 이름을 슴슴하지 않고, 호불호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함흥으로 바꾼다고,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모든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상수의 “기억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인해. N번째 스타성 1차 심사 합격한 평양이에게 수돗물이 아닌 생수로 씻긴 초당옥수수 솥밥이 나왔고, 평양인 하얀색 쌀밥위에 선명하게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솥밥 위 스타성 갑, 초당옥수수가 부러웠지만 부럽지 않았다. 오늘 누군가가 자신을 손님들 중 한명이 아닌 ‘그’ 손님으로 인식을 해줬기때문이다. 왠지 앞으로 ‘그’ 배우로 알려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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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는 식당 오픈 후 처음 찾아온 계절, 한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목에 목걸이형 선풍기를 걸고, 재료 손질에 여념이 없다. 그 시간 평양인 휴대폰 그립톡을 바깥쪽으로 하고, 의도 있게 상수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더 자연스럽게 그립톡을 보여주며 걸을 수 있을텐데 명치에 휴대폰을 놓고 그립톡을 냅다 보여주며 길을 걷는 평양이다. 길을 걸으면서 평양이는 여름의 색깔은 초록색이 아니라 가지각색의 살색들이라 생각한다. 분명 한달전까지만 해도 트렌치코트, 자켓, 반소매, 맨투맨으로 혼종의 스타일들이 길거리에 많았는데 오늘은 다양한 살색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 속에 평양이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발광하는 형광색 반팔티가 튄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셀프 스타성 심사를 2차까지 굳이 하는 평양이는 상수가 생수로 쌀 씻는 손님으로 자신을 인식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배우로 알아줬음 줬겠어서 꼼수를 쓰고, 상수 식당에 들어가 상수와 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또 오셨네요? 감사해요!” 라며 혼자 앉는 테이블로 평양이를 안내하는 상수다.      

‘그립톡.. 드라마 굿즈 그립톡을 못 본 것 같아. 봤으면 내가 그 드라마 배우인 걸 단번에 알텐데.. 시선이 여기로 향하지 않아서 그래’ 라며 위안을 삼고, 오늘도 앉았을 때 보이는 공간이 예쁜 1인 테이블에 앉는 홍대다. 그 예쁜 공간에 위로를 받았지만 또 한번 욕심을 내 그립톡을 보이게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미련한 평양이 앞에 뜨거운 곤드레 전복 솥밥이 놓여졌다. 상수는 솥밥을 내려놓다가 평양이의 꼼수, 드라마 굿즈로 나온 휴대폰 그립톡을 보았다. 

“어? <살과의 전쟁>? 이 드라마 팬이신가봐요. 옆에 있는 꽃가게 사장님이 이 드라마 단역배우로 나왔거든요~ 제 친구인데…” 

상수의 말이 끝날 때까지 평양이는 상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상수는 평양이가 그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상수 머릿속에는 ‘상수 식당’만 있게된 지 오래로 퇴근 후 집에 들어가도 다음 계절 메뉴 준비로 바빠 TV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구나’ 1초도 안걸렸다. 어제 상수의 한마디로 자존감이 여름의 태양빛처럼 뜨거웠던 평양이의 자존감이 금방 식어버리기까지. 평양이는 포기하지 않고, ‘나 좀 봐봐. 내가 이 드라마 팬 같니?’라는 눈빛으로 상수를 한번 더 쳐다보았다.      

“뭐 필요하세요?”

평양이는 다른 말을 원했다. 

“아, 아니에요.”

평양이는 상실감에 솥밥이 뜨거운지 모르고, 한숟가락 크게 뜨고 입에 욱여넣고, 입안이 데일듯한 뜨거움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때 커다란 홍대가 자신의 얼굴만한 꽃병을 들고, 상수 가게에 들어왔고, 

평양이를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상수야, 어 손님이 계셨네. 이 꽃병 너희 식당에 잘 어울릴 것 같아 그치?”   

그 순간, 홍대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 혹시 배우 아니세요?” 

홍대는 입안에 뜨거운 걸 넣어서 평양이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로 생각했지만 분명 홍대의 말이 평양이를 울리고 말았다. 

“아, 마쑨니다”

뜨거움의 영향력은 차가운 것보다 더 강렬하다. 얇고 연약한 입안의 살들이 뜨거움에 다 뜯겨져 나가 누군가가 기다렸던 그 순간에 제대로 말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아 괜찮으세요? 뜨거운 것 급하게 드셨나보다. 물 드세요 물물” 

자칫하다간 물컵을 으스러뜨릴 것 같은 홍대가 물컵을 평양이에게 건넨다.      

“하, 드디어 살겠네요. 네 저 배우 맞아요.”  

“아, 저 김필승 감독님 영화 오디션장에서 봤어요. 와 어떻게 이런 우연이.”

“거기서 보셨구나. 혹시 단역 배우하신다는…?”

주방에 있는 상수의 눈치를 보며 평양이가 홍대를 아는 척 해본다. 

“아, 네 맞아요. 아, 상수 저 자식이 말했구나.”

전복이 보양음식으로 그렇게 유명하다지만 평양이에겐 전복이 다 무슨 소용이랴, 홍대의 눈썰미가 평양이의 한여름의 더위를 싹 가시게 만들었다. 

“저 그때 옆에서 연기 연습하시는 것 보고 감명받았거든요. 그 때 존재감 짱이었는데. 지금 하시는 연기 잘 보고 있습니다. 제 눈엔 주인공보다 더 신스틸러예요. 완전히!” 

홍대의 엄지손가락이 누군가의 엄지 발가락 사이즈만큼 커서 그런지 아니면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듣는 순간이라 그런지 평양이에겐 홍대의 엄지손가락이 매우 확대되어 보였다. 그리고 ‘신스틸러’ 네 글자가 귓가에 윙윙댔다.      

옆에서 홍대와 평양이의 말을 듣고, 상수는 평양이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제가 tv를 보지 않아서 대배우님을 못 알아보고, 죄송해요. 저희 가게 여러번 오신 단골손님이 이렇게 대배우님이라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대배우라니요. 아직 신인일 뿐인데요. 와, 사실 창피하지만 저 제가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다들 알아보지 못해서 속상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을 얻었어요.”     

흐릿한 이목구비 중 가장 흐릿한 평양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두 남자는 떨어지는 눈물에 당황해 휴지를 찾았다. 실속없이 큰 몸만 움직인 홍대가 한발 늦었다. 

“갑자기 왜.. 이거 닦으세요.”

“흠흠, 사실은 .. 제가..”

평양이는 그동안 존재감이 없고, 혼자 상처만 받았던 굳이 한 스타성 검사한 지난 날들을 두 남자에게 말을 했다. “그렇게 존재감 없었던 제가 방송에 나와서.. 이제 사람들이 알아보겠지?란 생각으로 길거리에 나왔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더라고요..” 란 말과 함께 평양이의 눈물도 멈췄다.      

평양이는 학창시절 존재감 없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잘못을 해도 선생님에게 보이지 않아 혼이 안났고, 친구들은 그런 평양이를 부러워했다고. 여러번 지각을 해서 지각비가 쌓여야할 때 “넌 처음이니까 봐준다”라는 반장의 말이 그 순간 좋았지만 지나고 나니 상처였다고 했다.      

홍대는 “스타성이란 건 주관적인 것 같아요. 제가 오디션을 가보면 그렇더라고요. 결국에 작품에서 연기할 사람을 뽑는 건 감독인데, 감독도 사람이잖아요. 자기가 찾고 싶은 사람을 찾는건데 어떻게 스타성이 객관적일 수가 있어요. 전 평양씨가 흐릿한 존재감이라고 했던 그것도어찌보면 평양씨의 스타성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간 드러날거예요. 저한테 처럼.” 

상수는 살짝 ‘너나 잘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지한 홍대의 눈빛에 두 사람이 한 드라마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길 바랐다. 그리고 흐릿한 존재감의 평양이를 보며 어딜가나 흔적을 남겼던, 상수의 인생에서 존재감이 가장 뚜렷했던 연희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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